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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네제인장 Jul 06. 2023

여름 불청객

곰팡이에 이은 새로운 적, 권연벌레

“다 먹었으면 과자 봉지 좀 치워.”

분명하게 말하지만 듣고 치우는 이가 하나 없다. ‘아니, 내가 지금 저들과 다른 언어를 쓰고 있나?’ 착각이 들 정도로 아무런 미동이 없다. 소파에도, 바닥에도 다 먹고 난 과자 봉지가, 그리고 과자 부스러기가 굴러다니는데 내 외침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두 사람은 그 쓰레기 틈에서 잘도 앉아 쉬고 있다.


혼자 있을 때는 창문을 연채 지내는 시간이 대부분이지만 식구들이 오면 사정이 달라진다. 우리 집 부녀는 집에서 냄새가 나든 말든 창문 여는 걸 싫어한다. 요리를 하고 먹는 동안 집에 베인 냄새를 다음 날 없애는 일에 비하면 만들고 먹는 동안 환기를 시키는 일이 얼마나 간편한지 저들은 알지 못한다. 집안일 같은 건 자기가 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집안일의 효율성이라는 것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아마 그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여름에 신경 쓸 것은 곰팡이뿐이 아니었던가.  장마 기간에는 하루만 신경을 안 써도 싱크대와 화장실에 곰팡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올해에는 제습기도 사고 서랍 안 제습제도 바싹하게 말리며 일찍부터 장마 대책을 세워 두었다. 안방의 침구 위치까지 바꾸며 구석구석을 다 청소하고 말릴 수 있도록 준비를 했는데 뜬금없는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적이 나타났다.


이름은 모르지만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조그마한 녀석. 영영 모르고 지날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 집에 나타난 이상 적을 없애기 위해서는 일단 특징을 파악하기 위해 이름부터 알아야 했다. 포털사이트 어플을 열고 ‘작고 딱딱한 갈색 벌레’라고 치면 더 찾을 것도 없이 바로 튀어나오는 그 녀석의 이름은 바로 ‘권연벌레’였다. 다만 적을 알면 해치우기도 쉬울 줄 알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알게 되는 건 이 벌레가 아주 골치 아픈 존재라는 사실이었다.


예전에 본가에서도 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뭣도 모르고 반려견 털에 붙어온 외부 벌레인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번 기회에 알아보니 마른풀에서 사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한다. 본가에는 약초를 말린 것이 많았기 때문에 아마 거기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을까. 본가에는 권연벌레 말고도 내가 일본에서 들여온 은색 좀(좀벌레)이 이따금 등장했는데 불이 났을 때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불이 나서 일어나는 일 중 좋은 일이라고 여겨지는 점은 바로 이거다. 집 안 구석에서 남몰래 함께 살고 있던 객식구들을 한 번에 없애버릴 수 있다는 점 말이다.


요즘은 산책을 하는 동안 길가의 벌레에도 관심을 가지는 편이지만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면서 집안에 등장한 초파리나 권연벌레는 도무지 좋아할 수가 없다. 이들이 우리가 먹는 음식에 균을 남기고, 우리의 살을 깨문다고 생각하면 끔찍해서 당장이라도 모두 쫓아내 버리고 싶다(그들도 분명 쓰임새가 있을 것이므로 벌레 따위 세상에서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보는 족족 휴지로 잡아 버리는데 권연벌레 같은 경우에는 손톱으로 눌러 제대로 죽이지 않으면 쉽게 죽지도 않는다. 그들은 다른 벌레들 중 몇몇처럼 죽은 척에 아주 능한데다 작고 딱딱해서 손톱으로 짓누르지 않는 이상 잘 죽지도 않는다.


나와는 달리 벌레에게 아주 친근함을 가지고 있는 아이의 경우 권연벌레를 마치 콩벌레 대하듯 반가운 눈으로 대해서  경악할 때가 있다. 즉슨, 흔히 말해 작은 동물인 햄스터를 대할 때처럼 그들이 자신의 손과 팔을 자유롭게 기어 다니도록 내버려 둔다는 말이다. 잘 보이지도 않는 권연벌레가 아이의 손과 팔 위를 이리저리 기어 다니는 걸 보았을 때의 심정이란, 징그럽다기보다는 아이에게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지 막막함이 컸다.


그 벌레에 대해 신기한 점은 집안 어디에서보다 아이 근처에게서 그 벌레가 가장 자주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알고 보니 과자 부스러기를 흘리면 그 주위로 몰리는 일도 있다고 한다.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언제나 달달한 간식을 달고 다니는 아이의 근처에 가장 자주 나타나고 있어 그 말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여기고 있다. 집 안에서도 아이의 주변에서, 그리고 소파 주변에서 가장 발견이 되는 이유는 아마도 부녀가 지금껏 흘린 과자 부스러기와 주스 냄새 때문이 아닐까.



권연벌레가 나타난 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아침 일찍 배달된 통계피와 편백스프레이를 온 집에 올려두거나 뿌리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다. 벌레가 싫어한다면 뭐든지 하겠다는 마음으로 이 장마철, 곰팡이에 이어 내가 물리쳐야 할 적이 권연벌레로까지 늘어난 것에 무척이나 억울해 하면서도(이 집을 누구보다 열심히 치우는 것이 난데 이 사태의 원인인 당사자들이 아닌 내가 온 힘을 다해 수습해야하는 일이 억울하다) 어쨌든 방치했다가 좋을 일이 없었기에 모든 벌레를 집에서 쫓아내겠다는 마음으로 온 집을 들쑤시며 청소를 했다.


그날 밤,

“오늘부로 자기가 먹은 음식을 바로 치우지 않는 사람들은 크게 혼날 줄 알아.”

라고 부녀에게 말하자 이번에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는지 아니면 드디어 우리 사이의 언어가 통한 건지 반짝이는 눈빛으로 알겠다는 대답을 한다. 일단은 먹이가 될 만한 것을 치우고 편백스프레이와 통계피를 적극 활용하면서도 집안의 습도를 조절 중인데 다행히 효과가 있는지 바로 다음 날은 목격되는 수가 줄었고 또 그다음 날에는 아예 나타나질 않았다.


혹시 몰라 트랩을 사두기도 했는데 어지간히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면 사용하지 않는 편이 정신 건강에 좋다고 하여 일단은 뜯지 않고 보관 중이다. 트랩을 쓰면 집에 숨어있던 온갖 벌레들이 모여 끔찍한 장면을 볼 수도 있다고 하는데 부디 통계피와 편백 스프레이 만으로 영영 이별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아무리 벌레를 끌어모으는 가족이라고 해도 벌레 때문에 식구들을 집에서 쫓아낼 수는 없으니 이대로 권연벌레를 집에서 보는 일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권연벌레를 내쫓기 위한 통계피와 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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