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그런 거야?”
라는 물음에 ‘아이스티를 마셨어’ 하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미리 맞춘 듯 ‘그거 마셨다고 그렇게 돼?’라는 질문을 남편과 엄마 모두에게 들었다.
“그래서 나 원래 차가운 거 안 마시잖아”
라고 말하니 또 똑같이 ‘아 그러네’ 하고 대답한다.
차가운 거 좀 마시고 먼지 있는 선풍기 바람 좀 쐬면 그런다. 소리 지르거나 목에 무리가 가는 톤으로 말을 오래 하거나 노래를 불러도 그렇다. 목에 무리가 가지 않게 말을 하려면 좀 톤이 높고 가벼워지는데 이미지고 뭐고 목을 상하지 않으려면 이 톤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지적인 분위기의 톤을 가지고 싶은데 그런 상태로는 오래 말을 하지 못한다. 잠자리에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때면 어쩔 수 없이 낮은 톤의 목소리를 내게 되는데 그러면 세, 네 권의 책을 읽어주는 거 만으로도 목이 잠겨버린다.
아이스티 하나로 컨디션이 안 좋아지는 건 아무리 익숙한 일이라 해도 민망하다. 다음날까지는 어째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는데 그다음 날에는 전체적으로 체력이 떨어졌다. 이후 주말에는 공연도 보러 가야 하는데 이대로라면 다녀온 후의 상태가 걱정이라 공연 당일에는 최대한 말을 줄이고 조심히 움직이며 출발 전에는 영양제로 플라세보효과도 노렸다.
미리 도착하여 공연장에 앉아있는데 이곳에 자발적으로 온 사람 중 내 텐션이 가장 낮아 보였다. 중간에는 추워서 숄을 걸치기도 했다(습도 높은 여름날의 공연장은 에어컨을 틀어도 조명 때문에 춥기 어렵다). 왼쪽 옆에 앉은 사람은 나처럼 혼자 온 아이 엄마였다. 아이에게 아빠와 함께 저녁 챙겨 먹으라며 전화하는 걸 듣고 알게 됐다. 공연 전만 해도 조용하던 옆 사람은 공연이 시작되자 내내 소리도 지르고 박수도 치며 열정적으로 공연을 즐겼다. 나는 도저히 소리를 지를 수 없어 박수만 치고, 응원하던 가수가 나올 땐 감동에 젖어 입을 틀어막는 것 정도밖에 하지 못했다. 가수가 등장을 하고 모두가 떼창을 부를 때도 입만 뻐끔 거리며 박수를 쳤다. 반대쪽 옆자리는 중년 남성이 앉아있었는데 그 옆자리의 아내를 따라온 건지 연신 하품을 내뱉었다. 그분도 환호성 없이 박수만 쳤는데 나로선 마음은 뜨거워도 리액션은 오른쪽 중년 남성 관객처럼 싱겁기만 해서 누군가의 눈에는 나도 억지로 끌려온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공연이 끝나자 비까지 오는 바람에 피로가 배로 늘어 마치 일하고 온 듯 굳은 얼굴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는데 집에는 모두가 불을 끄고 잠이든 상태였다. 끼니를 챙기기 위해 죽을 끓여 먹고 잠시 쉬는데 느닷없이 휘몰아치는 기침 탓에 먹었던 죽이 역으로 올라왔다. 너무 놀라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고 공연장에서 그랬듯 또 입만 틀어막는데, 급하게 위장약과 기침약을 찾는 동안 자던 남편이 나와 무슨 일이냐 묻는다. 대답할 힘도 없는데 또 기침이 나와 또 입을 틀어막고 여차하면 화장실에 뛰어갈 기세로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자고 일어나 이미 출근한 남편에게 몸상태를 이야기하자 어쩐지 공연장에 다녀오면 조잘조잘 후기를 풀어야 할 사람이 조용하더라며 푹 쉬란 말을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 집은 엉망이고 뭐라도 먹어야 할 거 같아 만두를 시켰는데 몇 개를 먹지도 않았는데 잠이 쏟아져 곧바로 다시 잠이 들었다. 원래라면 내가 자는 걸 싫어하는 아이지만 상태가 안 좋아 보였는지 자도록 내버려 뒀지만 그래도 티브이를 틀어 달라거나 화장실에 갈 때, 나의 애정을 확인하고 싶을 땐 언제든 들러서 잠을 깨우곤 했다.
이렇게 자다 깨다 하는데 또 잠이 들까 싶다가도 또 잠이 들고 또 자기를 반복하다 저녁 일곱 시 반이 되어서야 완전히 일어났다. 목은 여전히 아프지만 며칠 전부터 굳어서 뻐근하니 아팠던 어깨나 목은 한결 가벼워졌다. 집을 치우고 달걀죽을 끓여 아이와 나눠먹고 둘 다 씻고 나니 어느덧 깜깜한 밤. 아이도 지난밤에는 오래 자고 난 후로 기침이 뚝 끊기더니 나는 혼란스러웠던 요즘의 기분이나 상태를 정리할 수 있어 여러모로 개운했다. 목통증은 여전하여 병원은 가야겠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종일 누워 휴식을 취했더니 몸도 마음도 평온해졌다. 잠이 보약이라더니 올해엔 유난히 아플 때마다 잠의 덕을 본다.
코로나는 아니지만 열도 살짝 나고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기도 한다. 며칠이 지나자 목통증은 조금씩 나아지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다. 아프기 전부터 주욱 자괴감에 빠져 지냈다. 나의 조금 먼 과거와 그리고 최근의 언동을 되돌아보며 후회를 했다. 후회해도 별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앞으로 잘하면 되지, 다짐하고 뒤돌아서면 다시 후회하며 괴로워하기를 반복했다. 아프다면서 자기혐오에 빠질 힘은 있다는 것이 기가 차고 한편으로는 이런 걸로 오래 고민을 할 수 있을 만큼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감사하기도 했다. 정작 큰일이 생기면 과거의 언동 따위는 고민거리도 안된다. 당장 눈앞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후회할 시간도 없다.
여름이 끝날쯤이 되니 몸과 마음에 브레이크가 걸린 기분이다. 비단 아이스티 한 잔의 문제가 아닐 거다. 그전부터 쌓인 피로나 면역력의 문제가 아이스티 한 잔으로 터진 걸 거다. 자괴감 역시 비슷하지 않을까. 단지 하루의 언동이 이렇게 날 괴롭히는 게 아닐 거다. 그렇지만 이렇게 며칠 동안 회복해 힘쓰는 동안 복잡했던 머릿속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있다. 여름은 언제나 특별하다. 평소와 다르게 무리를 하기도 하고, 안 하던 행동을 하기도 한다. 덕분에 몸에도 병이 나고 마음에도 혼란이 일었지만 그래도 가을이 오면 분명 이런 엉망진창이었던 여름을 또 그리워하게 될 거다. 평소와는 달라서 신나고 또 후회도, 병도 남기는 여름, 이렇게 아파하는 사이에 또 여름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