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필 무렵

3월 초

by 으네제인장

지난 주말, 꽃이 만개한 매실나무에서 직박구리 무리를 봤다. 나와 아이 시선에도 개의치 않고 저마다 자리를 옮겨 다니며 꿀을 찍어 먹느라 바빴다. 바람도 차고 봄볕도 세지 않았던 시기에는 매실나무 주변으로 아무도 모이지 않아 이대로 수분에 실패하나 걱정도 들었는데 볕이 기운을 얻기 시작하면서 매실나무 주변에 모여든 직박구리를 목격하는 일이 잦아졌다. 매화가 머금은 꿀 덕분에 직박구리는 오랜만에 단맛을 맛볼 수 있어 좋을 테고 매실나무는 수분 가능성이 높아져서 좋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보는 나는 왜 기분이 좋을까.


요즘 우리 동네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건 동백. 겨울 끝무렵 폈던 애기동백은 빨간색보다는 핑크에 가깝고 꽃도 통째로 떨어지는 대신 꽃잎만 한 장씩 떨어뜨린다. 그 꽃이 지고 난 후 요즘은 여러 곳에서 다양한 모습의 애기동백이 피어나고 있다. 정확한 이름을 알고 싶지만 집에 있는 책을 참고하고 포털 사이트를 검색해도 구별이 어렵다. 장미만큼은 아니어도 개량된 품종이 많은 것 같다. 어쩌면 한 시절 유행했다가 요즘은 재배하지 않는 동백나무 품종이 어느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서만 발견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 동백꽃 필 무렵 더 자주 산책을 나가 다양한 꽃을 만나보고 싶다.


내가 살고 있는 부산의 시화는 동백. 그래서 부산 관련 굿즈에 동백 그림이 많고 지역화폐 이름도 '동백전'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해운대에는 동백섬이 있고 동백 이름을 단 초등학교와 중학교도 있다. 그 영향인지 아파트 단지나 상가 화단뿐 아니라 복지센터 화단이나 가로수로도 동백나무를 흔히 볼 수 있다. 다른 동네에도 이렇게 동백나무가 많을까?


우리나라에는 울릉도와 제주도를 비롯해 남부 지방에서 서해안 대청도에 걸쳐 동백나무가 자생한다. [한국의 동백나무] 안영희/김영사


어쩌다 부산과 해운대에 동백이 많아졌을까. 동백섬은 입간판에 쓰인 설명에 의하면 바다로 나간 후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가 기다리다 못해 지쳐 죽은 자리에서 동백나무가 솟아 나와 꽃을 피운 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 후로 동백나무가 섬 전체에 퍼지면서 지금도 동백나무가 많은 섬으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해운대 동백초등학교가 개교한 것은 1976년, 그 시기에 이미 동백나무가 많았던 듯하다.


하루는 어린이를 학교에 보내고 혼자 산책에 나섰다. 이번 관찰 목적은 전날 친구와 걷다 발견한 동백나무와 이전에 꽃봉오리를 봤던 서향 나무를 살펴보는 일이다. 제일 먼저 본 것은 서향 나무. 꽃을 보기 이전에 이미 향기로 존재를 알아차린다. 천리향이라는 별칭답게 사람들이 오가는 인도 바로 옆 화단에서 향긋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동백나무를 찾으러 주변 아파트 단지에 들렀을 때도 화려한 꽃향기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어렵지 않게 만개한 서향 나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인도 바로 옆에 있던 건 작은 나무였다면 아파트 안의 것은 꽤 크다. 지어진 지 십 년 남짓한 건물에 핀 서향과 삼십 년이 넘은 아파트 화단에 핀 서향에는 크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둘러보니 이 아파트는 서향뿐 아니라 다른 나무 종류도 많고 하나같이 관리도 잘 되어 있어서 호감이 간다. 집값이나 위치, 건축 연도나 브랜드가 아닌 화단으로 주거지를 고른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지만 화단에 있는 다양한 식물과 관리된 모습을 보고 나니 이 아파트는 지을 당시 건축 자재를 고르는 기준도 까다로웠을 것 같고 노후된 건물 관리도 잘 되는 중인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물론 확인은 안되지만.


서향 향기 가득한 아파트 단지를 지나 주변 공영 주차장을 찾았다. 지난날, 흰색과 빨간색이 적절히 섞인 동백꽃이 만개한 걸 스치듯 봤기 때문이다. 가까이에서 보니 꽃도 크고 깨끗한 것이 만개한 지 얼마 안 되었나 보다. 혹시나 향기가 나나 싶어 얼굴을 가져가 봤는데 꽃에선 냄새가 나지 않고 나무 바로 옆에 있는 화장실 냄새만 진하게 났다. 이러한 얼룩무늬 동백꽃은 자생한 건지, 아니면 사람들이 보기 예쁘게 개량하여 만든 건지 궁금하다. 뒤에 있는 동백나무에는 빨간빛의 커다란 동백꽃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주차장 입구에 있는 꽃이라 가까이에서 볼 수는 없었지만 꽃이 워낙 크고 선명하여 한 발자국 떨어져서 올려다봐도 충분히 잘 보인다.


요즘은 새들도 바빠지는 시기. 길을 가다 보면 높은 나무, 낮은 나무 할 것 없이 새 둥지를 발견한다. 키 큰 나무에 있는 둥지 주인은 대체로 까치지만 낮은 나무 둥지 주인과는 마주친 적이 없다. 아마도 오목눈이처럼 작은 새들의 둥지가 아닐까. 마침 아침에는 기묘한 장면을 목격했다. 살고 있는 집 뒤로 새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 있는데 덕분에 창문을 열면 수컷 새들이 구애하는 노랫소리가 창 너머로 흘러들어온다. 길을 걷다 문득 그중 가장 큰 나무를 쳐다봤더니 제법 높은 곳에 고양이가 앉아있는 게 아닌가. 혹시나 싶어 주변을 살펴보니 새를 쫓아 올라온 것 같지는 않고 그보다 조금 더 아래쪽에 또다른 고양이가 앉아있다. 아래에 앉은 건 몇 년째 이 동네에서 살아가고 있는 터줏대감. 사람이 쳐다봐도 쉽게 도망가지 않고 경계도 잘해서 종종 마주친 적이 있다. 내려오고 싶은데 길을 막고 있어 내려가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아래에 있는 고양이를 피해 위로 도망을 간 걸까. 고양이들 근처에서 울던 까치는 조금 떨어진 위치에 지어진 둥지로 간다. 곧 번식을 하기 위해 둥지를 꾸미는 중인 것 같은데 다행히 고양이들이 닿을 위치는 아니다. 까치는 그곳에서 잠깐 시간을 보내더니 이내 훌쩍 떠나버린다. 이 와중에도 전깃줄에 앉은 수컷 딱새는 내 귀에 듣기 좋은 노래를 줄기차게 이어가는 중. 내 귀에 좋아서 될 일인가. 암컷에게 이 노래가 닿아야 할 텐데.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는 노래를 부르며 날아가는 두 마리의 동박새를 봤다. 동박새도 지금이 번식기인가.


조금 있으면 동네에 있는 동백나무에서 꽃들이 활짝 필 시기. 새들은 제 짝을 찾기 위해 더 우렁차게 울어댈 것이고 봄비를 맞은 개나리와 목련도 다음 주에는 피기 시작할 것이다. 아마도 다음 주나 다다음 주쯤 동백섬에 가면 꽃으로 가득한 풍경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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