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라스 탈라미/김숲 옮김/가지출판사
집으로 가는 길에 공원에 들러 참나무 아래를 두리번거렸다. 도토리 열매를 찾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땅 위로 마른 낙엽 몇 장이 보이지만 열매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여기던 그때, 도토리를 발견했다. 이미 썩은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삼 년째 지켜보는 중인 이 참나무의 열매를 보는 것은 올해가 처음이었다.
사계절 중 참나무를 인지하기 가장 좋은 때는 바로 가을, 도토리가 열릴 때다. <참나무라는 우주>는 10월부터 일 년간 참나무를 관찰하며 쓴 책이다. 다만 참나무 만을 설명하는 책은 아니고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 참나무와 더불어 사는 모든 생명체를 다루는 책이다.
경이로운 한 그루, 참나무를 정원에 심으면 일어나는 일
혹시라도 참나무 종류를 알아가는 책이라고 기대했다면 미안하다. 실은 나도 '참나무'라는 글자만 보고 샀다가 읽어보고 잠시 실망한 적이 있다. 이 책을 쓴 작가 더글라스 탈라미를 앞날개에 있는 글을 빌려 소개해 보겠다.
학자로서 그의 주된 연구 목표는 식물과 곤충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 맺는지, 그 관계가 동물 군집의 다양성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참나무가 다른 식물, 곤충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받는지 설명하는 책이 바로 <참나무라는 우주>다. 챕터가 1월이 아닌 10월인 이유는 그가 이 글을 써야겠다고 정한 것이 10월이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자신의 정원에 너도밤나무 씨앗을 심은 것으로 추정되는 파란어치를 설명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 씨앗인 도토리와 도토리의 해거리를 둘러싼 몇 가지 가설도 덧붙인다.
책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나는 참나무를 나무 중 가장 좋아한다. 뿌리가 줄기보다 훨씬 길다는 점이 그 이유 중 하나인데 그 사실을 처음 알려준 것이 이 책이다.
참나무 떡잎은 그해 흡수한 태양 에너지를 전부 뿌리를 성장시키는 데만 사용한다. 24쪽
대기만성이 꿈인 사람에게 이 말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들릴지 생각해 보라. 참나무는 이미 다 큰 후로도 뿌리 성장을 멈추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눈으로 보는 가지보다 세 배는 더 넓고 깊게 뿌리를 내린다고 한다. 다른 이에게는 그저 작은 가지로만 보일지 모르는 나무가 실은 자신에게 영양을 가져다주고 단단하게 버텨줄 뿌리를 기르는 중이라는 사실은 보는 사람에게도 위로를 준다.
우리나라 말에 '참'이 붙는 동식물은 대체로 사람에게 이로운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참나무는 도토리 열매뿐 아니라 목재, 숯 등 활용도가 높다. 그런데 이 참나무가 도움을 주는 것은 사람뿐만이 아니다. 우선 도토리는 어치를 비롯하여 수많은 새에게 귀중한 먹이가 되고 다른 나무보다 늦게 이파리를 떨어뜨려 그 아래에 사는 수많은 곤충과 벌레, 버섯에게 도움을 준다. 과연 참나무가 주는 이로움이 이것뿐일까.
우리가 어떤 식물종 하나를 완전히 뿌리 뽑는다면 그에 얽혀 살아가는 다양하고 풍부한 곤충의 존재까지 지워버리게 된다는 사실이다. 69쪽
다른 식물종에게도 유효한 사실이지만 참나무라는 나무에는 더 많은 생물이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참나무가 사라졌을 경우 이 세상에서 덩달아 모습을 감추게 될 생물이 얼마나 많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책의 제목이 '참나무라는 지구'가 아닌 '우주'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그래서가 아닐까.
남들보다 준비기간이 오래 걸렸지만 누구보다 세상에 이로운 존재가 되길 꿈꾸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추천한다. 하늘이 높고 맑은 날, 참나무가 있는 공원 벤치에 앉아 책을 읽으며 참나무 주변에서 살아가는 여러 동식물을 관찰한다면 겨울을 앞두고 조금 움츠러들지도 모를 마음이 다시금 단단해 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