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달만 프로젝트' - 훌라
하와이로 신혼여행 가기 전 여행책들을 읽으며 하와이에 대해 공부했다. 진짜 하와이를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에 숙소도 일부러 가장 오래된 곳으로 정했다. 신축 호텔들보다 시설은 노후됐지만 와이키키 해변 앞에 위치한 100년이 넘은 역사를 자랑하는 호텔은 코나 코피를 판매하는 카페와 밤에 열리는 훌라 공연으로도 유명한 곳이었다.
하와이에 가 있는 며칠 동안 주로 와이키키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 탓에 당시 가장 좋아하는 영화였던 <첫 키스만 50번째>에 나온 하와이 풍경은 보지 못했지만 호텔 안 커다란 반얀트리 아래에 앉아 와이키키 해변을 볼 때면 그 누구보다 가장 좋은 위치에서 와이키키 해변을 바라보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게 되었다.
하와이에 가서 다른 호텔 대신 이 호텔을 골라 머문 일은 한동안 자랑거리였다. 마치 다른 여행객들보다 더 하와이를 더 잘 아는 듯한 기분이 들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BBC에서 제작한 <South Pacific>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고, 내가 알고 있는 하와이가 하와이의 전부가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인간을 제외한 하와이의 자연환경에 대해서만 담은 다큐멘터리는 이후 하와이의 아름다움에 더욱 빠져들게 만들었다. 관광지인 하와이가 아닌 자연환경으로써의 하와이를 알고 나자 이제야 진짜 하와이를 알게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남들이 잘 모르는 하와이 자생식물과 동물을 아는 것은 오랜 역사를 가진 호텔에서 머문 것 이후 새로운 자랑거리가 되기도 했다.
훌라를 시작하고, 하와이에 대해 크게 더 알아갈 것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많이 알고 있는데, 더 알 것이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훌라를 추면서 이번에도 역시 새로운 하와이와 마주하게 된다. 우선 알파벳으로 하와이어를 배울 때보다 훌라로 하와이어를 익히면서 진정한 하와이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게 되었다. 예전엔 문자가 없는 하와이어를 알파벳으로 대신 익히려고 했으니 어쩌면 이해가 어려운 것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읽으며 하와이로 이주한 아시아 사람들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면, 최근 읽고 있는 <하와이 원주민의 딸>은 하와이의 원주민, 진짜 하와이 사람들에 대해 알게 한다. 가끔 이들을 두고 폴리네시아에서 건너온 이주민이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게 표현하기에 이들이 하와이로 건너온 역사와 다른 이주민들이 하와이로 건너온 시기에는 너무 큰 간극이 존재한다.
원주민들이 정착하기 전에는 양치류와 작은 동물들만 존재했던 하와이의 섬들이 폴리네시아에서 사람들이 건너오기 시작하면서 크게 변화했다고 하는 의견들이 있는데 그 이유는 자연의 힘만으로는 식물과 동물이 하와이까지 건너오기에 거리가 너무나도 멀기 때문이다. 대륙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섬인 하와이는 자연의 힘만으로는 코코넛의 열매도 도달하기 힘들어(크고 무겁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하와이에 처음 코코넛을 옮겨온 존재 또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설이 있다고 한다.
고사리와 곤충들, 그리고 아주 작은 동물들만 살고 있던 섬이 다양한 식물과 동물로 가득 차기 시작한 건 원주민들이 하와이에 건너오면서 가지고 온 식물의 씨앗과 동물의 영향이 컸고, 훗날 쿡 선장이 본 하와이의 모습은 원주민들이 살면서 바꿔놓은 하와이의 모습이었지 원래 하와이가 가진 본모습은 아니었다.
하와이에 가면 하와이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적고 대부분 영어를 사용한다. 훌라의 유명세에 비해 하와이어의 활용도가 적은 이유가 궁금했는데 쿡 선장이 하와이에 오면서 같이 들여온 전염병으로 인해 원주민의 80%가 사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게다가 미국이 하와이를 점령하면서 하와이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고 그로 인해 하와이어를 구사할 수 있는 원주민의 수가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고 한다.
식민지화되는 곳 대개의 절차가 그랬듯 하와이 원주민들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언어를 잃었고, 문화를 잃었으며, 그들의 토지와 가족, 설 곳, 목소리를 잃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하와이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거의 하와이 원주민들이 직접 내세운 것이 아니라 미국이 관광객을 모으기 위해 만들어놓은 것이고, 사람 좋은 이미지와 자연을 사랑하는 문화 또한 하와이 원주민의 것인 동시에 조금 가볍고 희화화된 것에 가깝다.
그렇지만 그러한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하와이 원주민들이 쿡 선장이나 미국을 좋아하지 않았고, 미국으로부터 하와이를 지켜내기 위해 애를 썼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자신들이 겪은 부당함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그 목소리가 세상 밖으로 전해지기에 그들의 수는 너무 적고, 그들의 목소리는 너무 작다. 하와이 원주민보다 이민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알려진 것은 그들이 더 억울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수가 더 많고, 목소리가 더 크기 때문이다.
서핑은 원래 폴리네시안들이 즐겨하던 운동이고, 그러니 하와이 원주민들이 미국에 알려준 것이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하와이가 서핑이 시작된 곳이라기보다는 서핑의 핫 스폿 정도로 아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놀랍다. 그리고 내가 열심히 배우고 있는 훌라 또한 여성이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유혹적인 동작을 하는 춤이 아니라 원래는 하와이 원주민 중 남성들이 추는 영적 의식에 가까운 행위였다고 하니 하와이는 아직도 그 인기에 비해 많은 오해를 받는 곳이다.
진짜 하와이가 궁금하다면, 하와이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는 것보다, 하와이 특집 여행 방송을 보는 것보다, 심지어 하와이 여행을 떠나는 것보다 하와이어로 된 노래를 듣고 훌라를 추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 그곳에는 다른 이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 진짜 하와이의 역사와 하와이 사람들이 말하는 진짜 하와이의 모습이 담겨있으니 말이다.
*기분을 하와이 무드로 바꿔줄 노래 한 곡 추천!
Hawaii Halau Hula Ka No’Eau : Traditional Hula
다른 악기 없이 오직 하와이 전통 악기와 목소리로만 이루어진 하와이 곡 앨범. 하와이 무드가 아닌 진짜 하와이 전통 음악이 궁금한 분들에게 추천하는 앨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