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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네제인장 Jul 20. 2023

새벽 세 시

이십 대 중반에는 새벽시간에 깨어있을 때가 많았다. 바빴다거나 부지런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불면증이 있었다. 어느 시간에 잠이 들어도 세 시간이 지나면 꼭 깼는데 그러다 보니 대체로 새벽 세 시쯤이면 억지로 눈을 감고 있어도 정신이 말짱할 때가 많았다. 요즘 같으면 자다 일어나서 핸드폰이라도 봤을 텐데 그때는 새벽에 일어나면 딱히 할 게 없었다. 그때도 스마트폰이 있었고, SNS가 있었지만 지금처럼 도파민을 자극하는 새로운 콘텐츠가 무수히 쏟아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잠이 안 오면 깜깜한 방에 가만히 누워 머릿속에서 나열되는 온갖 생각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것이 내가 누릴 수 있는 전부였다.


‘희붐하다’는 말을 좋아하던 시절이었다. 희붐한 새벽녘을 처음 본 시기이자, 자주 보게 된 시기였다. 이른 새벽에 잠에서 깨어 눈을 깜빡이며 뇌가 풀어내는 상념의 끈을 따라 부유하다 보면 금세 창밖이 푸른빛으로 물들었는데 결국 완전히 환해질 쯤에야 다시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그렇게 또 잠드는 일도 있었으니 잠이 마냥 부족하기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새벽 세 시, 네 시쯤이면 깨어있는 일이 꽤나 괴로운 일이었다는 거다.


처음에는 이 시간이 마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자다가 깨어나면 언제나 평소와는 다른 감각,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상상력도 풍부해지고 어떨 땐 여느 때보다 냉철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어제의 일을 곱씹거나 혹은 더 과거의 일을 떠올리면서 당시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감정이나 생각이 문득 떠올라 마치 무의식 속에 숨겨져 있던 커다란 비밀을 알아낸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낮 동안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라 한동안은 새벽 세 시의 상념에 중독된 듯 빠져들었다. 그때 떠오른 생각을 기억하거나 메모해 두었다가 장르가 모호한 짧은 글이나 소설을 쓰기도 했는데 처음에는 신비롭기도 하고 특별한 사람이 된 거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감각만 예민해지는 줄 알았는데 감정도 격해져서 온갖 생각을 하다가 울기도 하는 날이 늘어나면서 새벽 세 시의 생각이 긍정적인 영감이 아닌 망상에 가깝다는 걸 알아차렸다. 긍정적인 회로보다는 부정적인 회로가 더 빠르게 돌았고 이따금 신선하게 여겨진 아이디어가 다시 한번 자고 일어났을 땐 식상하기 그지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걸 알았다. 주로 부정적이고 비관적이던 그 시간대의 망상은 안 그래도 불투명한 미래로 인해 잠을 설치던 시기를 더욱 불행하게 만들었다.


새벽 시간에 잠들어있기 위해 잠들기 전 술을 마셔보기도 하고, 잠에서 깨어나면 누워있는 대신 차라리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 운동장을 달려 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은 수면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몸과 마음을 지치게 만들었다. 훨씬 더 시간이 지난 뒤에야 술은 마실 때보다 마시지 않는 편이 숙면에 도움이 된다는 걸, 인적이 드문 새벽 시간의 외출은 예민해진 정신상태에 긴장감만 높인다는 걸 알았다.


어디선가 새벽 세 시를 귀신의 시간이라고 여기는 걸 본 적 있다. 포털사이트에 '새벽 세 시 귀신'을 검색하면 <새벽 세 시>라는 제목의 공포영화도 나오고 그 시간대에 귀신을 봤다거나 악몽을 꾼다는 글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건 실제로 그 시간에 귀신이 잘 목격되기 때문이 아니라 새벽 세 시면 일어나는 뇌의 영향 때문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상상력이 풍부해지고 예민해지는 시기, 긍정적인 사고보다는 부정적인 사고가 깊어지는 시기라 귀신과 같은 환상을 본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은 게 아닐까. 새벽에 깨어나 있는 동안 조금은 색다른 경험을 하는 일이 나뿐 만은 아니라는 게 신기하고,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해서 언젠가부터는 새벽 세 시에 눈을 뜨는 일이 있더라도 괴로워하기보다는 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한때의 마법의 시간이었다가, 한때는 두려움의 시간이었던 새벽 세 시.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요즘에도 가끔은 새벽에 눈을 뜨고 다시 잠들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비투비 멤버인 임현식이 새벽 세 시 칠 분이면 ‘현식시(생일이 삼월 칠일이다)’라며 메시지를 보내줘서 그런지 소소하지만 귀여운 이벤트가 있는 시간이 되었다. 주로 새벽에 작업을 한다는 그가 새벽 세 시가 되면 일부러 칠 분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팬들을 향해 메시지를 보내주는 게 고맙기도 하고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만들기도 한다.


특별한 일이 예정된 날일수록 압박감에 꼭 일찍 깨고야 만다. SNS나 OTT서비스가 발달하면서 한동안은 핸드폰을 보기도 하고 전자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그냥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청했다가 그래도 잠이 오지 않으면 방에서 나와 종이책을 읽거나 글의 초고를 쓰고는 한다. 낮이나 저녁과는 다르게 뇌가 깨어있다는 감각은 여전히 있어서 책을 읽으면 집중이 잘되고 글을 쓰면 초고도 잘 써진다. 물론 그렇게 쓴 초고는 꼭 대낮에 여러 번 고쳐야 하지만 그렇게 해서 완성된 글이 마음에 들 때가 많다.


오후 세 시는 주로 잠이 오는 시간이다. 밥을 먹고 난 후라 그런지 잠도 오고 집중이 안된다. 오후 세 시와 다르게 새벽 세 시면 머리가 맑아지는 이유는 대체 뭘까. 다음에 시간이 나면 이것에 대해 연구한 이가 있는지 한 번 찾아보고 싶다. 뇌과학자 중에 새벽 시간의 뇌활동에 대해 연구한 사람이 적어도 한 명은 있지 않을까. 실은 이 글의 초고도 새벽에 깨어나서 작성했다. 이후에 낮 시간과 저녁 시간을 이용하여 여러 번 고쳐야 하긴 했지만 새벽 시간에 깨어있지 않았더라면 이 글도 애초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새로운 글 소재를 떠올릴 수만 있다면 이제는 이른 시간의 기상도 두렵지 않은데 사실 이제는 매일 새벽에 눈을 뜰만큼 체력이 없어서 조금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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