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비투비, <분노의 질주>
혹시나 긴장감에 손에서 땀이 날까 가방 안에 손수건부터 먼저 챙겼다. 오전 열 시, 첫 상영시간이지만 개봉날이라 그런지 영화관 안에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언젠가부터 마블 영화를 보다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를 때가 있어 이번에는 조금이라도 그런 낌세가 보이면 손수건으로 미리 입을 틀어막을 각오로 영화를 기다렸다. 결과적으로 소리를 지를 뻔한 적은 없었지만,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칠 뻔한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로켓! 가오갤은 언제나 날 웃게 하지만 이번만큼은 울게 만들기도 했다.
의리로 향한 영화관이었지만 영화는 보는 동안 잊은 줄 알았던 애정이 되살아났고, 그래서 더 슬펐다. 로켓의 회상 장면과 전반적인 스토리가 슬펐던 탓도 있지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와의 이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이 가장 큰 슬픔으로 다가왔다. 마블 캐릭터 중 제일 애정하는 히어로를 한 명 고르라고 하면 대답하기 어렵겠지만 시리즈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두 번 고민할 것도 없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꼽을 것이다. 이제는 이 시리즈를 보며 낄낄 거리며 웃을 일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어쩌면 <어벤져스 : 엔드게임> 때 보다 더 서글픈 감정으로 영화를 감상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 Volume 3> 보기 위해 영화관을 오가는 길에는 전날 나온 비투비의 12집 미니 앨범을 들었다. 영화를 봤으니 OST를 듣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활동기간만큼은 비투비 음악이 먼저라, 의무랄까, 의리랄까, 일단 앨범이 나오면 며칠이고 종일 새 앨범만 듣는다. 최애 그룹이 오랜만에 컴백을 했는데 현생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가오갤>이 아무리 마지막이라고 해도 스트리밍을 놓칠 수는 없다. 내 안의 여러 덕질 중에서도 아이돌 덕질은 마치 피라미드의 꼭대기와도 같은 부분이라, 동시에 여러 덕질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이유 불문 최우선으로 취급, 아니 대접하고 있다.
늦덕으로 시작했는데 팀이 오래 유지되고 있는 덕분에 벌써 칠 년 차 멜로디가 됐다. 앨범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번 앨범이 나오고 나면 또 언제 새 앨범이 나올지 확신할 수 없다는 불안감 때문에 지난번보다 더 꼼꼼하게 스케줄과 멜로디로서 해야 할 일들을 확인했다. 아이돌 덕질을 하면서 내 나이가 방해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아이돌에게 할미팬은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다) 이번 활동이 내 생의 마지막 아이돌 덕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머뭇거리지 않고 열심히 활동 기간을 즐기기로 했다. 탈덕과 휴덕은 마치 나의 의지에 있는 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활동을 그만두거나 그들의 신변에 어떤 변화가 생기면 그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끝나버릴 수도 있어서 되도록 나대지는 않으면서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각별히 신경을 쓰며 덕질에 임했다.
노래를 듣는 것도 좋은데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콘텐츠들이 공개되는 데다 이번에는 쇼츠 영상도 쏟아지는 활동기간이었다. 유료 소통 서비스인 버블 역시 하루에도 몇 번씩 알람이 울리는 통에 어느 순간 의리는 사라지고 온전히 기쁨과 즐거움만 남았다. 음악방송에서의 라이브가 좋아서 자랑스럽고, 공개되는 콘텐츠는 나오는 족족 웃겨서 웃다 보면 마음속에는 긍정적 기운으로 가득 차 버려서, 아이돌 덕질의 즐거움이라고 해야 할까, 비투비를 덕질하는 즐거움이 현생에도 번져버렸다. 무엇보다 이번 활동을 통해 비투비 덕질만큼은 앞으로도 의리와 신의를 지킬 수 있을 거 같다는 점에서 가장 큰 위안이 되었다.
영화는 주로 혼자 보는 편이지만 이 영화 시리즈만큼은 남편과 함께 본다. 이 세계로 나를 이끌어준 것이 남편이기 때문에 그와 <분노의 질주>를 보러 가는 일은 남편과 돔 두 사람에게 의리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지난 영화를 떠올려보면 이번 편을 보러 가는 길은 오롯이 껍데기만 남은 의리로 가득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마지막 이야기가 될 거란 말이 있었기 때문에 약간의 기대를 품은 채 영화관으로 향했다. 팬심은 잃고 영영 의리만 남게 될 영화라 하더라도 영영 돔의 패밀리를 애정할 작정이었지만 영화를 보는 순간 감사하게도 나의 의리는 충성심에 가까운 것으로 바뀌어버렸다.
<분노의 질주>를 보고 온 날에는 코로나를 마셔야 하는데 영화 관람 후 편의점 세 군데를 돌고도 맥주를 구하지 못해 결국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찾을 때까지 편의점을 몇 군데고 더 돌았어야 하는 게 아닐까, 후회가 뒤늦게 찾아오지만 천식을 핑계로 코로나는 다음에 천천히 마시기로 마음을 바꿨다. 내후년인 2025년에는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필히 코로나부터 사두고 영화관으로 향할 텐데, 그때까지 건강 관리도 잘해서 마지막 편을 보고 난 후에는 남편과 병을 부딪히며 건배를 하고 코로나를 마시며 이전 영화들을 돌려볼 거다. <분노의 질주>는 보고 난 후에 코로나를 마시는 거까지가 의리다. 이번에는 영화도 마무리를 짓지 않았으니 나도 의리로 마무리를 짓는 건 내후년으로 미뤄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