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등원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면 자연스레 땅을 향해 시선이 옮겨간다. 빠른 걸음을 걷는 듯 바쁘게 움직이는 벌레와 곤충을 보고 있으면 아침부터 뭐가 그리 소란일까 궁금해져서 아이도 나도 나란히 그들의 일상을 관전하는 입장이 된다. 매일 봐도 매일 바쁜 그들을 보고 있으면 버스를 기다리는 몇 분은 지루할 틈도 없이 지나가버린다.
가끔씩만 볼 수 있어 반갑지만 가까이 다가가기에는 조심스러운 벌이나, 비가 오는 날에나 겨우 보는 지렁이도 있지만 개미나 콩벌레만큼 친근함을 가지고 바라보게 되는 동물은 잘 없다. 아이에게 개미는 동화 속에 등장하는 일이 많아서 그런지 다른 곤충이나 벌레에 비해 가깝게 느끼고, 콩벌레는 동그랗게 말린 모양새가 작은 장난감 구슬처럼 보이다 보니 다리가 많은 다른 벌레와는 달리 귀여운 동물을 보듯 대한다.
쥐며느리 과의 콩벌레가 쥐며느리와 구별되는 점은 동그랗게 말리느냐 마느냐의 차이라고 한다. 인터넷에서 찾은 거라 정확한 정보인지 확신은 없으나 그렇다고 책이나 인터넷 상에 콩벌레에 대한 자료가 많은 것도 아니라 콩벌레 만의 특성을 찾는 일이 쉽지는 않다. 아이들에게 친근한 벌레인 것과는 별개로 콩벌레는 개체수가 많고 인간에게 딱히 큰 도움이 되거나 해가 되는 일이 없어서 궁금해하는 이도, 연구를 하는 이도 적은 걸지도 모른다.
콩벌레는 지렁이나 개미처럼 땅 속을 파고 다니며 토양이 호흡하는 걸 돕고 죽은 벌레나 동물을 먹으며 청소부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을 딱히 공격하는 일도 없고 집안보다는 집 밖에서 자주 발견되는 벌레다 보니 평소 콩벌레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는 사람이나 흥미를 가지는 사람도 많지 않다. 개미 영화나 만화는 있어도 콩벌레가 인간을 위협하는 이야기는 아직 접해본 적이 없는 걸 보면 아이들이나 친근할까 어른들에게는 그저 무관심의 대상인 게 콩벌레인 듯하다.
우리 집 어린이의 경우 콩벌레를 바라만 볼뿐 만지려고 하는 일은 없다. 나는 그 나이만 할 때 콩벌레를 자주 만지고 놀곤 했다. 길쭉한 몸으로 바쁘게 걸어가다가도 잡기만 하면 동그랗게 말리는 모습이 재미있어서 유치원에서 바깥놀이를 할 때면 미끄럼틀이나 시소를 타는 일만큼이나 콩벌레 잡기를 좋아했다. 누구와 같이 놀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콩벌레를 가지고 놀 때 항상 누군가가 있었던 걸로 떠오르는 걸 보면 그 당시 콩벌레를 좋아한 게 나 혼자 만은 아니었던 거 같다.
어느 날은 찢어진 비닐봉지를 구해 거기다 콩벌레를 잔뜩 잡아다 집으로 간 적이 있는데 열리는 현관문 사이로 콩벌레가 담긴 비닐을 내밀었다가 곧장 문이 닫히며 쫓겨난 적도 있었다. 콩벌레를 아파트 화단에 돌려놓고 오기 전까지는 집으로 들어올 수 없다는 엄마의 말에 시무룩해하며 돌려보냈는데, 서운한 기억이라기보다는 어린 나도 귀여워하는 콩벌레를 다 큰 어른인 엄마가 징그러워하고 무서워할 수 있다는 것이 조금 신기했다. 그렇지만 만약 아이가 그때의 나처럼 콩벌레를 잡아서 온다면 허락할 수 있을까 고민해보니 콩벌레를 무서워하지 않는 나 역시도 그건 좀 무리일 거 같다.
밖에서 노는 시간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던 유치원 때와는 달리 초등학생이 되면서부터 흙을 뒤지며 콩벌레를 찾는 일이 줄어들었다. 아이가 어린이집 버스를 기다리며 콩벌레와 개미를 가만히 관찰하는 일도 그리 길게 가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 어째서인지 조금 콩벌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개미는 커가는 과정에서도 성가시거나 징그럽다는 이유로 그 존재를 잊을 일이 잘 없지만 콩벌레는 땅을 자주 관찰하는 어린 나이대가 아니면 사람들에게 쉽게 잊히고 마는 존재라 그렇다.
아이와 함께 땅 위를 바라보기 전까지는 오랫동안 콩벌레를 잊고 지냈는데 아마 아이가 자라고 나면 나는 또 콩벌레라는 존재를 잊고 마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콩벌레를 잊는 일이 뭐 그리 큰 일이겠냐만은 우리가 밟고 다니는 땅 아래에는 땅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수많은 존재가 있다는 사실은 기억하며 살고 싶다. 오늘 눈앞의 땅이 깨끗한 것은 매일 같이 청소를 하는 사람들 덕분도 있겠지만 콩벌레나 개미, 지렁이, 균들처럼 수많은 생명들이 그저 살아가는 덕분도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