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3일
오늘은 바로 D-day 였다.
어떤 '바로 그 날'이었냐는 다음과 같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매해 연말마다 진급자를 발표한다. 워낙 진급하기가 까다롭기로 소문난 회사라 진급 대상자들 중에 실제로 진급에 성공하는 이는 많지 않다. 누락도 잦고 재누락도 드물지 않다. 진급 발표가 있는 당일에는 아침부터 사무실 전체에 긴장감이 팽팽하다. 때문에 진급에 성공한 이들에게 쏟아지는 축하는 한층 진하다. 몇 해째 진급에 실패해 마음고생하던 사람들이 드디어 성공하면 주변에는 안도와 축하와 감사가 쏟아진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 진급의 시즌이 찾아왔고 우리 부서에서는 단 세 명이 진급에 성공했다. 당연히 그 세 명은 매우 기뻐했고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소위 '누락자'들은 침울했다. 그런가하면 중간 지대에 있는 자들도 있다. 애초에 진급 대상자가 아니었던 사람들. 적당한 축하와 위로가 오고 간 뒤,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진급턱은 언제 쏠거야?"
이 부서에서는 매해 진급자들이 돈을 모아 전체 부서원들에게 '호텔 뷔페'를 쏘는 전통(?)이 있다. 진급자가 1명이면 혼자 다 내는 것이고 진급자 수가 충분히 많은 해에는 부서원 전체가 특급 호텔의 뷔페를 먹는 호사를 누리기도 한다. 올해는 세 명밖에 없었기 때문에 회사 근처에 가성비 좋기로 소문난 적당한 가격의 뷔페를 가기로 했다. 그래도 외식은 외식, 뷔페는 뷔페다. 며칠 전부터 식사에 참석할 인원 수를 세고 예약을 하고, 그 날은 휴가도 쓰지말고 따로 약속도 잡지 말라고 서로 신신당부를 한다. 하루 전날이 되면 오늘 저녁부터 굶겠다는 사람도 생기고 누구는 차라리 술을 진탕 마시고 내일 허 한 속으로 뷔페를 가겠다는 별 희한한 생각을 하는 이도 있다.
오늘이 바로 그 디데이였던 것이다. 점심시간이 되자 일찍감치 전 부서원이 길을 나섰다. 10분 정도 걸어 뷔페에 도착해 입장을 했더니, 가히 가성비가 좋다고 소문이 나긴 했는지 사람이 정말 많았다. 평일 점심시간에 호텔 뷔페를 오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각자 자리를 정하고 앉음과 동시에 일어나 음식을 가지러 갔다. 나 역시 그 대열에 합류해 가장 먼저, 고기 굽는 냄새를 따라갔다. 역시 뷔페에선 스테이크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게 뭔가,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다. 어느 정도였느냐하면 고기를 기다리는 줄이 스테이크를 굽고 있는 요리사를 둘러 거의 두 세바퀴를 감싸고 있었다. 마치 인터넷에서나 보던 대륙의 풍경을 보는 것 같았다. 다들 고기도 한 점 못 먹고 사는 사람들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니겠지. 별 수 없이 줄을 서고 10여 분을 기다려 겨우 고기 한 점을 얻었다. 일행 중에는 벌써 식사를 시작한 사람도 있을 것이므로 서둘러 다른 음식을 담아 자리로 갔다. 기대를 가지고 드디어 스테이크를 썰기 시작했는데 이건 또 뭔가, 안 익어도 너무 안 익었다. 칼로 잘 썰어지지도 않을 정도로 안 익은 거의 생고기였다. 아마 구우시는 분이 마음이 급해서 충분히 익히지 않고 그냥 막 던져 놓은듯 했다. 고기의 상태도 썩 좋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스테이크는 여기서 포기다. 다른 음식들도 많으니까 그걸 먹자. 뷔페는 그런 곳이니까.
사실 이렇다할만큼 맛있는 음식은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한번 맛 보고싶다 하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음식들은 내 배를 채우고도 남을 만큼 많았다. 거기 있는 음식의 절반 정도를 한 입씩만 먹어도 이미 배가 너무 불렀다. 모두가 배를 두둑히 채웠고 그렇지만 딱히 맛있지는 않다는 말을 하며 그래도 더 많이 못 먹어서 슬프다고 정말 잘 먹었다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식사를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오늘 그 식사 자리에는 정말로 많은 음식이 있었고 정말로 많은 기분도 있었다. 내가 앉은 테이블에는 진급자도 있었지만 누락자도 있었다. 축하의 인사를 하며 맛있게 음식을 먹음과 동시에 그런 기분이 아닐 사람들의 눈치도 조금 살펴야 했다. 고생 많았다는 격려를 건네는 것과 동시에 내년에는 꼭 될 것이라는 위로도 함께 전해야 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마음 편한 사람들의 붕붕 뜬 기분들이 있었고 부하 직원들을 더 잘 되게 하지 못한 상사들의 미안한 마음도 어딘가 분명히 존재했다. 온갖 음식이 모여있는 뷔페였는데 온갖 감정이 모여있는 테이블이기도 했다. 음식이 모여있는 저기가 뷔페인지 방 안의 이 테이블이 뷔페인지 조금 헷갈리는 순간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