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앙리 파브르 지음 조은영 옮김 휴머니스트출판그룹
파브르 곤충기에 비해 덜 알려진 파브르 식물기.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 식물기가 담고 있는 내용을 조금도 가늠할 수 없었다. 곤충기를 쓰기 전에 식물기를 먼저 썼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니, 바로 지금까지도 파브르가 식물기를 썼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소영 식물학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린 표지 그림을 넘기면 앞 날개에 장 앙리 파브르의 소개와 함께 번역을 맡은 조은영을 소개하는 글이 채워져 있다. <파브르 식물기>라는 제목에 어쩌면 누군가는 곤충 덕후로 알려진 파브르가 과연 식물에 대해 얼마나 자세히 알고 있을지 의심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소개글 속에서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어릴 적부터 산과 들의 꽃과 나무, 곤충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던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곤충 연구자로만 알려져 있지만 그는 사실 주변에 보이는 모든 자연을 사랑했던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자연에서 산책을 하며 식물, 동물, 곤충(물론 곤충도 동물이지만)을 애정하며 관찰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자연에서 그중 어느 것 하나만 사랑하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앞날개와 속표지를 지나 목차를 본다. 1부와 2부로 나눠진 책은 차례만 보아도 이 책이 어느 특정 종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전반적인 식물을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야말로 식물을 본질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첫 장은 굉장히 흥미롭다. 왜냐하면 이 책의 제목이 '식물기'임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식물이 아닌 동물이기 때문이다.
식물은 동물의 자매다.
'산호와 나무'라는 제목의 1장 첫 문장이다. 그러니까 이 문장은 식물기를 여는 첫 문장이기도 하다. 식물과 동물은 자매라니, 조금은 식상하고 뻔하다. 그렇지만 동시에 간과하기 쉬운 사실이기도 하다. 비슷하다고 여기면서도 때로는 식물과 동물을 완전히 구분 지어 생각하는 일도 흔하니까. 여기서 등장하는 산호는 처음 발견되었을 때만 해도 무생물로 분류되었다가 이후 식물로, 지금은 동물로 분류된 생물이다. 왜 하필 산호를 언급한 지에 대해서는 1장의 맨 마지막 문단을 보면 알 수 있다.
식물은 단일 존재가 아닌 집합적 존재다. 끈끈하게 결합하여 하나로 이어진 개체의 연합이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전체의 번영을 위해 일하는 공동체다. 식물도 산호처럼 살아 있는 벌집이며 모든 일원이 공동의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 문단을 설명하듯 2장에서는 포도나무가 등장한다. 뭉뚱그려 한 그루라 생각했던 포도나무가 뜯어보면 각 폴립의 개체가 한데 모인 산호와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걸 이 부분을 읽으며 깨달았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어디 그뿐일까. 집에서 식물을 키우지 않아도 집 밖을 나서면, 혹은 창문 앞에만 서도 식물을 쉽게 볼 수 있다. 커다란 가로수부터 화단과 공원에 있는 꽃, 그리고 인도 틈으로 고개를 내민 이름 모를 풀까지. 이렇게 매일 수많은 식물을 보면서도 정작 그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책을 읽으며 실감했다. 각 식물의 이름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식물이 가령 인간이라면 뼈와 근육과 피부, 혈관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뇌와 심장을 비롯한 여러 내장 기관과 신경 기관이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모른 채 그냥 겉모습만 보며 그들을 안다고 착각했다.
이 책은 마치 식물학의 기초 교과서와 같다. 시대적인 문제 때문에 지금과는 다른 사실을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책을 옮기는 과정에서 정정하거나 덧붙여 놓은 글이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만약 파브르가 말하는 식물 이야기를 먼저 읽어두었다면 지난봄 히아시스 구근을 키웠을 때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때는 히아시스가 정확히 어떤 특성을 가진 식물인지도 모른 채 그저 포털 사이트에 나오는 검색 결과를 따르기만 했다.
마치 누군가의 겉모습만 보고 반해 섣불리 사랑 고백을 했을 때처럼 지금껏 식물 앞에서 늘 경솔하게 굴었다. 앞으로는 식물을 더 가까이, 자세히 들여다볼 것이다. 책으로 예습을 해두었으니 이제 밖으로 나가 식물을 마주한다면 조금 더 그들의 속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마주하다 언젠가 다시 이 책을 읽는다면 더 많은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또 더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을 거다.
책 말미에 실린 글과 뒤표지에 담긴 글
이 책은 식물의 각 부위와 구조, 기능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어서 일종의 식물 형태학 교과서라고 보아도 무방하다/조은영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떠올리던 식물 이미지가 무참히 깨지고, 식물과 인간의 거리감도 좁혀질 것이다/이소영
마지막으로 내가 이 책에서 기억하고 싶은 문단을 남긴다.
동물과 식물을 절대적으로 구분할 선이 없다는 말이다. 식물에서도 모든 동물의 속성이, 심지어 움직임과 감각조차 똑같이 발견된다. 불분명하고 원시적이며 흔적만 남았으지는 몰라도 말이다/장 앙리 파브르
이처럼 식물은 동물과 절대적으로 구분할 선이 없다. 이 말은 식물과 우리 인간 사이에도 절대적으로 구분할 선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