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를 사랑하는 기분

정부희/동녘

by 으네제인장

장마가 끝날 무렵이면 어디선가 뿅 하고 나타난다. 오래된 나무 벤치에서도, 공원 그루터기에서도 등장한다. 여름 방학이 끝날 쯤에는 숲 여기저기에서 고개 내민 버섯을 볼 수 있다. 붉고 작은 버섯, 크고 납작한 황금색 버섯, 마치 초콜릿과자 같은 모습의 버섯까지. 최근 들어 SNS에는 버섯 사진이 많이 올라온다. 가을이야 말로 버섯을 위한 계절일까. 버섯이 많다는 건 버섯에 사는 벌레도 많이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시기에 이 책을 소개하는 건 정부희 곤충학자, 벌레박사가 바로 국내 유일한 버섯살이 곤충 연구자이기 때문이다.


<벌레를 사랑하는 기분>은 정부희 곤충학자가 쓴 에세이다. 앞날개에게 적힌 소개글로 작가 소개를 대신해 본다.


'한국의 파브르'로 불리는 곤충학자. 이화여자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한 뒤 '엄마'와 '아내'로 살다가, 곤충에 빠져 뒤늦게 성신여자대학교 생물학과 대학원에 입학해 곤충분류학을 공부했다.


작가는 이미 어린이들을 위한 곤충 교실 시리즈를 비롯하여 여러 권의 곤충 책을 펴낸 바 있다. 그렇지만 곤충학자로서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지금은 한국의 파브르로 불리는 그도 곤충을 공부하기로 시작했을 때는 날 선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손 많이 갈 시기인데 대학원 과정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어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나요?
남편을 잘 뒀군요. 모두 14쪽


앞날개 소개에서 '엄마'와 '아내'로 살다가 라는 문구가 들어간 것은 아마도 이러한 선입견을 이겨내고 곤충학자가 되었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스타트는 순조롭지 않았지만 일단 연구를 시작한 후로는 거침이 없었다.


예순 살 고개를 바라보는 나를 국내 유일의 거저리 전문가로 우뚝 서게 해 주었고, 그렇게 하고 싶었던 버섯살이 곤충 연구의 발판이 되어 국내 유일의 버섯살이 곤충 연구자, 더 나아가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버섯살이 곤충 연구자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52쪽



챕터 2부터는 본격적으로 곤충 연구하는 일상을 엿볼 수 있다. 버섯과 가을의 상관관계 또한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의외로 버섯살이 곤충을 발견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봄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을 역시 숲을 헤치고 다니야 할 이유가 있어, 그 부분은 책을 읽고 직접 확인해 보길 바란다.


만약 식물이나 산책에는 관심이 있지만 버섯이나 곤충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이 책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내가 가장 흥미로웠던 문장을 골라본다면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어떤 곤충들은 입맛이 버섯에 특화되어 버섯이 없으면 살지 못한다. 그런 곤충들은 균식성 곤충 또는 버섯살이 곤충이라고 부른다. 99쪽

사람들이 식용버섯과 독버섯을 정해놓은 것처럼 버섯살이 곤충들도 편식을 해 대개 특정 버섯을 정해놓고 먹는다. 101쪽


사람들은 꽃과 벌을 쉽게 연결시켜 떠올리지만 사실은 모든 꽃이 벌을 매개체로 번식하지는 않는다. 애벌레라고 해서 모든 이파리를 뜯어먹지 않으며 각자 선호하는 식물이 있고 식물들 역시 특정 종을 불러오기 위한 각자 만의 방식이 있다. 이와 같이 곤충 중에서도 특정 버섯을 고집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만약 편식이 심한 사람이라면 특정 버섯만 좋아하는 곤충을 떠올리며 위안을 삼자. 사람이라면 아무리 편식이 심해도 평생 한 종류만 먹고살지는 않을 테니까.


만약 이 책을 글이 업로드되는 가을을 지나 다른 계절에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여름을 추천한다. 왜냐하면 책 중간에 매미 종류와 그 울음소리를 알아볼 수 있도록 큐알코드를 첨부해 두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무려 여덟 종이나!


지난주에 소개한 <이다의 자연관찰일기>가 산책하는 법, 산책을 기록하는 법을 소개한다면, 이번 책은 곤충학자가 곤충을 관찰하고 연구하며 기록하는 방법을 배워볼 수 있다. '정부희 박사가 추천하는 곤충 멍 때리는 법'은 바로 책 뒷날개에 실려있다. 책을 다 읽은 후 곤충 관찰에 흥미가 생긴 독자라면 저자가 알려주는 방법을 따라 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부분을 공유해 본다.


숲 곤충이 사라지면 죽은 나무를 누가 분해할까. 죽은 나무를 치우는 건 살상이다. 그저 내버려 두면 죽은 나무 주변의 생태계는 알아서 잘 돌아간다. 죽은 나무를 중심을 펼쳐지는 작은 생태계가 깨지는 순간, 침묵의 숲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119쪽


우리가 자연 이야기하는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생각은 인간 중심으로 보고 판단하는 시각을 바꿀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죽은 나무도, 우리가 먹지 못하는 독버섯도, 이름 모를 작은 곤충과 벌레조차 이 세상에 불필요한 존재는 없다는 걸 알려준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