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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이 Aug 01. 2020

내겐 너무 높은 그것

아파트를 올려다보며.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진실된 사랑은 무엇일까?

연인의 사랑, 친구 간 우정, 부모를 향한 효심, 인류애 등 많고 많지만, 그중에서도 부모의 자식 사랑이 으뜸이 아닐까 싶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며, 생의 모든 에너지를 모아 정성을 쏟는 일이 자식을 키우는 일이다.


 부모는 아이의 삶이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잘 먹이고 입히고 재우며 건강을 살피고, 가르치고 훈육하며 좋은 인성을 길러주려 한다.


부모로서 아기에게 하는 첫 훈육은 무엇일까. 아직 미성숙한 인격체인 아이는 자기중심적이다. 장난감이나 맛있는 걸 빼앗기지 않고 독차지하려 떼쓰는 아이를 그렇게 크도록 내버려 두는 부모는 거의 없다.


 욕심 부리는 아이를 꾸짖는 부모의 모습은 우리 에게 익숙하다. 나누고 양보하는 심성을 길러주기 위한 훈육이 아이에게 가하는 부모의 첫 가르침이다.


타인과 함께 하는 삶이어야만 행복할 수 있음을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다.  



 애석하게도,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는 생존을 위한 경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학벌이나 직업, 외모, 경제적 수준의 서열에 따라 누릴 수 있는 세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이가 어릴 때 그토록 꿈꿨던 나눔과 양보의 훈훈한 세상은 한때 잠깐의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았던가. 낙오하지 않기 위한 생존경쟁은 모두에게 버겁지만, 끝나지 않는 달음박질이 되었다.    


그 고단한 달음박질 중 최근 확 달아오른 화제는 단연 ‘주택문제’다. 단기간에 폭등한 아파트 가격 때문에 세상이 떠들썩하다. 젊은 세대가 자기 능력만으로 내 집을 마련한다는 것은 이루지 못할 꿈이 되었다.


모두는 공정하기를 바라지만, 누군가 허탈하고, 누군가는 이익의 극대화를 포기할 수 없다. 한편에서는 불공정을 말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소유의 자유를 말한다.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정책안을 두고 찬성과 반대의 마찰이 격렬하다. 서로 다른 입장에서 의견들이 난무하고 부딪치는 불협화음이 요란하다. 다정한 이웃이나 친구, 형제, 동료 간에도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다.  벌어진 경제적 격차만큼 서로의 생각도 멀어졌다.


가끔 우리는 서로에게 이방인이 다.

문 꼭 걸어 잠그고 우리만의 안락한 풍요를 우리끼리 따스하게 영유한다. 낙오한 나그네는 잠긴 문 밖에서 된 바람을 맞으며 서성인다. 타인의 집에서 풍기는 향기로운 음식 내음과 따스한 굴뚝 연기에 마음의 한기는 더해져 간다.     


지금 우리는 풍요와 빈곤 사이에서 공유할 수 없는 심리적 공간 안에 갇혔다. 움켜쥔 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불안과 허탈한 빈손의 소외 사이 지독한 단절의 외로움에 갇혔다.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익숙한 요즘이다.

모두가 함께 겪는 걱정으로 물리적 공간은 닫혔지만 마음은 서로 통한다. 로 격려하며 달랠 수 있는 외로움이다.


'아파트 블루'. 경제적 격차에서 오는 심리적 단절은 그보다 깊고 크다.



신분제도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있을 수 없는 구시대의 야만적인 추억이었다면, 새롭게 야기된 빈부 격차는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야만 인지도 모른다.     

          

인류사회는 진화를 거듭하면서 문화를 낳고, 도덕 윤리라는 질서를 만들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즐거운 삶을 추구하고, 안전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다. 모두에게 마땅히 주어지는 것이 더 많아질수록 우리의 삶도 덩달아 풍요로워짐은 당연하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기본 조건이  주어진 우리 삶은 어떤 모습일까? 획일적인 삶을 조장하는 무한경쟁 틀에서 해방되면 우린 무얼 하며 살게 될까? 보장된 생존 마당 위에서 개인 고유의 모습이 드러나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만인의 존재는 만 가지 개성과 만 가지 아름다 갖게 되리라는 상상에 절로 가슴이 부푼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 성 소수자와 같이 소외된 이들의 삶을 다룬 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서, 저자 김원영 변호사는 ‘신체적인 장애가 삶의 다양성 안에서 아름다움으로의 발현까지 가능한 세상’을 꿈꾼다고 했다.


개인에게 귀책사유가 없는 행운이나 불행을  함께 나누는 세상이라면, 김원영의 꿈은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선망하는 뛰어난 두뇌, 미모, 유산을 갖지 못해도, 설령 장애나 질병을 지녀도 생존에서 낙오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다면, 우리 모두는 주어진 조건에 따른 고유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최소의 생존조건을 공유하는 삶은 외롭지 않다. 인간의 의지에서 비롯된 또 하나의 자연을 함께 공유하는 세상은 더 행복하고 풍요로울 것이다. 누구에게나 삶은 더 이상 ‘견딤’이 아니라 ‘누림’의 기쁜 여정이 될 수 있다.      

여름, 비 갠 하늘은 구름과 파란 하늘의 조화가 아름답다. 석양에 붉게 물든 구름 가득한 저녁 하늘은 고단한 하루 끝에 안긴 엄마 품처럼 따스하다. 아름다운 자연은 모두에게 주어진다. 함께 위안받는다. 자연으로부터 소외된 존재는 없다.      


지금 겪는 우리 사회의 진통은 ‘의·식·주’라는 생존의 기본 조건을 (또 하나의 자연과도 같이) 함께 누리는 미래를 향한 여정이라 믿는다. 오늘의 아파트 소동이 ‘구시대 한 편의 야만적 코미디’로 회자되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는 마음 굴뚝같다.     



나부터 움켜쥔 주먹을 돌아봐야 할 때다. 행복한 삶을 위해 사랑하는 이에게 가르치고 배웠던 '양보와 나눔'의 기억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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