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 지음 책 읽는 수요일
이소영 *식물학 일러스트레이터 책 중 어떤 것을 가장 먼저 소개하면 좋을지 며칠 동안 고민했다. 첫 책인 <더 블루베리 북>, 아니면 가장 최근에 나온 <식물에 관한 오해>.
고민 끝에 결정한 것은 바로 지금부터 소개할 <식물의 책>이다. 소제목인 '식물세밀화가 이소영의 도시식물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우리가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책이다. 그리고 이 점이 바로 이 책을 고른 이유다.
식물을 오래도록 관찰하고 그것을 정확하게 그림으로 기록하고자 하는 사람.
앞날개에 담긴 저자 소개에 나오는 글. 식물을 그리는 사람이니까 그냥 아무 식물이나 보고 그림만 그리면 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겠지만 그림 하나가 완성되려면 우선 식물을 정하고 그 식물을 오랫동안 관찰하며 공부하는 과정에 들어간다고 한다. 저자는 그렇게 알아간 식물들을 2017년부터 <이소영의 식물 라디오>라는 팟캐스트를 통해 하나씩 소개하고 있다.
그림을 그리며 만나온 여러 식물 이야기, 그리고 겪은 이야기가 담겨있는 <식물의 책>이 내게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실제로는 볼 수 없는 먼 나라의 식물을 이야기하는 책만 보다가 처음으로 우리나라 식물을, 그것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식물을 이야기하는 책을 만났다는 점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식물 책 하면 주로 외국 작가들이 쓴 것을 읽었다. 특히 <나무수업>을 쓴 페터 볼레벤 책을 좋아했다. 나무와 숲, 자연에 관한 신비로운 이야기가 가득했지만 그들을 실제로 볼 수 없고 그곳 환경을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우리나라, 우리 동네에서 매일 보는 식물이 알고 싶은데 처음 식물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도감 말고는 잘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난 것이다.
우리가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잡초의 대표 격인 민들레를 한번 살펴볼까요. 민들레는 도시 어디에서든 봄부터 가을까지 내내 만나볼 수 있는 식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민들레라 알고 있는 이 식물은 정확히 부르자면 '서양민들레 Taraxacum officinale Wdber'입니다. 13쪽
우리가 도시에서 가장 흔하게 보는 식물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첫 챕터에 나오는 잡초, 민들레다. 아직도 종종 헷갈리지만 토종 민들레와 서양 민들레를 구별하는 법을 이 책을 통해 배웠다. 어릴 적부터 봐왔지만 민들레가 어느 계절에 피고 지는지, 그리고 다 같은 민들레인지 아닌지 잘 알지 못했다. 그리고 털이 달린 씨앗만 보면 다 민들레인 줄 알았던 시기도 있었다. 민들레 구별법을 알아낸 후로는 길에서 민들레를 마주칠 때마다 총포라고 부르는 꽃받침을 확인했다. 아이를 키우고 있기 때문에 아이와 매일 길을 걸으며 토종 민들레와 서양 민들레를 구별하는 것은 좋은 놀이가 이기도 했다.
자주 보고 많이 본다고 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느티나무, 개나리, 소나무, 쑥, 토마토, 무궁화 등 길에서 보고, 식탁에서 본 수많은 식물을 이 책을 본 후에야 비로소 알기 시작했다. 책에는 길이나 식탁 위가 아닌 화단이나 꽃집에서나 볼 법한 식물도 소개되어 있다. 스투키, 수선화, 튤립, 틸란드시아, 로즈 마리 등 그 당시 유행하던 식물도 있어 그야말로 도시에서 볼 법한 다양한 식물 이야기가 담겨있다.
우리나라에는 개항 이후 복숭아가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는데요. 일본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항구 근처에서 소규모로 재배하다가 1906년, 아예 국가 차원에서 미국과 중국, 일본의 품종을 들여오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3천 년 전의 복숭아 씨앗이 발견되기도 했고, [삼국유사]에도 복숭아 이야기가 등장하는 걸 보면 이전부터 소규모로는 재배해 온 것으로 보입니다. 163쪽
식물도감은 도감만의 장점이 있다. 선명한 사진, 간결한 정보가 있어 어느 한 종의 정확한 이름과 정보가 궁금할 때는 도감만 한 것이 없다. 그러나 우리가 어디서 이 식물을 볼 수 있고, 어떻게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게 되었으며 어떤 오해를 가지고 있었는지 알고 싶을 때는 도감이 궁금증을 다 해결해주지 못한다. 식물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우선 자주 접하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그들의 사연을 아는 것도 도움이 된다. <식물의 책>처럼 식물의 뿌리와 정확한 이름,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자리 잡고 발전해 갔는지를 설명하는 책이 좋은 점은 우리와 식물 사이를 조금 더 가깝게 만들어준다는 것 아닐까.
이 책의 내지는 테두리 부분이 어둡게 변색된 듯 보이고 부분적으로 얼룩도 보인다. 마치 오염된 책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디자인된 것이다. 오랫동안 보관하느라 변색이 일어난 옛 식물세밀화를 보이도록 만들었다. 게다가 양장. 표지는 마치 식물 그림이 담긴 우표처럼 보인다. 내용도, 디자인도 어느 것 허투루 만들지 않은 책.
책 뒷날개에는 이런 글귀가 남겨져 있다.
제가 소나무 세밀화를 그리는 동안 느꼈던 점은 늘 우리 가까이 있어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오히려 놓치기 쉽다는 것입니다. 희귀 식물이나 멸종 위기 식물보다 근처 앞산의 소나무에 대해 모르는 게 더 많은 수도 있어요.
맞다. 그래서 이 책은 소중하다. 그 누구보다 우리에게.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식물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포함해 여러 권에서 본인을 식물세밀화가로 소개했지만 가장 최근에 나온 <자연으로 향하는 삶-식물을 연구하는 태도>에서 식물 세밀화가라는 명칭이 왜 올바르지 않은 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자신이 그리는 그림은 식물세밀화보다는 식물학 일러스트에 가깝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