24.9.8
오늘은 교토를 떠나는 날이다. 에어컨이 후져서 틀면 틀수록 되려 방이 습해졌는데 좁기도 더럽게 좁고 하여간 맘에 안들었던 숙소였다. 그런데도 이틀 지낸게 뭐라고 정이 들어버려 떠나는 길에 자꾸 되돌아보게 되더라.
오늘은 가와구치코까지 간다. 내일이 드디어 후지산에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후지산에 가려면 이른 아침 가와구치코역에서 후지산 5고메(중간지점)까지 데려다주는 버스를 타야하기 때문에 전날 미리 근처로 이동해둘 필요가 있다.
보다시피 존내 멀기 때문에 여유있게 가려면 신칸센을 타야 한다. 가격은 무려 11,000엔으로 서울 돌아가는 비행기보다 비싸버린다.
신칸센은 2시 출발이어서 오전에 시간이 조금 비는 상황이라 전날 위치를 봐뒀던 쿤교쿠도 매장에 가보기로 한다. 쿤쿄쿠도는 첫째날 오사카 모 백화점에서 시향했던 그 인센스 매장이다. 아무것도 못 사고 그냥 나온게 못내 아쉬워서 끙끙 앓고 있었는데 교토에 본점이 있다해서 바로 달려간다.
그간의 행군 때문인지 다리에 데미지가 온게 슬슬 느껴졌다. 버스로는 한 정거장이라 타고 갈까 싶었지만 일본의 대중교통이란게 한두푼하는 것이 아니므로 그냥 참고 걸어가기로 했다. 아무리 피곤해도 한 정거장을 230엔 내고 가고 싶지는 않다.
일본엔 기계식 자전거 주차장 시스템도 있다. 한국에도 이게 있었다면 내 자전거가 한눈 판 사이 따릉이가 되어버렸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가는 길에 사람 버글버글한 카페가 있길래 못참고 들어가봤다. 일본 와서 처음으로 아메리카노를 마셔 봤는데 웬만한 스페셜티 커피집보다 괜찮았다. 우연한 발견이 최고의 선택으로 탈바꿈하는 일만큼 즐거운 경험은 없다. 카페 이름은 KURASH고 커피값은 500엔.
가던 길 가다보니 한따까리 하는 건물이 나왔다. 찾아보니까 니시혼 간지라고 되어 있어서 건물 이름이 머 이런가 했는데 니시 혼간지였음.
교토가 일본의 센터였던 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멋들어진 문도 있다. 혼간지 ㄹㅇ 닉값한다.
니시혼간지는 돌아볼 시간도 기력도 없어서 쿤교쿠도나 마저 가보기로 한다. 교토에서 노포란 최소 200년이 넘어야 한다는 말이 있던데 여긴 1594년부터 영업을 시작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무려 400년간 성업중인 노포 중 상노포다. 간판도 당시에 사용하던 걸 보수해가며 쓴다는데 딱 봐도 예사롭지가 않다.
내부 촬영은 불가라 사서 나온 것만 찍었다. 인센스, 사쉐 이렇게 2개 집어왔는데 앞으로 교토 생각날 때마다 꺼내볼 수 있는 좋은 기념품을 얻은 것 같다. 참고로 안에 작은 정원이 하나 있는데 되게 잘 꾸며놨다.
교토역 복귀하다 멀리서 개큰 건물을 봤는데 저것도 혼간지라고 한다. 너무 커서 저게 교토황궁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황궁은 얼마나 큰 것인가.
호텔 실수, 인센스, 신칸센 등 예상치 못하게 돈을 너무 써버려서 점심은 맥날에서 대충 떼우려고 했는데 너무 멀어서 갈 자신이 생기질 않았다. 그래서 그냥 교토역 지하 쇼핑몰(포르타) 돌아다니다 사람들 줄 서있는 라멘집을 가 봤는데 그냥 평타 치는 맛이었다.
긴팔 없이는 후지산 올라가기 좀 추울 것 같아서 유니클로에서 히트텍 사려고 쇼핑몰을 들렀다. 35도를 넘나드는 더위에도 후지산 정상은 10도 내외로 기온이 낮기 때문에 체온 유지가 필수다.
서점도 한 번 가봤다. 일본 서점은 처음인데 책 읽는 교양인 코스프레를 해보며 시간을 떼운다.
놀만큼 놀았으니 신칸센을 타러 간다. 히카리라는 노선? 기종?을 타고 미시마까지 2시간 가량 이동한다.
미시마 도착하고 나서는 버스로 가와구치코까지 가야한다. 운 좋게 내리자마자 버스가 도착해서 딱코로 갈 수 있었다. 버스값은 현장예매 2,500엔, 온라인 예매 2,300엔이다. 어우 비싸.
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스위스 느낌이 나는 호수마을 야마나카코가 나온다. 한적하게 후지산 보면서 요양하기 좋아 보인다. 대신 준비물 = 연인.
2시간 반만에 역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강릉까지(약 220km) 2시간 반 나오는데 이 노선은 중간에 후지큐 하이랜드도 들리고 해서 거리상으로는 서울-강릉보단 조금 짧을 것이다.
시간이 늦어서 밥도 제끼고 바로 호텔에 체크인을 하러 갔다. 가는 길에 후지산 사진맛집으로 유명한 로손이 보여서 못 참고 후지샷을 찍어봤다.
가와구치코는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 설악면과 유사한 느낌이다. 설악산 일대 읍면동이 설악산 관광객 위주로 지역경제가 돌아가는 것처럼 가와구치코 역시 돌아다니는 사람 8할이 관광객이고 체인점보단 지역 주민들이 하는 가게가 대부분이다. 또 희한한 건 후지산이 대외적으로 갖는 상징성 덕분인지 현지인 포함 아시안보다 유러피안이 더 많았다.
관광객 중에 혼자 온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호텔로 돌아가는 길 돌연 고독함이 몰려왔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사람 많은 카페에 가서 사람 구경하면서 사진정리를 하면 기분이 나아지는데 여긴 워낙 시골이라 그럴 공간조차 마땅치 않았다.
방에 계속 있기는 싫어서 구글맵 검색해보니까 도토루 커피가 멀지 않다. 바로 방에서 뛰쳐나왔는데 가는 길 완전 시골길.
는 곧 마감이길래 근처에 있는 스키야에서 1,000엔 내외의 스키야키 덮밥을 시켜먹었다. 매운맛이 있길래 반가워서 냅다 시켰는데 진짜 1도 안 맵다. 김치가 들어있긴 한데 거의 키즈세트 백김치 수준의 안전한 맛이라 실망했다.
드디어 내일 후지산에 오를 것이다. 그래서 술도 안 마시고 내추럴하게 자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도핑을 해야하는 기분이라 산토리 하이볼을 하나 사서 들어왔다. 이거 도수는 높은데 맛없어서 천천히 마시기 좋더라.
이렇게 오늘 하루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