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오동통해진 무당거미

by 으네제인장

'이거 완전 꿈속에서 본 거랑 똑같잖아!'

계단 옆 빈 부지를 따라 자유롭게 자라난 식물들 위로 빈틈없이 짜인 거미줄을 보자 지난밤 꿈에서 본 거미줄이 떠올랐다. 마치 초록, 갈색 식물 위로 하얀 막이 씌워진 거처럼 한 집을 지나면 또 한 집, 그리고 그 옆으로도 또 다른 한 집이 나타나 계단 옆으로 거미들의 대규모 주택단지가 형성되어 있는 거처럼 보였다.


어젯밤 꿈에서 거미줄을 해치우며 걷다가 어린아이처럼 크게 소리 내어 울었던 것이 떠올라 그것이 혹시 예지몽이었나 싶을 정도로 산책 중 느닷없이 길게 이어진 거미 군단을 맞닥뜨렸다. 꿈에서는 나를 대신해 눈앞을 가로막은 거미줄을 걷어내 준 이가 있었는데 현실에서는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없었고, 그러는 사람이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체감 상 아직은 여름 끝물에 가까웠지만 절기로 봤을 땐 가을이 시작되고 있던 시점부터 무당거미는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여름이 가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는 내 마음과는 별개로 무당거미가 나타나면 이제 여름도 끝이구나, 하고 조금씩 계절의 변화를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그때도 충분히 컸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계단 옆 거미들을 보니 그때의 크기는 큰 것도 아니었구나 싶을 정도로 보는 거미마다 크기도, 두께도 심상치 않았다. 거미를 두고 이런 표현을 써도 되는지 몰라도 다들 하나같이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모습이었다.


다섯 살 난 아이는 봄에서 여름까지는 콩벌레를, 그리고 여름에서 가을까지는 무당거미를 보는 걸 즐긴다. 아이와 무당거미를 살펴보는 것도 벌써 세 해 째가 되었다. 지난해에는 거미들이 모습을 감추고도 한참 동안을 남은 거미줄만 보며 아쉬워하던 아이였는데 이번에는 좀 실컷 봤으려나, 잘 모르겠다. 나는 처음 무당거미를 보았을 때 너무 무섭고, 조금은 징그럽기도 하여 산책을 하다 발길을 돌릴 정도로 놀란 기억이 있는데 아이는 신기하게도 무당거미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무당벌레는 무섭고, 징그럽다 하는데 무당거미나 땅거미는 오히려 겁을 내지 않는 게 엄마의 눈에는 신기할 따름이다.



몸도 크지만 다리가 길어서 더 커 보이는 알록달록 무당거미



하원 버스에서 내리면 주로 화단 앞에 서서 우리 아파트의 무당거미가 오늘도 잘 있나를 확인하는 것이 요즘 하루 일상 중 하나인 아이는 점점 입체적이고 규모가 커지는 거미줄을 보며 놀라워하는 눈치다. 거미줄에 걸린 낙엽이나 다른 곤충을 보기도 하고 큰 거미와 작은 거미(아이는 아빠와 아기 거미라고 하지만 암컷과 수컷일 가능성이 더 높다. 작은 쪽이 수컷.)가 사이좋게 잘 있는지도 꼬박꼬박 확인하는데 어쩌다 비가 오는 날이면 거미줄이 사라졌을까 걱정을 하기도 한다. 요 전에 내린 가을비에 나도 덩달아 거미줄을 떠올렸는데 다행히 겹겹이 잘 만들어진 거미줄이라 그런지 크게 손상되지 않고 잘 유지되어 있었다. 산책길에서 봤던 거미들과는 달리 우리 아파트 화단에 있는 거미는 먹거리가 넉넉하지 않은지 키는 자랐어도 통통할 정도는 아니다. 거미줄 주변으로 날아다니는 벌이 많지만 벌은 거미줄에 걸리기에는 힘이 좋은 건지, 머리가 똑똑한 건지 몰라도 거미줄에 걸려있는 걸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림을 그리려면 관찰력이 필요하다고 하던데 아이는 무당거미를 관심 있게 바라본 덕에 그림도 곧잘 그려낸다. 사람도 겨우 얼마 전부터 그릴 줄 알게 되었다고 하던데 무당거미를 그리는 손길에는 거침이 없어 아이가 스스로도 무당거미를 잘 알고 있다 생각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얼마 전에는 어린이집에서 거미를 봤다길래 당연히 무당거미를 이야기하는 줄 알았는데 땅거미라며, 땅거미는 거미줄이 아니라 땅에 산다며 신이 난 채 설명을 했다. 포털 사이트에 검색을 해 낮에 본 땅거미 사진을 같이 찾아보기도 했는데 대체로 검은색의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어 정확하게 어떤 거미를 보았는지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러네. 모든 벌이 벌집에 살거나 꿀을 만들지 않는 것처럼 거미라고 해서 모두 거미줄을 만드는 건 아닐 텐데, 거미줄 대신 나무 틈새나 땅굴에서 사는 거미를 사진이나 실제로 본 적이 있음에도 별 생각이 없어 모르고 지내다 아이의 말에 한 번 더 땅거미라는 존재에 대해 인지를 하고 지나갔다. 그러고 보면 얼마 전에 꾼 또 다른 꿈에서도 거미가 나온 적이 있는데 그 거미는 바로 검은색의 땅거미였다.


거미를 알기도 전에 거미는 징그럽고 무서운 존재라는 걸 배워버린 나와 달리 아이는 거미를 거미 그대로 보고 있는 거 같아 조금은 안심이 된다. 나중에 자라면서 또 시선이 달라질 수도 있지만 아직은 거미를 만나는 것이 그저 반가운 모양이다. 내 눈에는 조금 무섭게 보일 때가 있더라도 어차피 더 추운 겨울이 오면 이곳의 거미도, 거미줄도 다 사라질 터, 그 후로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을 거미들이니 겁이 나더라도 아이와 함께 무당거미를 계속 관찰하기로 했다. 가을이면 무당거미를 좋아하는 아이 덕분에 나도 뒤늦게 거미를 알아갈 용기를 얻는다. 세상에는 새롭게 알아갈 생명체들이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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