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가을 풍경

가을꽃과 곤충으로 가득한 집 주변 풍경 관찰기

by 으네제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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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앞을 가로지르며 날아가는 날갯짓에 옆에 있던 사람이 깜짝 놀란다. ‘괜찮아요. 나비예요.’라고 말을 건네니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를 한다. 요즘 등원하는 아이를 데리고 집 앞에 나오면 화단 주변으로 붕붕거리며 날아다니는 벌이 가득하다. 벌뿐일까. 나비, 나방, 파리 등 온갖 곤충들이 이 꽃, 저 꽃을 옮겨 다니며 분주하게 날아다니고 있다.


꽃은 봄이나 여름에나 피는 줄 알았는데 몇 년째 관찰을 하다 보니 꽃은 사계절 내내 피더라. 겨울에도 꽃은 피지만 벌이나 나비가 날아다니기에는 날씨가 너무 추워, 집 주변에서 벌을 볼 수 있는 날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 집 주변으로 벌들이 가장 많이 모여드는 건 바로 지금과 같은 가을. 겨울이 오기 전 마지막 수확이라도 하듯 오전이면 국화나 털머위 꽃을 향해 모여드는 곤충으로 도로 양옆 길가는 활기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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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골드, 송엽국, 구절초, 털머위, 국화는 제 세상인양 피어있고 얼마 전만 해도 만발했던 감국화는 꽤 시들해진 상태. 곤충에게 인기가 많은 건 역시 국화과 꽃들과 털머위다. 국화나 털머위에 모여든 곤충들을 보고 있으면 향기가 궁금하고 그 안의 단맛에 호기심이 생기기도 하지만 어찌나 인기가 많은지 아침에는 얼굴에 벌침을 쏘일 각오라도 하지 않으면 가까이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오전에만 해도 가득했던 벌과 나비는 오후가 되면 사라지고 없다. 그들의 하루 스케줄이 어떻게 되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지만 해가 저물어가는 오후에는 화단 주변을 기웃거려봐도 아침과 같은 분주한 모습은 찾을 수 없다. 그나마 가장 눈에 띄는 게 파리와 벌 몇 마리 정도. 화단 주변이 고요해진 오후나 저녁에 잠시 코를 갖다 대어 꽃향기를 맡아볼 수도 있겠지만 어째서인지 오후에는 곤충이 떠난 꽃보다는 아침에 미처 눈길을 주지 못한 거미줄에 시선을 빼앗기고 만다.





아침에는 작은멋쟁이나비나 나방, 그리고 두, 세 종류의 벌이 파리와 함께 날아다닌다. 가끔 운이 좋으면 벌새를 닮은 검은꼬리박각시도 볼 수 있다. 벌에 관한 책을 읽고 다큐멘터리를 봐도 눈앞에 있는 벌의 이름은 알지 못한다. 그래도 뚫어지게 쳐다보면 그들이 모두 같은 종류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딱 그 정도. 이들 모두가 꿀벌인지 이 중에 뒤영벌이 하나쯤은 섞여 있는지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게 내 수준이다.


벌에게 인기가 많은 털머위는 지난 몇 년 사이에 영토를 넓혀 지금은 우리 집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물 중 하나가 되었다.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이렇게 많지 않았는데 바람이 많이 부는 동네 특성상 털에 매달려 날아가는 것으로 대를 이어가는 털머위에게는 영역을 넓혀가기에 이만한 환경도 없었던 거 같다. 게다가 몇 달에 한 번씩 주변 식물을 잘라 없애거나 뿌리를 뽑아 제거하는 봉사자에게도 털머위는 언제나 대상 외 식물이라 바로 옆에서 몇 번이나 잘려나가는 감국화나 계요등은 조금 억울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아파트 화단에서 가장 많은 건 국화인데 구절초나 갯쑥부쟁이로 추측되는 하얀색, 보라색 꽃이 주축을 이룬다. 몇 년 전만 해도 보이지 않던 보라색 꽃은 최근 삼, 사 년 사이에 부쩍 키가 자라고 꽃도 많이 늘었다. 예전엔 알록달록했던 화단이 지금은 보라색으로 절반이 차 버렸을 정도니 얼마 전부터 화단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한 털머위가 분발하지 않는 이상 이 땅은 아마도 국화들의 세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가을에는 빨갛고 노랗게 물들어가는 가로수를 보는 재미도 있지만 집 주변에 흐드러지게 핀 가을꽃과 그 위를 날아다니고, 그 주변에 집을 짓고 사는 벌레들을 보는 것도 즐겁다. 음악이나 영화의 마지막 클라이맥스처럼 폭발하듯 터져나가는 색감과 활기에 가만히 서서 바라보고 있자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구경하게 된다. 머지않아 추위가 짙어지고 겨울이 오면 날아다니던 곤충도, 형형색색의 꽃잎과 단풍도 모습을 감추게 될 것이지만 그때는 또 그때의 풍경을 즐기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일단 지금은 클라이맥스를 만끽하며 감동하고픈 마음이 먼저다. 내일도 꽃 사이를 부지런히 날아다니는 곤충들을 보며 가을 풍경에 젖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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