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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이 May 08. 2020

내 이름 '엄마'

그리고 나의 '엄마'


5월 8일 오늘 '나의 날' 삼아도 될까? 어느새 중견 엄마의 꽉 찬 경력을 자랑하고 있으니. 물론, 양적 경력일 뿐 질적으로는 함량미달 엄마다.
 

아이를 낳은 순간부터 가장 많이 불리는 나의 이름 ‘엄마’



 그때까지 내게 엄마의 기억은, 어느 날 우리가 탔던 하얀 버스와 붉은 무덤의 고추잠자리에 대한 기억. 명절 때면 엄마의 묘지에 나들이 가는 길에서 만나는 누런 벼 이삭이 펼쳐진 벌판과 코스모스, 저 멀리에 띄엄띄엄 서 있던 미류나무의 풍경만이 나의 엄마에 대한 상징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 나도 가끔 엄마를 부를 때가 있다. 깜짝 놀라거나 무언가에 쫓겨 달아날 때 다른 이들처럼 “엄마야!”라고 외친다. 어릴 때는 ‘내가 왜 없는 엄마를 부르는 걸까?’ 곰곰이 생각했었다.

다른 애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아무리 불러봐야 엄마가 그 자리에 있을 수 없다. 그럼 나는?  나의 엄마는 어쩌면 혼이 되어 내 곁에 늘 있을 수 있으니, 이 상황에서 능력자는 내 엄마일 가능성이 더 크다. 라고 혼자 당당히 결론짓기도 했다.

 추억을 갖지 않은 빈자리는 상실감도 없어서, 엄마의 부재는 나에게는 그냥 자연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 상황에 대한 어린애 특유의 판타지를 마음껏 지어 내기를 즐겼다.

마루에 누우면 올려다 보이는 높고 넓은 하늘을 화면 삼아 그때그때 하늘의 상태에 따라 그곳의 엄마의 세계를 상상하는 것이다. 흰 수염을 하고 멋진 드레스를 입은 전지전능한 여러 신과 함께 곱게 있을 엄마를 그려 보며, ‘이 모든 상황이 나의 미래를 위한 깊은 뜻이 담긴 설정이 아닐까.’ 하는 공상을 펼치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아찔한 상황이었지만, 현실이 녹녹지 않을수록 장밋빛 미래를 넘보며 어린아이 본연의 무성한 생명력으로 성장기를 보냈던 것 같다.



엄마라는 나의 이름이 낯선 것도 잠시,  아이들로부터, 내 안의 본능으로부터 엄마를 배우며 지금껏 살아왔다. 아이가 자라서 엄마가 떠나가던 무렵의 유년기쯤에 이르자, 나는 그 시절 어린 나를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유년기의 나를 품에 안으며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마음으로, 나는 처음으로 어린 나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


 라는 존재, 내 인생, 엄마가 나를 낳아서 내가 존재할 수 있었다면, 이제 내가 엄마를 생각해서 엄마를 존재할 수 있게 해야만 했다.김연수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중에서

 해외 입양아인 주인공 카밀라가 자신의 출생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아기인 자신을 두고 바다에 뛰어들었던 엄마, 10대 미혼모 소녀를 향한 애틋함을 담은 글이다.
                            


오글오글한 여섯 자매를 두고 갑작스레 병석에서 떠나가야 했던 젊은 여인의 심정을 헤아려 보는 것은 끔찍하게 가슴 아픈 일이다. 그때 겪었을 내 엄마의 슬픔을 언제까지나 위로하고 또 위로하고 싶다.

 지금 내게는 엄마가 참 많다. 삶의 나침반이 되어 주는 대상을 내 맘대로 현세의 엄마 자리에 놓는다. 고 신영복 선생님은 작은 아픔까지도 다독여 주고 세상을 사는 깊은 지혜의 가르침을 주시는 엄마로, 요즘은 법륜스님의 한없이 너그럽고 자유로운 품이 엄마 자리에 있어 행복하다. 앞으로도 계속 더 멋진 엄마들을 마음껏 만날 것이다.


오늘은 '엄마를 기억해서 엄마를 존재하게 하는 일'을 글로 실행해 본다.




먼 훗날 나의 아이들은 엄마인 나를 어떤 모습으로 남길지 궁금하다. 성숙한 어른의 손길로 오래전 부족했던 엄마를 보듬어 줄 수 있을까.

카밀라처럼.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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