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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네제인장 Apr 24. 2023

될 뻔한 이야기


‘왜 더 글을 쓰거나 책을 읽지 않고 의미 없는 유튜브 영상을 보거나 모바일 게임에 빠져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을 며칠 전에 했다. 그래도 아이의 감기 증상이 심해져 집에 머무는 날이 하루이틀, 일주일까지 이어지면서 자연스레 *놈팽이는 엄마가 되었다. 아픈 아이를 돌보는 사람은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한량이 될 수 없다. 게다가 아이에게는 금지시킨 유튜브를 아이 앞에서 볼 수는 없는 일이라 함께 지내는 동안에는 나도 유튜브와 강제로 멀어진다.


아픈 아이에게 하루 세 번 끼니와 먹는 약, 그리고 네뷸라이저를 챙겨주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같이 게임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이야기도 많이 나눌 수 있어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반가울 때도 있다. 그렇지만 고열이 이어지거나, 가끔 잠이 든 후 너무 오래 깨어나지 않으면 걱정스러운 마음에 가슴이 조여 온다. 열이 내리지 않으면 어떡하지, 숨을 쉬고 있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열이 내려갈 때까지, 호흡을 확인할 때까지 이어지고 반복된다. 기침은 또 어찌나 심한지, 가끔 기침을 하다 기도가 막힌 듯 목을 부여잡고 컥컥거리면 안심시키기 위해 괜찮다는 듯한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지만 등뒤로는 식은땀을 흘린다.


열이 며칠씩 이어진 것도 처음이고 숨쉬기 어려울 만큼 심한 기침을 하는 것도 처음 본 거라 몸보다는 마음이 힘들었다. 자다가도 아이의 기침 소리가 들릴 때마다 잠을 깨고 기침 소리가 나지 않아도 수시로 아이의 이마를 짚으며 열을 쟀지만 잠이 부족해도 마음에 비하면 몸은 힘들지 않았다.


아이가 집에 있어도 일주일에 한 편은 글을 써서 올리고 영어 원서 읽기도 빼먹지 않았다. 티가 나지 않는 집안일도 하고 몸도 깨끗이 했다. 마음이 편치 않아도 해야 할 일은 할 수 있다. 오히려 편하지 않을 때일수록 더욱 해야 할 일을 하려고 한다. 할 일을 해내고 난 후의 만족감이라도 있어야 아이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어른의 얼굴을 할 수 있다.


약 기운 탓인지 긴 밤잠을 자고도 낮잠을 청하는 아이를 방안에 눕혀두고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게 아닌 집안일을 하고 글을 쓴다. 엄마로 지내는 동안에는 할 수 없었던 것, 나를 씻기고, 내가 머무는 공간을 정리하고 글을 쓰는 일은 이런 여유 시간에 가장 먼저 해놓고 싶은 일이다.


아이가 깨어나 혼자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텔레비전을 볼 때의 나는 엄마다. 아이가 집을 비우고 해야 할 일도 다 해치웠을 때의 나는 놈팽이처럼 지내고 싶어 하지만 아이와 한 공간에 있을 때의 나는 부러 책을 읽고 영어공부를 한다. 놈팽이 본성을 가진 나라도 아이 앞에서는 조금 더 그럴듯한 어른이고 싶다.


약 일주일 만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다시 한량으로 돌아와 소파에 기대어 SNS를 훑는 것으로 한 시간을 날려버린다. 잠시였지만 유튜브도 보고, 게임도 하고 밥을 먹는 동안에는 주말 동안 못 보고 놓친 예능까지 찾아본다. 해야 할 일은 빼먹지 않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낸다. 꼭 해야 하는 일이 아닌, 하고 싶어 하는 일은 고작 이런 건가. 해야 할 일을 다 했다고 나머지 시간은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공기 중으로 날려버려도 되는 걸까.  조금 더 내 안에 무언가가 쌓이도록 시간을 써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문득 다시 떠올린다.   


비록 놈팽이 본성을 가지고 있지만 아이의 앞에서는 조금 더 성실하고 노력하며 반듯한 모습의 어른이고 싶다. 아이가 보고 있지 않는 순간에도 그런 어른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시간을 ‘나만의 시간’이라고 뭉뚱그려 생각하지 않고 매일 6교시의 학교라 여기며 매시간 알차게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매 순간 무언가를 공부하고 배우다 보면 언젠가는 아이가 있는 시간에도 없는 시간에도 조금은 더 되고 싶은 어른의 모습에 가까워져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이대로 영영 놈팽이가 될 뻔했지만 어쩌면 앞으로는 조금 달라질 수도 있을 거다. 오늘부터 조금씩 시간 대신 놈팽이 본성을 공기 중으로 날려 보내는 일, 잘 할 수... 있겠지?



*표준어로는 '놈팡이'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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