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동굴 4화

by 으네제인장


좋아하는 것.


미선은 생각한다.

‘난 뭘 좋아했지?’

여행, 친구들, 글쓰기. 그러다 질문을 바꾼다.

‘지금은 뭘 좋아하지?’


아웃렛에 도착한 미선은 아웃도어 전문 매장을 돌아다니며 윤서가 입을 만한 옷을 찾는다. 아동복 매장에서나 볼 법한 분홍 패딩을 보며 분홍색 옷만 찾던 딸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이제는 색깔이 있는 옷보다 어두운 색감의 옷을 선호하는 중학생 아이를 위해 따뜻하면서도 가벼운 검은 외투를 하나 고른다. 커다란 쇼핑백을 어깨에 메고 주차장을 향해 걷던 미선은 여성복 매장이 늘어선 곳에서 발길을 멈춘다. 가게 안에는 라일락 색 니트가 걸려있다. 좋아하는 색이지만 좀처럼 용기가 나지 않아 사지 않던 색깔의 옷이다. 그러다 문득 떠올린다.

‘내 옷을 마지막으로 산 게 언제지?’


“정말 잘 어울리세요.”

점원이 으레 하는 인사말인 줄 알면서도 기분이 좋다. 그렇지만 그의 눈에도 입고 있던 초록 니트보다 라일락 니트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피부색과 더 잘 어울린다.

“너무 화려하지 않을까요?”

미선은 조금 어색하여 점원에게 묻는다. 화려하다는 말 대신 화사하다 답해준 것에 용기를 얻은 것일까. 커피 값도 아까워하던 미선은 대뜸 옷을 달라고 한다. 얼마인지 묻지 않았기에 옷을 다 포장하고 카드를 내민 뒤에야 값을 확인한다. ‘이렇게 비싸다고?’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지만 놀란 표정이 점원의 눈에도 보였던 건지 ‘캐시미어라 가격이 좀 높은 편이에요.’라 말하며 할부 개월 수를 묻는다.

윤서의 패딩이 든 종이봉투 옆으로 미선의 니트가 든 봉투가 들려있다. 겨울 패딩보다 훨씬 비싼 니트라니. 아직은 성장 기간인 아이가 입을 옷이라 가성비를 따져가며 구입하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니트 값이 외투보다 더 나가다니 자신이 세상 물정을 몰랐던 것일까 한참을 봉투만 노려보다 결국에는 염치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환불을 위해 매장으로 발길을 돌린다. 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를 잡는 순간, 가방 안에서 울리는 전화에 어쩔 수 없이 뒷걸음질을 치며 핸드폰을 꺼낸다.

“여보세요?”

어두운 화면 너머로 정우의 목소리가 들린다.

“미선아, 혹시 카드 잃어버렸어?”

습관처럼 정우 앞으로 된 카드를 써버렸다는 걸 그제야 알아차린다. 이 정도 되는 금액이 결제되는 경우가 잘 없기도 하지만 여성복 매장이라 결제된 곳의 이름이 낯설기도 했을 것이다. 일을 하다 승인 문자를 보고 혹시라도 밖에 나갔다가 카드를 잃어버린 건가 싶어 정우는 서둘러 미선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그냥 아웃렛에 온 김에 오랜만에 내 옷을 좀 샀어.”

정우는 별 다른 말 없이 알았다는 대답만 남긴 채 전화를 끊지만 미선은 괜히 눈치가 보인다.


집으로 돌아가는 와중에도 무거운 마음은 가시지 않는다. 옷은 결국 환불하지 못했다.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갈 용기가 없기도 했지만 자신이 이 정도의 돈을 쓰는 것이 남편이 놀라 전화를 걸 만큼 드문 일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마음 편히 커피 한 잔도 못 사 먹고 아이 옷도 가성비를 따져가며 사는 미선이지만 그렇다고 집안 형편이 그 정도도 못 쓸 만큼 어려운 것은 아니다. 그저 전업주부라면 절약을 해야 한다고 여겼기에 정우가 벌어오는 돈을 아껴 써왔을 뿐이다. 미선은 얼른 내일이 오기를 바란다. 조금이라도 빨리 다음 날이 되어 동굴에 갈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한다. 이런 자신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건 비싼 니트도 아닌 동굴에서 보내는 시간이라는 걸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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