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겨울 공기를 가르는 직박구리의 '찌잇찌잇' 울음소리
아이와 손을 잡고 마트로 향하는 길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어 위를 바라보았다. ‘찌잇 찌리짓’ 하는 새 울음소리를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니 마른 가지 위로 양 뺨에 연지를 바른 직박구리가 부푼 몸을 한 채 앉아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고 선 우리 모녀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할 일이 떠오른 것인지 시끄럽게 울어대던 직박구리는 머지않아 길 건너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가을이 가고 공기마저 얼어붙을 차디찬 겨울이 다가오면 아이가 좋아하는 무당거미들도 어느새 모습을 감춘다. 집에서 마트로 향하는 길에는 앙상한 모습의 나무들과 거미들이 남기고 떠난 거미줄 만이 오롯이 제자리에 남아, 아이와 나는 괜히 땅 위의 마른 이끼만 보며 걷는 날이 늘어난다. 다만 줄지어 있는 나무 중에서 딱 한 그루의 나무만 빨간 열매를 겨울 내내 매달고 있어, 덕분에 가끔은 그 나무에 앉아 열매를 뜯어먹는 직박구리를 보게 되는 날이 있다.
살고 있는 아파트 앞의 도로로 걸어 나오면 까치, 까마귀, 비둘기, 참새를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이따금 그 모두가 함께 있는 걸 보기도 하지만 직박구리는 그런 곳에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조금만 발걸음을 옮겨 보면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소외된 커다란 나무들 틈을 총총 거리고 날아다니는 직박구리를 만나볼 수 있다.
직박구리는 우리 동네에서는 조금만 관심을 가져보면 참새만큼이나 자주 목격되는 새지만, 참새나 비둘기, 까치, 까마귀처럼 도로 위나 인도 위를 나타나는 일은 없다. 어쩌면 보통은 인적이 드문 숲속에서 박새나 딱새를 발견했을 때 그 주위에서 직박구리를 함께 보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동네에는 변두리 숲 뿐만 아니라 가까이에 있어도 사람들의 관심을 얻지 못하는 길가의 작은 숲이나 잎과 가지가 무성한 가로수 틈에서 직박구리가 내는 ‘찌잇, 찌리짓’ 소리를 들어볼 수 있다.
내가 직박구리를 처음 만난 것도 도심 안이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몇 년 전의 어느 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길을 걷고 있는데 이어폰 너머로 들려오는 새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거기엔 회색빛 몸통에 양 뺨에는 연지를 찍은 듯 빨간 자국이 있는 새가 있었다. ‘짹짹’도 아니고, ‘까악 까악’도 아닌데 그 울음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를 뚫고 귀에 꽂히는 바람에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바라볼 수 밖에 없을 정도였다. '회색 몸통에 빨간 볼, 그리고 긴 꼬리'를 기억해 검색해 보니 시끄러운 버스 정류장 옆 가로수 위에서 제 짝을 찾겠다고 울부짖던 그 새가 바로 ‘직박구리’라는 이름을 가진 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직박구리’는 오랫동안 ‘새폴더’의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새(New)폴더'라서 ‘새(bird)’의 이름을 랜덤으로 붙이기로 했다니 참 유치하면서도 귀여운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생김새도, 사는 곳도, 울음소리도 몰랐지만 ‘직박구리’라는 이름 만은 친근했기에 산책 중 우연히 만난 새의 이름이 ‘직박구리’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는 무엇보다 반가움이 컸다.
박새나 딱새보다는 자주 접하는 탓에 볼 때마다 운이 좋다는 느낌은 덜하지만 어쩌다 길을 오가는 도중 직박구리가 이파리 하나 없는 마른 가지 위에 앉아있는 모습을 볼 때면 반가운 마음에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바라보게 된다. 박새나 딱새에 비하면 가로수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직박구리지만 그래도 신기하게도 그들은 참새나 비둘기처럼 땅으로 내려와 사람과의 거리를 좁히는 일이 결코 없어 자주 만날 수 있음에도 아주 친근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인지 혹자는 직박구리의 울음소리가 시끄럽고 귀에 거슬린다고도 하던데, 나는 그 울음소리가 반가울 때가 많다. 회색 털을 지닌 탓에 빛이 적은 숲이나 나무 틈에서는 오히려 박새나 딱새보다 눈에 띄지 않을 때가 많은데 울음소리가 독특한 덕분에 요즘과 같이 가지가 앙상한 나무들이 많은 겨울에는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가지들 틈에서도 금세 직박구리를 발견할 수 있다. 직박구리는 도시에서도 살아갈 수 있지만 땅 위로 내려와 사람들이 흘린 음식 부스러기를 먹는 일 없이 언제나 나무 위와 숲에서 먹이를 찾는다. 그래서인지 사람들 가까이에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눈에는 쉽게 띄지 않는 거 같기도 하다.
나는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직박구리를 두 눈으로 보기 보다는 울음소리로 그들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몇몇의 새들처럼 땅 위의 생활에 적응해 나가기 보다는 나무 위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먹이들을 먹고 자라며 오로지 나무 위에서만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환경이 유지되기를 희망한다. 봄이 오면 새순을 먹고, 여름이 오기 전 짝찟기를 하고, 여름과 가을에는 넘쳐나는 먹이들을 배불리 먹은 다음, 겨울에는 저혼자 빨간 열매를 매달고 번식의 기회를 노리고 있을 외로운 나무 가지 위로 내려앉아 그 열매를 쪼아 먹는 직박구리를 볼 수 있는 사계절이, 숲이, 나무가 있다면, 어째서인지 직박구리와 함께 살아가는 나도 조금은 이 환경에 안심하며 살아갈 수 있을 거 같다.
*정정이 필요하거나 피드백을 원하는 부분은 댓글을 통해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