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을 위해 종일 잤더니 아침에 눈을 뜨는 시간이 앞당겨졌다. 일곱 시에 일어날 때도, 여섯 시에 일어날 때도 있었는데 오늘은 다섯 시도 안되어 잠에서 깼다. 저절로 일어난 건 아니고 기침 때문이었는데 한참을 콜록거린 탓에 잠이 완전히 깨버렸다. 이왕 깨버린 거 다시 잠도 오지 않는데 이대로 뭘 할까, 이 시간에 뭘 하면 가장 만족이 될까. 가만히 누워있느니 일단 거실로 나가보기로 한다.
생각지 못하게 자유시간이 주어지면 마음이 설렌다. 지난밤에 다 못한 집안일을 할까, 책을 읽을까 고민을 하다 결국 영화를 보기로 한다. 영화관에서 보려다 못 보고 놓친 것들이 최근 ott서비스를 시작한 걸 알고 있었다. 미국에서 크게 흥행했다는 <바비>와 팟캐스트에서 추천한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중 이 시간에 더 잘 어울릴 법한 영화를 골라 포인트 할인을 체크한 후 남은 금액을 결제한다.
비 오는 새벽녘과 음악 다큐 영화는 제법 잘 어울린다. 영화관에서 보지 못한 게 꽤나 아쉬웠는데 어두운 거실에서 보니 그럭저럭 집중이 잘된다. 음향은 만족스럽지 않지만 창밖의 빗소리와 어우러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원래라면 해가 떠야 할 시간이지만 구름이 잔뜩 낀 탓에 평소보다 주변이 어두워 티브이 화면이라도 영화로 거실을 꽉 채우고 있으니 일인 영화관에 온 기분이다.
어떤 영화일까, 팟캐스트를 듣기는 했지만 샤워를 하며 들었던 탓에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영화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최근에 읽었던 류이치 사카모토의 책들과 비슷할까 예측만 할 뿐이다. 제목은 들어봤지만 본 적 없는 영화들, 그러나 음악은 하나같이 귀에 익은 것이 신기하다. 아, 이 음악을 전부 ‘엔리오 모리코네’가 만든 거였구나! 끊이지 않는 기침 때문에 몸은 지쳐도 새로운 정보들로 인해 알맹이는, 뇌는 어느 때보다 신이 난다.
새벽부터 영화를 보면 집중이 될까 싶지만 된다. 물론 졸음도 쏟아진다. 결국에는 영화를 보던 중간에 다시 잠을 자기 위해 방 안으로 들어가서 한숨 자고 나머지 부분을 마저 보기로 한다. 한숨 자고 난 후로도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지만 창밖은 이미 꽤 밝다. 그리고 아까와는 달리 아이가 계속 오가며 핸드폰으로 자기만의 소음을 만들고 있다. 새벽에 비하면 집중도가 확연히 떨어지지만 영화는 초반부에 비하면 다루는 내용이 훨씬 흥미로워져서 여전히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다.
아이에게는 ‘엄마 영화 봐야 하니까 잠깐만 혼자 놀아줘.’하고 미리 언질을 해두었다. 아이는 아이대로 영화 소리와 자기 핸드폰 소리를 배경 삼아 그림을 그린다. 아이도 언젠가는 엔리오 모리코네의 영화음악을 접할 일이 생길 거다. 오늘은 그저 흘려보낼 뿐이지만 좋은 곡들이니 아이도 언젠가는 듣고 집중을 하거나 플레이리스트에 추가를 해두는 날이 올 수도 있겠다. 지금도 동요보다 만화영화의 OST를 더 자주 듣는 아이니까 영화 OST에도 흥미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처음부터 당연하게 존재하고 있었을 거라 믿던 문화가 어느 한순간, 어느 한 인물로 인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는 놀랄 수밖에 없다. 저절로 생긴 거 따위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누가 시작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는 것에 놀랄 때도 있다. 지금의 영화음악은 엔니오 모리꼬네가 시작한 거라는 걸 이제는 안다. 영화음악은 무성영화 시절부터 라이브 연주로 존재하고 있었지만 엔니오 모리꼬네가 만든 음악은 달랐다. 배경음악이라는 표현은 부족한, 영화의 일부로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영화는 본 적 없어도 음악은 귀에 익은 이유 또한 그래서일 테다. 때로는 영화보다 음악이 존재감이 크다. 내게는 이미 그런 영화와 영화음악이 여러 있지만 그런 문화의 시작이 엔리오 모리코네라는 것이 놀라웠다. 누군가가 터준 물꼬를 따라 여러 음악감독들이 자신의 기량을 펼쳤을 것이다. 그중 한 명이 류이치 사카모토였을 것이고 내가 어릴 적 좋아한 대니 엘프만 아니겠나.
OST라는 장르를 알려준 건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락밴드 이브다. 사춘기 시절의 최애 이브, 그중에서 지고릴라는 가장 좋아하는 음악 장르에서 OST를 빼놓는 법이 없었다. 그게 뭔지도 몰랐던 초등학교 시절, 포털 사이트에서 OST를 검색하는 것을 시작으로 나도 OST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실제로 영화, 드라마, 광고 음악은 들어서 좋았던 적이 많았기 때문에 좋아하는 일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OST라는 단어를 여태 모르고 살았을 뿐이지 알았더라면 더 일찍부터 좋아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때 그 오빠가 그 장르를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따라서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영화음악의 세계와는 조금 더 훗날 만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왕 알려줄 거 좋아하는 곡도 구체적으로 알려줬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엔니오 모리코네도 조금 더 일찍 알았을지도 모른다. 식물을 바라볼 때도 그렇지만 좋아하고 싶어도 몰라서 좋아할 기회조차 가지지 못하는 게 많다. 자꾸만 새로운 것을 찾아보려는 것은 어쩌면 좋아하는 것을, 사랑하는 것을 자꾸만 늘리고 싶어서일 테다. 살아보니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이 가장 즐거웠으니까, 한 대상을 영원히 사랑하는 것은 힘들어서 개수를 늘리는 것으로 행복해지고 싶은 걸 수도 있겠다.
영화는 정오가 되기 전에 끝이 났고, 여운을 더 느끼기도 전에 육아와 투병이 시작되었다. 나을 때가 되었는데 여전히 기침은 줄지가 않고 나은 줄 알았던 복통도 다시 시작이다. 몸이 고된데 아이까지 보살피는 건 더욱 힘든 일이지만 오늘 새벽부터 보기 시작한 영화 한 편이 하루를 버티게 해 준다. 여운은 잠들기 전에 들어보는 음악으로 느끼면 된다. 하루는 매일 조그만 기쁨과 사소한 피로로 마무리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행복으로만 가득한 하루 같은 건 일상이 아니라 기적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