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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이 Jun 08. 2020

뭔가 시들하고 맥이 빠질 때

시루떡의 추억- 팥은 '정'이다.- 한식 브런치

 그녀의 손은 참 우악스러웠다. 할머니는 여장부셨다. 여자임에도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장사였다. 물론 내가 어른이 된 후 늙어가는 할머니 모습은 작게 오그라들고 있었지만.


어쩌다 혼날 일이 생겨서 그 손아귀에 손목이라도 잡혀 이끌리는 순간에는, 압도적인 힘에 인생 최고의 위기와 좌절을 맛보는 두려움을 느꼈다. 성장기의 다섯 손녀를 거둬 먹이고 길들이고 단속하기에 그 손이 좀 분주하셨을까?


때때로 할머니는 담배꽁초를 흘리거나 행실이 바르지 않은 동네 총각을 보면 불호령을 했다. 또 살림에 서툰 새댁이 아무렇게나 처리한 쓰레기를 할머니에게 들키는 날엔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구멍이 났다. 그럴 때면 ‘울 할머니가 세상 최고로 센 사람이구나’ 하는 왠지 모를 안도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험난한 삶의 여정은 한때 가녀린 소녀였을 할머니를 이토록 억세고 씩씩한 장군으로 거듭나게 했을 터. 거칠고 뼈마디 불거진 손은 지나온 삶의 고된 내막을 대변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내게는 무시무시한 압도적 힘의 상징이었다.      


단, 예외의 순간이 있었다. 김이 펄펄 나는 솥단지 안에서 팥고물 가득한 시루떡을 부엌칼로 네모지게 잘라 뚝뚝 떼어내던 할머니의 손. 흰 연기 한 가닥이라도 손에 닿을라치면 뜨거워서 소스라치게 놀라는 나와 달리, 뭉게뭉게 솟는 김 속에서도 꿋꿋이 찰진 떡을 떼어내는 무쇠 같던 손. 그 곁에서 목을 길게 뺀 채 대기하던 우리 앞에 턱 하니 붉은 팥시루떡을 내놓을 때 할머니 손은 한없이 상냥하고 부드러웠다.     



빠듯한 살림에도 할머니가 우리에게 베풀 수 있는 행복한 이벤트가 한 가지 있었다. 지금처럼 먹거리가 풍성하지 않던 그 때 제일 싸고 만만한 쌀과 팥으로 만드는 시루떡이었다.     


특별한 날에 할머니는 마당에 곤로를 내다 놓고 커다란 솥에 팥시루를 안쳤다. 무엇이든 부족지만, 떡을 안칠 때 팥고물만큼은 아끼지 않고, 흰 쌀가루 사이에 켜켜이 두둑하게  덮었다. 진지하게 층을 쌓는 작업은 제법 비장했다. 모처럼 만드는 특식이 제 모양과 맛을 내기까지 쉬운 작업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맛난 팥시루떡에는 중요 비법이 있었다. 솥에 찔 때 뜨거운 김이 새 나가지 않도록 뚜껑과 솥 사이 둥근 틈새를 밀가루 반죽으로 하얗게 돌려 막아 주는 것이다. 시루떡 행사가 더욱 즐거웠던 것은 이 ‘김  방지 공사’를 우리 자매가 직접 시공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맛난 시루떡 찌기에 제법 기여한 듯 우쭐해지는 우리들 만의 작업이었다. 막바지에는 보다 못한 할머니의 손이 하얀 반죽 담을 더 단단히 붙이고 보정하는 과정을 필요로 했지만.      


차가운 솥이 불에 안쳐지고, 이내 뜨거운 소용돌이가 시작된다. 솥뚜껑 끝 흰 밀가루 반죽이 딱딱하게 익어 노릇해지도록 쪄내는 시간은 얼마나 지루하던지. 기다림을 잊으려 애쓸수록 어린 나의 의식 한쪽 끝자락은 마당 안 솥단지로 더욱 강력하게 이끌리고 만다. 평소엔 동네 애들과 시간 가는 줄도 모를 만큼 재미있는 놀이도 떡을 기다릴 때는 문득 시시해졌다. 


긴 시간 마당 주변에서 맴돌기를 여러 차례. 어느새 구수하고 달큼하게 익어가는 팥 향이 퍼질 때면, 우리 자매들은 물론 다정한 앞 뒷집 이웃도 창을 열고 코 끝의 단내를 따라 모여들었다.     


할머니는 동네에서 소문난 호랑이 할머니였다. 이웃에게 평소 다정하지 못했던 미안함을 이런 날 따끈한 팥시루떡을 나누며 전하고 싶었을게다. 올망졸망한 다섯 손녀에게 좋은 이웃으로 있어주길 바라는 무언의 당부도 더해서. 엄하고 투박한 당신의 정이 손녀와 이웃에게 따스하게 전해지길 바라면서.


뭔가 삶이 시들하고 맥이 빠질 때, 할머니의 달콤 쫀득한 팥시루떡은 우리를 다시 들뜨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좀처럼 고기 구경이 힘들던 그 시절, 팥은 성장기에 꼭 필요한 단백질 보충에 요긴한 식재료였다. 더불어 나누던 따스한 정도 풍부한 영양과 함께 내 마음과 몸속 세포 깊은 곳까지 새겨졌으리라.



 몇 년 전 우리는 살던 집을 팔고 난 후 최근까지 여러 번을 이사했다. 아파트 생활은 좀처럼 이웃을 마주할 일이 없기에, 이사 후에는 으레 떡집에서 맞춘 팥시루떡을 아래 윗집에 건네며 인사 나눌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떡 접시를 들고 벨을 눌러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 


한 상자 맞춘 떡이 고스란히 냉동실로 직행하는 걸 경험하고는 떡 나눔도 중단한 지 오래다. 먹거리가 풍족해지고, 혼자의 삶이 익숙한 요즘, 타인의 문 앞을 기웃대는 떡 나눔은 시대착오적인 행위임을 뒤늦게 자각했다.     


재앙과 잡귀를 쫓고 복을 비는 특별한 날, 시루떡으로 나누던 정은 싸고 풍성한 팥처럼 강인한 생명력으로 우리 안에 깃들어 있다. 그래선지 팥을 주재료로 한 간식은 세대가 달라져도 다양한 방식으로 남녀노소가 함께 즐긴다. 이제 곧 여름. 시린 팥빙수로 무더위를 식히며, 팥의 따스함을 음미하는 상상에 마음이 설렌다.



할머니와 시루떡이라니. 초고속 시대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처럼 비현실적이다. 이제는 마당이 없고, 떡시루가 없고, 할머니도 가신지 오래고, 편리한 세상에 언감생심 떡 찔 일이 절대 없다. (간혹 센스쟁이 주부들은 훌륭한 주방기구로 솜씨를 발휘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또 뭔가 삶이 시들하고 맥이 빠질 때면, 시장 골목 떡 집에 들러 팥시루떡을 챙긴다.


서둘러 먹으면 한다.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팥고물 가득한 떡을 작게 한입 베어 문다. 달콤한 맛과 구수한 향을 느끼며, 쫀득하게 음미한다. 거칠고 따스한 할머니 손에 가만히 뺨을 대는 느낌으로.



이미지 출처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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