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박수용/김영사

by 으네제인장

환기를 시키려고 창문을 열어뒀더니 차가운 공기가 피부를 스친다. 눈을 감으니 하얗게 뒤덮인 연해주 원시림이 떠오른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서늘하고 시린 겨울 공기는 도시보다 고요한 숲과 어울린다. 어느덧 겨울이 시작되고 공기는 한층 차가워져 스산해진 공기를 느끼며 <꼬리>를 읽기에 제격인 시기가 왔다. 이 책은 자연 다큐멘터리스트이자 자연문학가가 연해주에서 만난 꼬리라는 시베리아호랑이를 관찰하며 쓴 이야기다.


시베리아호랑이는 줄무늬가 굵고 간결해서 다 자라면 검은 줄무늬가 이마에는 임금 王자로, 등줄기로 넘어가는 뒷덜미에는 큰 王자로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런 현상은 체격이 작은 암호랑이보다는 체격이 큰 수호랑이, 그중에서도 가장 큰 수호랑이에게서 두드러진다. 그래서 이 지역의 원주민 우데게는 한 지역에서 가장 크고 강한 수호랑이를 왕대라 부른다.


한때는 우리나라에도 호랑이가 살았다. 요즘 야생동물처럼 숲에 속한 존재가 아닌 숲의 주인이었다. 산을 건너려면 호랑이의 허락이 필요했고 그들이 수긍하지 못하면 사람은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시간이 지나고 우리나라를 침략한 왜구는 땅과 쌀, 인간의 목숨을 앗아간 것도 모자라 산의 주인이자 신이었던 호랑이를 죽이고 수탈해 갔다. 이제 우리나라에는 야생호랑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시베리아호랑이는 몇 마리밖에 남아있지 않는다.


이 책의 제목이자 주인공인 '꼬리'는 늙은 왕대다. 작가가 처음 꼬리는 만났을 때는 막 세대교체가 일어나려던 참이었다. 여러 호랑이 중에서도 하필 꼬리에게 마음이 갔던 것은 하필 그 시점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순발력이 줄어 사냥에 거듭 실패하다 결국에는 먹을 것을 찾아 인가로 내려와 목장 안 가축까지 넘볼 정도로 늙은 왕대이지만 그래도 짝짓기에는 성공한다. 작가는 이것이 이 늙어가는, 세대교체를 앞둔 수호랑이의 마지막 짝짓기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위치가 연해주인만큼 책에는 다른 동물들도 등장한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백두산사슴. 한때는 백두산사슴이 너무 많아 우수리사슴을 다 쫓아 보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제는 백두산사슴도, 우수리사슴도 얼마 남아있지 않다. 호랑이가 먹을 것을 찾아 인가로 내려오는 것은 비단 늙은 왕대 꼬리 만의 일이 아닐뿐더러 우연 또한 아니다.


"1년 내내 밀렵꾼들이 너무 많아. 백두산사슴이든 우수리사슴이든 보이는 대로 다 죽여버리지."

보는 족족 다 죽여버리는 것은 인간이지 호랑이가 아니다. 인간은 가죽을 얻고 뿔을 얻기 위해 호랑이와 사슴을 사냥하지만 호랑이는 다르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목숨 걸고 목장 가축까지 탐내는 호랑이지만 인간보다 무자비하지는 않다. 작가는 몇 번이고 여러 호랑이와 마주하지만 살아남았고 이 책을 완성했다.


몇 발자국만 더 다가오면 코털이 닿을 정도로 가까웠다. 호박같이 큼직한 머리 가운데서 화등잔만 한 눈빛이 터져 나와 젖은 안갯속으로 은은하게 번졌다.
죽음처럼 고요한 정적이 안개를 따라 흘렀다. 마음은 뒤돌아서 뛰고 싶었지만 시간이 정지한 듯 몸은 가만히 서 있었다. 발로쟈도 가만히 서 있었다. 호랑이도 마주 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이처럼 가까이에서 대면한 상황에서도 작가는 살아남는다. 호랑이는 이 인간이 자신을 해칠 마음이 있는지 없는 지를 가만히 주시한 다음 조용히 물러선다. 결국 저 아찔한 상황에서 작가가 만났던 두 호랑이와 작가, 그리고 산지기 대장 발로쟈까지 모두가 살아남는다.


책의 중간쯤에는 작가의 예상대로 세대교체가 일어난다. 이제 원래 살던 터전에서 벗어나 민가와 가까운, 그리고 제 짝과 자식조차 만날 수 없는 외각 지역에서 살아야 한다. 이전 짝짓기가 마지막 짝짓기라는 작가의 예상은 정답이었다.


세대교체가 일어난 후에 이어지는 이야기의 배경은 겨울이다. 호랑이 영역에서 벗어난 꼬리의 천적은 이제 무엇일까. 추위, 배고픔, 외로움 그리고 인간 중 무엇이 가장 위협적인 존재일까. 작가는 계속해서 꼬리를 추적한다. 점점 작가의 냄새에 익숙해지는 꼬리. 앞으로 둘의 관계는 어떻게 나아가고 꼬리의 여생은 어떻게 이어지는 걸까.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