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이야기

'세 달만 프로젝트' - 훌라

by 으네제인장

훌라인(人)이 되기에 세 달은 짧다. 세 달이면 조금은 동작이 자연스러워지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여전히 어색하기만 하다. 그래도 이제는 애써 머리로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훌라를 떠올리고 언제든 따라 출 수 있다. 훌라를 위해 어깨와 목, 허리의 자세를 고쳐 잡는 일에도 익숙해졌고, 덕분에 린 댄스를 추듯 앞으로 기울어져 있던 몸도 조금은 나아졌다.


세 달이 지나 구독 글은 끝이 나도, 훌라는 일상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일단 12월까지 영상 수업을 결제해두었으니 의지만 있다면 새로운 동작과 노래를 계속해서 배울 수 있다.


열심히, 잘하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게 아니라 그런지 훌라는 추는 것만으로도 기분전환이 된다. 정해진 약속 없이 추고 싶을 때마다 영상 속 선생님을 보며 어설프게 따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이 나고 얼굴엔 웃음이 번진다. 꼭 능숙해질 필요 없이 재미 삼아 할 수 있는 일이라니, 얼마 만의 새로운 취미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 한동안 훌라를 추며 가벼워진 몸과 마음은, 하와이를 알아가는 동안 오히려 더 무거워질 때가 많았다.


주로 아름다운 것들을 보며 지내게 될 줄 알았다. 머리에 꽃을 달고 펑퍼짐한 치마를 입은 채 느린 템포의 음악에 맞춰 훌라를 추는 사람을 볼 때면 근심을 떠올리기 어려웠다. 여태껏 내가 알던 하와이는 그냥 진짜 ‘하와이’인 줄 알았으니까. 오색빛의 꽃과 열매, 싱그러운 나무로 가득한, 에너지가 넘치는 화산과 힘찬 파도, 여유 있는 미소를 가진 사람들이 마주치는 이들을 향해 손 인사를 건네는 ‘하와이’로만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훌라를 시작한 후 하와이를 알아갈수록 눈물과, 땀내, 그리고 피비린내 같은 것이 코 끝에 맴돌았다. 천상을 닮은 곳이라고 여겼던 하와이가 꾸며진 유원지처럼 보이고, 여태껏 누군가가 억지로 만들어낸 꿈과 환상의 나라인 하와이를 진짜 하와이라 착각하며 지냈구나, 하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을 가질 때도 있었다.


와이키키의 풍경을 보고 하와이의 진짜 모습이라 여기는 건 놀이공원 속 퍼레이드를 현실이라 믿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언어는 그 나라와 문화를 이해하게 한다더니 하와이 여행 책자 속에서도, 하와이 여행에서도, 다큐멘터리나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것들을 수어 춤인 훌라를 시작한 지난 세 달 동안 알게 됐다.


가벼운 마음만큼 가볍게 시작했던 초기의 글은 뒤로 갈수록 무거워졌다. 하와이에 대한 마음이 무거워지는 만큼 글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그저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면 될 줄 알았던 시리즈는 시간이 흐를수록 조심스러워지고 의심할 것들도 늘어났다.


원래 마지막 글에는 하와이 캐럴이라고 불리는 <Mele Kalikimak a>라는 곡을 소개할 예정이었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듣는 곡이었고 그 문구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심하지 못하여, 몇 년 전 겨울에 만든 하와이풍 엽서에는 ‘Mele Kalikimake’ 문구가 써진 서핑 보드를 그려놓기도 했다. 하와이어로 되어 있으니 당연히 ‘Merry christmas’의 하와이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가 하와이에 들어오면서 생겨난 종교적 핍박에 대해 알게 되면서 마지막 하와이 무드 소개 곡의 계획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애니메이션 <모아나>에 등장하는 ‘마우이’는 하와이를 포함한 폴리네시아 섬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신화 속 신의 이름이다. 그리고 ‘마우이’의 존재나 신의 영험한 기운을 뜻하는 ‘마나’라는 개념은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미신에 속한다. 하와이 원주민을 대상으로 포교가 이루어졌을 때 하와이 사람들이 느꼈을 반발심은 그나마 여러 종교가 존재했던 우리나라 사람들에 비해 훨씬 크고 강했을 거라 생각된다.


하와이 원주민, 사람들에게 하와이 신화는 종교이자 생활이었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에게 기독교 행사인 크리스마스가 기쁘기만 할 리는 없었을 테다. 미국인이 만들어낸 하와이 캐럴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Mele kalikimaka>의 노래 가사에는 자연을 찬양하는 가사도, 하와이어도 등장하지 않는다. 마치 크리스마스 퍼레이드 속에 등장할 거 같은 밝은 가사만 존재한다.


평소 좋아해 마지않았던 ‘The Beach boys’의 ‘Surfin USA’와 ‘Hawaii’도 철저히 미국인의 시선에서 그려진 곡이었다는 걸, 만약 인기곡인 노래 제목이 ‘Surfin USA’가 아니라 ‘Surfin Hawaii’였다면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서핑의 시초가 미국인지 하와이인지(하와이도 미국령이긴 하지만) 헷갈려하지 않았을 거라는 것도 최근에 알아차렸다.


몇 년 동안 품고 있던 내 안의 하와이는 무너지고 지난 세 달 간 하와이에 대한 이미지와 생각을 새롭게 그려나갔다. 검은빛 화산섬 위에 사탕수수 밭에서 일하며 그곳에서 차별을 겪고, 또 나라를 걱정했던 우리의 조상을 그리기도 하고 그런 우리 조상들보다 더 소외된 채 차별받았던 그곳의 원주민들도 그려갔다. 쿡 선장이 오며 들여온 전염병에 속수무책으로 목숨을 잃어간 이들의 무덤을 그려놓기도 하고 원주민들이 처음 건너온 이후 풍요로워진 하와이의 자연환경도 빠짐없이 그렸다. 물론 현재 유명 관광지로써의 하와이 모습도 빠뜨리지 않고 말이다.


훌라는 한때 금지되었다가 다시 부활한 하와이의 전통 무용이다. 그러다 보니 조금은 변형되기도 했지만 억압된 하와이의 역사와 문화를 승계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겠다는 염원이 담겨서인지 어느새 세계적으로 알려진 춤이 됐다. 아직은 훌라의 본모습보다 유흥 문화의 하나처럼 아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육감적인 몸매의 무용수가 노출이 있는 의상을 있고 관광객들을 향해 준비한 밤 공연의 하나로 보는 이들 말이다) 훌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훌라와 하와이에 대한 오해도 조금씩 풀려나갈지 모른다. 그러니, 글 구독 서비스는 끝이 나도 훌라에 대한 흥미와 애정은 멈추지 않아야지. 다행히 나의 마음은 훌라를 시작하기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알로하 하와이’니까 말이다. 하와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훌라를 이어나갈 것이다.






*기분을 하와이 무드로 바꿔줄 영상 추천!


Hawai'iloa


유튜브에서 ‘Hawai’iloa’를 검색하면 나오는 계정이 있다. 최대 규모의 훌라 대회인 ‘Merrie Monarch’ 영상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와이어로 이야기하는 사회자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영어 자막이 달려있어 하와이어를 모르는 사람들도 부담 없이 볼 수 있으며 우리가 흔히 봐왔던 훌라와는 달리 전통 훌라와 하와이 곡들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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