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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은 아이가 했는데 내가 왜 병드나

드디어 개학!

by 으네제인장

개학을 앞둔 솔직한 심정은 아쉬움이었다. 아이와 보낸 시간이 생각 이상으로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어릴 적 들었던 '심심한 날 친구가 필요한 날 나는 나는 친구를 만들죠'라는 노랫말처럼 친구가 필요해서 아이를 낳았나 싶을 정도로 이번 여름, 아이는 좋은 친구였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자연을 관찰하고 미리 찾아 놓은 밥집에서 아침 식사를 해결하거나, 바닷가와 계곡에 몸을 담그고, 관심 있던 전시를 보러 갔던 모든 일이 아이보다는 내 기억 속에 더 오래 머무를 것 같다.


방학 직전에는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하교 직후 나들이 삼아 부산 곳곳을 돌아다녔다. 과학관에도 가고, 창비 부산이나 체험 전시에도 다녔다. 친구를 대신 사귀어줄 수는 없지만 어쨌든 학교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좋은 추억으로 덮어주다 보면 언젠가는 아이도 학교 생활에 다시 흥미를 가지지 않을까 짐작했다. 확신 없이 한 행동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답에 가까웠던지 개학을 일주일 앞둔 날부터 아이는 학교에 가고 싶다고 종일 노래를 불렀다. 개학 전날에는 마치 소풍 전날처럼 쉽게 잠에 들지 못할 정도로.


책가방, 보조가방, 물통 가방까지 메고 들고 지고 집에서 나오자마자 땀을 흘리는 아이의 손을 잡고 학교로 걸어가는 길. 한때는 등굣길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오늘도 학교에서 일어날 일이 걱정돼.'하고 말하던 아이는 어느새 정면을 똑바로 쳐다보며 경쾌한 발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방학이 끝나더라도 여전히 엄마와 더 놀고 싶어 하기보다는 어서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는 걸 보니 조금 서운하다가도 한껏 주눅 들었던 마음이 이제는 충분히 회복된 것 같아 안심이다. 한동안 엄마와는 많이 놀았으니까, 이제는 친구들과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하고 겨울 방학이 오면 다시 엄마와 많은 추억을 쌓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미련 가득한 나는 그저 입을 꾹 다문 채 덤덤한 척 학교 안으로 떠나보낸다. 처음에는 뒤돌아보며 손을 흔드는 듯하더니 이내 친구를 만나자 엄마는 잊은 듯 곧장 가버리는 모습은 괘씸하기 까기 하지만 그 후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내 얼굴 역시 미소가 만연하다.


원래라면 한국무용 수업을 들으러 가야 하는 날이지만 방학 끝무렵에 생긴 메니에르 증상 때문에 여름 방학에 이어 이번 주 역시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방학은 아이가 했지만 삼시 세끼를 챙기고 학원을 챙기고, 매일 다른 체험 스케줄을 짜고 집안일하는 것 모두가 내 몫이었다. 방학 전에도 아이가 힘들어하거나 도움을 필요로 할 때마다 내가 먼저 달려가야 했다. 딱히 도망칠 곳도 없고 달리 떠맡길 이도 없으니 닥친 일을 최선을 다 해 즐겁게 해내는 것이 내 나름 버티는 방식이었다. 그저 좀 버거웠던 시기에는 명란김을 매일 적게는 두 봉지, 많이는 열 봉지씩 먹었고, 만드는 요리에도 점점 소금과 당의 양을 늘려갔다. 커피는 끊었고 술은 줄였으니 자극적인 음식으로나마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그 여파로 결국 귀에 문제가 생겼고, 한동안 약을 먹고 회복이 되었다 여겼지만 지난밤 배달 음식 한 번으로 압박감과 통증이 돌아온 탓에 오늘부터는 다시 약을 챙겨 먹기로 했다.


어느덧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 개학이 아쉽지만 방학이 끝나는 걸 아쉬워할 수 있다는 게 지금 내가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 아닐까. 혼자 외국어 공부를 하고 글을 쓰고 조용한 집에서 귀를 푹 쉬며 건강을 위해 저염식단을 고민하는 순간은 방학만큼 즐겁지는 않아도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시간이다. 혼자서 보내는 시간도 내 의지가 아닌 정해진 스케줄 대로 주어지는 것이지만 언제나 그랬듯 즐겁게 하다 보면 어느새 주어진 시간 안에서 한껏 즐거워하다 이 시기가 끝날쯤에는 아쉬움도 느낄 것이다. 아이는 학교로 돌아가고 내게는 병이 남았지만 여름 방학 추억도 함께 남았으니 이제는 뒤를 돌아보는 대신 아이처럼 앞으로 나아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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