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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이 Jun 01. 2020

새 집 줄게. 헌 집 다오!

노을 그리움

 유난히 고됐던 한 주를 보내고  휴일의 나태함을 제대로 누리기 위해 우선 집 청소를 맘먹었다.

 부지런히 집 안 구석구석 먼지를 들어내고, 버릴 물건들을 치우고 정리하기를 한나절.

평소에는 아침저녁으로 바쁘게 짧은 눈인사만을 보내던 집이었는데, 모처럼 느긋하게 온종일 집 안을 살폈다. 맑은 햇살이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온 집안을 머물다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새삼스럽다.

2년여 전 이 도시에 전입해 이 곳으로 이사했을 때, 꽤 멋진 깜짝 선물을 받은 듯 좋았던 기억이 있다. 그것은 해 질 무렵 창 밖의 노을에 물드는 하늘을 바라보는 즐거움인데, 얼마 전까지 나의 소중한 일상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한편, 우리가 이사 올 무렵부터 저 멀리에서는 아파트 공사가 시작되었다. 좀처럼 진척이 없어 보여 내심 다행이다 싶었는데, 최근에 부쩍 건물이 높게 올라왔다. 오늘은 유독 회색빛 높은 담벼락이 눈앞에 성큼 다가와 있다.

낮은 지붕들이 그리는 올망졸망한 지평선 그림은 아파트 건물에 삼켜졌다. 깎아지른 외벽은 드넓었던 내 하늘의 반을 훨씬 넘게 가리며, 매끈한 직선의 회색 지평선이 그어졌다.

이제는 더 이상 저녁노을과 함께 저무는 하늘을 감상할 수 없다. 가끔 기러기 떼가 찬 하늘을 따뜻하게 편대하여 나는 모습도 이젠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세찬 폭풍우가 세상을 두드리던 날 심하게 흔들리며 버티던 나무들도, 눈 오는 날의 하얀 마을과 교회 뾰족탑도 더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저 멀리 낮고 길게 두세 겹의 산등성이가 하늘과 맞닿아 있으면서 동네를 아늑하게 감싸주고 있었건만, 이제는 아파트가 빼곡하게 그들을 가리고 우뚝 솟아, 갇힌 듯 삭막하고 답답하다.

누군가의 편의와 이익을 생각하고, 좋았던 우리 집을 이렇게 글로나마 추억하며, 애써 씁쓸함을 달래 본다.



거실 한쪽에 덩그러니 서 있는 볼품없는 화초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이사 당시 집들이 선물로 자매에게서 받은 화초 중에 요행히 지금껏 살아 있는 놈이다. ​무관심과 구박 속에 홀로 굳건히 버텨 곁을 지켜주는 무던한 생명력이 대견하다, 그리고, 실망에 겨운 내게 ‘살아 있음’으로 위로를 건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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