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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이 Jun 05. 2020

우리는 다르다. 아니 같다.

타인의 삶


 나의 출근길 대로변 한 켠에서는 최근까지 매일 1인 시위가 이어지고 있었다. 종교단체에서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팻말을 앞 세우고 시위를 하는 중이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음지에 숨어 있었던 성 소수자들의 인권을 내세우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이에 반대하는 이들이 거세게 대항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상식과 다른 타인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낀다. 나와는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는 이들을 거부하고 혐오하는 마음은 얼핏 인지상정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들이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고, 존경하는 인물이고, 선량한 이웃이라면 어떨까? 우리는 내 가족, 이웃, 사회로 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할 때 불행하고 외롭다고 느낀다.

강자와 약자라는 입장으로 볼 때, 대부분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 그렇듯 나 역시 약자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부자도, 권력자도, 지식층도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직장에서는 소수자의 부류에 속하기도 한다.


내가 맡은 업무는 거대한 시스템 중 하나의 부속품과 같은 위치에서 혼자 하는 일이다. 다수의 입장과 단 한 사람인 내 입장이 서로 다를 때는 그 내용이 무엇이든 나의 의견은 번번이 묵살되기 일쑤이다. 내가 배려받지 못하고 거부당한다고 느껴질 때 슬프고 힘들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대부분은 때때로 다양한 상황에서 약자나 소수자의 위치에 처할 때가 있다.

우리는 스포츠 경기를 볼 때, 약체 팀이 강한 팀을 향해 고군분투할 때면 함께 안타까운 마음으로 약자의 입장에서 응원하게 된다. 좁은 입지의 그늘에서 자기를 부정당하며 살아야 하는 약자, 소수자의 삶을 응원하는 것은 스포츠 경기에서 약팀에게 보내는 응원보다 훨씬 값진 일일 것이다.




얼마 전 직장 내 건물에서 소규모 공사가 있었다. 그 때문에 건설 노동자의 출입이 한동안 잦아졌다. 그들 중 상당수는 외국인 노동자였다. 며칠 후 한 직원이 물건을 잃어버렸다는 소식이 들렸다. 


연이어 또 다른 사람도 제자리에 있던 물건이 없어졌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면서 전해지는 말은 아마도 공사에 투입된 낯 선 노동자들 중 한 사람의 소행인 듯 하니, 문단속을 단단히 하라는 충고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걱정은 우리의 쓸데없는 기우였음이 밝혀졌다. 두 사람 다 놓아둔 위치를 깜빡했었고 곧 그 물건들을 되찾았다. 평소 같았으면 자책하며 좀 더 찾아보려 했을 것을. 낯선 이들에 대해 마음 깊은 곳에 품었던 적대감으로, 섣부른 의심부터 앞세웠던 것이다.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근거 없이 우리 앞의 낯선 사람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다수의 생각이 같을 때 우리는 정당성을 얻었다고 착각한다. 합리적 상식으로 여긴다.과오에 반성하지 않고 쉽게 면죄부를 준다.


새로운 꿈을 꾸며 먼 이국땅에서 살아가는 이방인 역시 그들의 사회 안에서는 우리처럼 다수 중 하나이다. 나 역시 낯선 나라 여행 중에 상대로부터 피부색이 다른 내게 대놓고 적대감을 드러내며 멸시하는 듯한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성적 취향이 다르거나 피부색이 다르거나, 나와 다른 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하다 말할 수 있을까? 내 생각이 대다수 사람과 같다는 이유만으로 정당하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환경 속에 있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을 추구한다. 알고 보면, 우리는 다르기도 하지만 같은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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