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이 May 17. 2020

별이 쏟아졌다.

어른이 된다는 건

 

별이 쏟아졌다.

내 마음에도 따스한 물방울이 맺혔다.

모두의 어머니가 문득 내게도 찾아왔다.

부드러운 두 팔로 포근히 나를 감쌀 때

나는 어머니의 치마폭에 얼굴을 묻으며

과녁을 내리고, 손에 든 화살을 놓았다.

그리고, 오로라를 손에 쥐었다.





학력고사 세대인 나는 첫 번째 지원한 대학에서 보기 좋게 낙방했다. (나이 든 지금 돌이켜보면, 대학 낙방쯤이야 인생 사는데 맘먹기 따라 아무런 지장이 되지 않지만, 누구에게나 그렇듯 미숙한 청춘에게는 처음으로 겪는 인생 최고의 난관이었다.)


당시 나는 어려운 가정형편에 재수는 꿈도 꿀 수 없었다.( 물론 그럴 의지도 없었지만)

등록금이 들지 않는 대학 진학만 가능했기에, 장래희망 따위는 선택지에서 고려되지 않았다.

때문에 첫 문턱에서 낙방한 후에는 더욱 진학의 선택 폭이 좁아져서 막막하던 차에, 친구 언니가 다닌다는 대학에 대한 정보를 듣게 되었다. 등록금이 저렴하고 취업이 보장된 그곳을 찾아 간신히 대학 입학에 성공했다.



겨우 숨 돌릴 틈이 생기자, 스멀스멀 마음속에서는 부아가 올라왔다. 학력고사를 치르던 날 나는 시계를 깜빡하고 챙기지 못한 채 고사장에 갔었다. 마침 옆에 평소 별로 친분 없던 동창이 있었고, 그녀는 여분으로 가져온 시계를 빌려주겠다며 5분여 늦게 감긴 시계를 내게 건넸다. 첫 시간 시험과목은 공교롭게도 당시 10년 래 최고의 난도를 기록했고, 그 덕에 고장 난 시계를 차고 있던 나는 주어진 시간 안에 답지를 작성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에 맞닥뜨렸다.


그에 더해 고사 감독관의 불안하고 당황스러운 대응은 대략 난감 상황을 한층 더 어렵게 만들었다.

허둥지둥 답지를 표기 중이던 나는 극도의 불안감으로 그만 목과 손목 움직임이 마비되어 움직이지 않는 인생 최대의 위기를 경험했던 것이다. 난리통을 겪고 난 후 전화기 속에서 흘러나오던 불합격 통보 소식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쓴 눈물을 삼키며 절망했었다.


분함을 곱씹으며 원치 않았던 대학에 입학하는 새내기 마음은 빛나는 청춘의 쨍한 햇살과는 거리가 먼 암울한 출발이었다. 아니, 분한 마음은 여전히 과거에서 맴돌고 있었다. 내게 시계를 건넸던 그녀, 허둥대던 감독관에 대한 원망이 마음 한가득이었다. 마음속에  과녁 삼아 원망의 화살을 쏘아대고 있었다.


마지못해 입학한 대학 강의실 그 자리가 왠지 내가 있을 곳이 아닌 듯 부당하게만 느껴졌다. 동기들에게도 살가움이 느껴지지 않고, 자꾸만 현실 부정적인 생각에 마음이 어지러웠다. 몇몇 가깝게 지내게 된 친구들에게도 가식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그중 한 친구의 고향집에 모처럼 여행을 가게 되었다. 심드렁한 마음으로 마지못해 따라나선 친구네 시골집 여행길.


80년대 후반 당시 경기도 외곽의 시골은 대도시에서 멀지 않은 위치임에도, 전기가 들어온 지 불과 몇 년 되지 않았을 정도로 꽤나 깊은 깜깜 시골이었다. 시외버스에 올라 비포장도로를 터덜터덜 한참을 달려 도착한 한여름 밤의 낯선 마을은 참으로 고요했다. 칠흑 같은 밤 처음 가본 길에서 우리는 특별한 기분에 들떠, 스무 살 감성의 수다를 터뜨리며 한 참을 걸었다.



그때, 우연히 올려다본  밤하늘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하늘을 바구니 삼아 빼곡하게 담긴 별들이 나를 향해 내려다보고 쓰다듬을 듯 낮게 내려앉는 것 같았다. 별 가득한 밤하늘과의 갑작스러운 만남에 세상이 멈춘 듯 걸음도 소리도 멈췄다.


내 위로 별이 쏟아졌다. 마음에도 따스한 물방울이 가득 맺혔다. 냉랭하던 마음이 따스해지며 이내 촉촉해졌다. 가슴속에 품었던 돌멩이처럼 단단한 원망이 스르르 녹는 듯 부끄러워졌다. 자기를 부정하고 변명하느라 현실 왜곡에 급급하던 내 모습을 직시하게 되었다. 별 가득한 밤하늘의 그 순간으로 이끈 모든 것이 감사하고 행복했다. 나는 그렇게 여행 내내 친구들과 함께 행복했다.



티브이를 보다 보면 북유럽의 오로라에 대한 영상을 신비롭게  다루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오로라와 만남을 버킷리스트 목록에 넣고 미래를 꿈꾸는 이들도 꽤 많다. 사람들이 들뜬 마음으로 오로라를 꿈꿀 때, 나는 스무 살 한여름 밤하늘의 따스한 별무리를 떠올리며 미소 짓는다. 신비로운 오로라의 만남 이상의 것을 이미 체험한 듯한 자부심으로.


훗날 진짜 오로라를 만나는 여행을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별의 신비를 체험한 추억을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지금은 사람 사는 세상이 부쩍 밝아져서 하늘 가득한 별밤을 만나기가 그때보다 훨씬 어려워졌다. 그런 탓에 오로라도 좋지만 스무 살 때 만났던 아름다운 별밤을 다시 만나고 싶다.



일상 안에서 삶이 찌들 때, 무엇으로도 마음을 달래기 힘들 때 문득 주어지는 아름다운 자연과의 만남에서 커다란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하늘의 구름 한 조각, 우뚝 선 나무, 꽃 한 송이 또는 살랑이는 향긋한 바람 속에서도 가끔은 설명할 수 없는 감사와 행복의 순간을 포착할 수 있다.  


성숙한 어른에게는 자기 자신과 모두의 어머니인 자연의 치마폭이면 족하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뭔가 시들하고 맥이 빠질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