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어느 날의 나에게 보내는 메세지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by 김은혜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이제 막 5개월이 되는 남자 아이 하나를 키우는 엄마이자 선생님의 글을 간간히 읽어오던 독자이기도 합니다.


저는 요즘 아기 수면교육이라는 걸 하고 있어요. 말이 좀 웃기죠? 수면 교육이라니. 수면까지도 교육을 하나 싶으실 것 같아요. 그런데 아직 아가들은 혼자 잠드는 방법을 몰라서 그것도 배워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것 쯤은 동물의 본능으로 저절로 깨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한데 어쨌든 양육자가 도와 주어야 한다니까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잠투정을 한다고 울어도 안아주지 않고 단호하게 뉘여 놓습니다. 잠은 혼자 자는거야! 하는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죠. 자꾸 안아 버릇하면 손 탄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안아 재우기 시작하면 돌이 넘어서까지도 계속 안아 재워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소리를 듣기도 해서요. 의사나 육아 전문가들도 누워서 스스로 잠이 들어야 아기도 더 깊이 잘 잔다고 해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어제도 아기는 잠들기 전 침대에서 울고 있고 저는 방 밖에서 잠들기를 기다리며 핸드폰을 보고 있는데 선생님이 따님에게 쓰신 편지가 인기 게시물로 뜨더라구요.

예전에도 읽은 적이 있는 글이었는데 이젠 자식을 키우는 엄마가 된지라 바로 일어나서 울고 있는 아기를 안아 주었습니다. 번뜩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나중에 이 아이와 영원히 이별할 때가 오면 (반드시 그런 순간이 올텐데) 이 아이에게 수면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은 것 보다, 엄마 품이 필요해서 울고 있는 아이를 한 번 더 안아주지 못한 게 더 후회가 될 것 같았습니다. 혼자 누워서 엉엉 울고 있는 얼굴이 너무 아른거릴 것 같았어요. 잠 드는 법이야 천천히 다시 가르치면 되지만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 30초는, 지금 이 30초는 다시 오지 않으니까요.


사는 게 녹록치 않습니다. 뭐 먹고 사는 문제야 어떻게 해결이 안되겠습니까만은, 요즘 세상에는 산다는 게 꼭 먹고 사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아서요.

먹고 입는 것, 취미 같은 것들도 남들 하는 만큼은 하고 살아야 하고 애 키우면서 드는 비용도 무시 못하구요, 때 되면 교육도 남들 하는 것만큼은 시켜줄 수 있어야 하니까요. 열심히 벌어야 해요. 물론 그 ‘남들 하는 만큼’이 얼만큼인데? 하면 뭐라고 대답할 지는 잘 모르겠네요. 아마 끝이 없는 욕심일 것 같기는 합니다. 이거 하면 저것도 하고 싶고 그 다음엔 또 저것도 시키고 싶고, 그럴 것 같네요.

선생님의 편지를 읽고 나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그 30초를 나는 아끼지 말아야지 라고 다짐해 봅니다만 사실 자신이 없습니다. 이제 아이에게 굿나잇 키스는 꼬박 꼬박 해 줄지라도 다른 곳 어디서 내가 이 아이를 외면하고 있을지, 시간이 많이 흐른 뒤 내가 후회할 순간이 단 한 순간도 없을지, 자신이 없어요.

아이를 무척 사랑하고 아낌없이 표현해야 하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상에 없다는 걸 머리로는 분명 알지만 이리 저리 치여 살다보면 모르고, 혹은 못 본척 넘겨 버리는 일이 왜 없겠어요? 저는 정말로 제 아이에게 한 톨의 후회도 없을 만큼의 사랑을 다 줄 수 있을까요?


살면서 정신이 번뜩 드는 순간을 자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버거운 인생을 살다 보면 분명히 놓치고 잊고 사는 부분들이 있겠지요. 많을 거예요. 그럴 때마다 너무 늦지 않게 정신을 차리고 뭐가 제일 중요한지를 다시 되돌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여러 장치들을 주위에 좀 두어야 할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좋은’ 사람들과 ‘좋은’ 책들 같은 것 말이에요. 선생님의 글들도 가까이 두고 자주 꺼내 읽어야겠네요.


선생님이 사무치게 그리워 하셨을 그 30초가 저에겐 있습니다. 얼마나 많이 허락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최소한 1번의 30초는 있으니까요. 정말 잘 쓰겠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꼭 안아주고 사랑한다 사랑한다 아낌없이 표현 하겠습니다. 눈을 마주치고 엄마의 마음을 전할게요. 저에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날, 그 인기 게시물을 읽은 부모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들을 한 번씩 안아줬을 거예요. 그 아이들은 30초간 엄마 아빠의 사랑을 듬뿍 느꼈겠네요. 정말이지 기적같은 30초가 아닌가요? 그 많은 반짝이는 마음들 때문에 선생님은 왠지 별이 되셨을 것 같아요. 따님은 만나셨겠네요? 이제 두 분은 30초가 아니라 영원의 시간을 함께 하시겠어요. 행복하세요. 저도 꼭, 반드시 행복한 엄마가 될게요.


선생님의 편지를 아래에 한 번 더 써둡니다. 바쁜 어느 날의 저를 정신 차리게 하기 위한 장치가 될 거예요.



이어령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네가 서재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나에게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를 듣지 못했다. 나는 글을 쓰는 시간이었고 너는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다. 내게 들려온 것은 "아빠, 굿나잇!" 하는 너의 목소리뿐이었지. 이 세상 어떤 새가 그렇게 예쁘게 지저귈 수 있을까. 그런데도 나는 목소리만 들었지. 너의 모습은 보지 않았다. 뒤돌아보지 않은 채 그냥 손만 흔들었어. "굿나잇, 민아." 네 인사에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


너는 그때 아빠가 뒤돌아보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안아주기를, 그리고 볼에 굿나잇 키스를 해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아니면 새 잠옷을 자랑하고 싶어 얼마 동안 머뭇거렸을 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다. 그때 네가 본 것은 어차피 아빠의 뒷모습뿐이었을 테니까.​


어린 시절, 아빠의 사랑을 받고 싶었다는 너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서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글의 호흡이 끊길까 봐 널 돌아다볼 틈이 없었노라고 변명할 수도 있다. 그때 아빠는 가난했고 너무 바빴다고 용서를 구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바비인형이나 테디베어를 사주는 것이 너에 대한 사랑인 줄로 알았고 네가 바라는 것이 피아노이거나 좋은 승용차를 타고 사립학교에 다니는 것인 줄로만 여겼다. 하찮은 굿나잇 키스보다는 그런 것들을 너에게 주는 것이 아빠의 능력이요 행복이라고 믿었다. ​


너는 어느 인터뷰에서 그건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였을 뿐이라고 날 두둔해 주었지만, 아니다. 진실은 그게 아니야. 그건 사랑하는 방식의 차이가 아니라, 사랑 그 자체의 부족함이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겠다. 아무리 바빠도 30초면 족하다. 사형수에게도 마지막으로 하늘을 보고 땅을 볼 시간은 주어지는 법이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사랑을 표현하는 데 눈 한번 깜박이는 순간이면 된다. 그런데 그 30초의 순간이 너에게는 30년, 아니 어쩌면 일생의 모든 날이었을 수도 있겠구나. 만일 지금 나에게 그 30초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하나님이 그런 기적을 베풀어주신다면, 그래 민아야, 딱 한 번이라도 좋다. 낡은 비디오테이프를 되감듯이 그때의 옛날로 돌아가자.​


나는 그때처럼 글을 쓸 것이고 너는 엄마가 사준 레이스 달린 하얀 잠옷을 입거라. 그리고 아주 힘차게 서재 문을 열고 "아빠 굿나잇!" 하고 외치는 거다. 약속한다. 이번에는 머뭇거리며 서 있지 않아도 된다. 나는 글 쓰던 펜을 내려놓고, 읽다 만 책장을 덮고, 두 팔을 활짝 편다. 너는 달려와 내 가슴에 안긴다. 내 키만큼 천장에 다다를 만큼 널 높이 들어 올리고 졸음이 온 너의 눈, 상기된 너의 뺨 위에 굿나잇 키스를 하는 거다.

굿나잇 미나야, 잘 자라 민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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