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동굴 3화

by 으네제인장


정우와 윤서가 탄 차의 네 바퀴가 작은 돌멩이 위를 굴러가며 내는 소리도 잦아들 무렵, 집에 홀로 남은 미선은 싱크대 앞에서 초점을 잃은 채 가만히 서 있다. 수전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물 이외엔 모든 것이 멈춰있는 것처럼 손을 힘없이 내려놓은 채 어딘가라고 할 수 없는 어느 한 곳을 응시하고 있다. 지난밤 윤서가 했던 말이 미선의 머릿속을 헤집고 있는 탓이다.

“엄마는 일하고 싶은 생각 없어? 취미 생활이나 그런 거라도 좀 하러 다니는 건 어때? 옷도 매일 똑같은 것만 입지 말고 가끔은 멋도 좀 부리고.”


딱히 미선을 무시한다거나 원망하는 말투는 아니었지만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무슨 마음에서 그런 말을 꺼냈는지 가늠조차 안되었다. 미선은 자신이 전업주부인 것을 윤서도 좋아하는 줄로만 알았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해하느라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아이들 사이에서 맞벌이 부모를 선호하는 경우가 늘었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지만 윤서도 그럴 줄은 몰랐다. 과한 관심을 가지거나 무관심하지 않은 채 적당한 거리에서 자식을 지지해 주는 엄마가 되기 위해 육아서를 챙겨보거나 관련 영상도 챙겨보며 최선을 다 했다. 그렇기에 딸이 미선을 탐탁지 않게 여길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아무리 시대 흐름이 변한다고 해도 학년이 높아질수록 본인 뒷바라지를 잘해주는 엄마를 더 선호하는 게 아니었나. 미선은 언제나 일로 바빴던 자신의 엄마를 떠올리며 윤서에게만 집중하는 미선에게 이런 말을 꺼내는 딸이 못내 서운했다.


오전동안 동굴에서 짧은 시간을 보낸 미선은 기분 전환을 위해 외출 준비에 나선다. 옷장 안쪽에서 베이지색 스커트를 꺼내고 위에는 대학 시절 유럽 여행에 갔다 빈티지 숍에서 산 초록색 니트를 맞춰 입는다. 요즘 유행하는 것과 거리가 먼 스타일이라는 걸 알지만 이것은 미선이 오랫동안 좋아한 차림이다. 굽이 낮은 구두도 꺼내 신으려다 아무래도 발이 아플 것 같아 운동화로 바꿔 신고 늘 가지고 다니는 천 가방을 챙긴 채 마당에 주차해 놓은 베이지색 경차에 몸을 싣는다. 이대로 해안가에 있는 멋진 카페에라도 가면 좋겠지만 혼자서 비싼 커피나 디저트를 사 먹을 용기는 없다. 이 돈을 아낀다고 윤서 학원을 한 군데 더 보낼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대학 진학 후 윤서 앞으로 들어갈 금액을 생각하면 선뜻 내키지 않는다. 결국 마음을 고쳐 잡은 채 카페가 아닌 아웃렛으로 향한다. 윤서가 교복 위에 입고 다닐 겨울 외투가 필요하다고 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집을 나섰지만 운전을 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생각에 빠져있다. 이렇게까지 마음 상할 일이 아닌데 어째서인지 윤서가 한 말이 유난히 아프다. 엄마의 강요로 영문학을 전공하고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오면서 미선도 한때는 결혼에 얽매이지 않고 일에 몰두하며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자유롭게 살기를 바랐다. 정우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아직도 일을 하며 미혼으로 살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언젠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는다면 꿈은 접어야 한다고 여겼다. 험한 바다에서 물질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틈만 나면 동굴에 들어가 남몰래 책을 읽고 공부하느라 정작 자식은 뒷전으로 했던 엄마처럼 딸을 외롭게 만드는 부모가 되고 싶지 않았다. 미선은 정우와 결혼을 결심하면서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지기 위해 꿈을 포기하는 길을 스스로 선택했다. 전업주부로 사는 것이 마냥 행복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엄마와 달리 가족을 위해 불평하지 않고 열심인 것에 자부심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윤서는 왜 그런 질문을 한 걸까. 미선은 이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평소 즐겨 듣던 팟캐스트를 튼다. 스피커에서는 하필이면 '지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냐'는 질문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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