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의 하루

2019년 1월1일

by 김은혜

12월 말의 어느 날, 인천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올 12월은 축하할 날이 많은 달이었다. 우리가 사귀기 시작한 지 100일, 처음으로 함께 맞는 크리스마스와 연말. 축하할 일이 많은 달은 앞둔 나는 이 날을 어떻게 특별하게 보낼까 하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해야 싸우지 않고 무사히 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사실 더 컸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데, 이렇게 반드시 행복해야만 할 것 같은 날에는 반드시 행복해야만 한다는 강박 때문에 싸울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었다.


내가 낸 아이디어는 이것이었다. 축하할 날 당일은 평범하게 보내자. 그냥 여느 때와 다름없다는 마음으로 보통의 데이트를 하는거다. 밥먹고 이야기하고 차 마시고와 같은. 그래도 그 모든 날을 그렇게만 보내면 혹여 서운할 수도 있으니 그 기념일 중간 어딘가쯤 애매하게 날을 정하고 그 날을 특별하게 기념하며 보내는 게 어떻겠냐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정한 날이 12월 29일이었다. 크리스마스와 백 일과 연말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었지만 실제로는 아무 날도 아닌 그런날. 그 날엔 애인이 적립해 둔 포인트를 이용해서 인천 송도에 있는 어느 한 호텔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그 날을 위해 호텔 주변의 맛집도 찾아두고 둘이 2차로 마실 와인을 고르고 와인에 어울릴 안주도 미리 주문해 두었다.


그리고 인천으로 가는 당일, 애인이 아침 일찍 나를 깨웠다. 나는 너무너무 더 자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는데 애인은 차가 밀리기 전에 일찍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아직 운전면허가 없는 나는 차가 밀리는 도로와 그렇지 않은 도로를 운전할 때 느끼는 피로감의 차이를 알 턱이 없었다. 그저, 우리는 하루 잘 쉬러 호텔에 가는 것인데 출발부터 왜 이렇게 피곤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그래도 운전은 애인이 하는 것이고 이렇게 특별한 날 하루를 시작부터 망칠 수는 없으므로 조금만 투정을 부리다가 일어나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다행히 서두른 탓에 도로는 밀리지 않았고 일찍 인천에 도착할 수 있었다. 너무 일찍 도착해서 체크인을 할 수 있는 시간까지 두 시간 여가 남았다. 점심을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내가 미리 찾아뒀던 맛있어 보이는 돈까스 가게를 찾아가 속까지 따뜻해지는 생선가츠카레와 치킨가츠카레를 맛있게 비웠다. 커피까지 한잔 하며 기다리다 보니 이윽고 다가온 체크인 시간. 그렇게 올라간 룸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크고 좋았다. 내가 누워서 여기부터 저기까지 굴러도 남는 커다란 슈퍼킹 사이즈의 침대, 커다란 욕조와 화장실, 고층의 탁 트인 시원한 뷰, 와인 잔도 준비되어 있었고 쇼파도 있었다. 히터를 너무 빵빵하게 틀어놔서 건조할 것이 걱정이었지만 그것만 빼면 완벽했다고 할 수 있다. 감기기가 있는 애인이 걱정이었던 나는 들어가자마자 큰 수건 두 개를 물에 적셔서 걸었다. 방이 너무 넓고 극도로 건조해 과연 효과가 있을까 싶었지만 그래도 없는 것 보다는 나을 터였다.


밖에서 추운 바람을 많이 쐬었고 따뜻한 카레로 속이 채워진 애인과 나는 슈퍼 킹 사이즈의 침대에 눕자마자 노곤함이 몰려왔고 일단 한숨 자기로 했다. 아침에 못다잔 잠을 보충하는 시간. 스르륵 잠이 들었는데 눈을 뜨니 무려 네 시간을 잤다. 5시에 시작인 호텔 클럽 라운지 해피아워를 즐겨볼까 했는데 그 계획은 물 건너 갔다. 눈뜨니 다시 배가 고파서 저녁을 먹으러 나가야 했다.


저녁은 미리 검색해 두었던 호텔 근처의 삼합집을 갔다. 그 가게는 서울에서도 먹을 수 있는 체인점이었는데 사실 송도에는 이렇다 할 특색있는 먹거리가 따로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시원하게 쫙 뚫린 도로, 위압감마저 느낄 듯한 고층 아파트와 빌딩들, 삐까뻔쩍한 외관을 한 신식 상가들. 송도는 이제 막 번성하기 시작한 신도시었다. 이렇게 새로 생긴 동네에 몇 년 이상된 오랜 맛집 같은 것은 있기가 힘들어 보였다.

차돌박이, 관자를 묵은지나 갓김치와 함께 먹는 조합은 서울에서나 송도에서나 똑같이 맛있었다. 소맥을 곁들여 삼합을 맛있게 먹고 볶음밥까지 비운 우리는 만족하며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에는 우리가 미리 준비해둔 와인과 안주가 기다리고 있었다. 큰 마음 먹고 산 한통에 8,900원짜리 멜론을 먹기 좋게 자르고 더 큰 마음 먹고 산 100g에 2만원이 넘는 하몽도 잘랐다. 분위기 있게 와인을 마시며 못다한 얘기를 하는게 계획이었는데 TV에서는 가요대상 같은 것이 방송 중이었고 그걸 보다가 아이돌 춤판이 벌어졌다. 춤추고 먹고 마시고 술이 모자라 편의점에서 맥주를 더 사오고 다시 먹고 마시고 춤을 추는 시간이었다. 그러다 애인이 먼저 씻으러 들어간 사이 나는 침대에서 아마 잠이 들었나보다. 눈 뜨니 아침이었고 일어나니 너는 왜 내가 씻으러만 들어가면 잠을 자냐는 애인의 핀잔이 들렸다.


전 날부터 감기기가 있는 애인이 사우나를 하고 싶다고 해서 애인은 사우나를, 나는 방 샤위실에서의 샤워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체크 아웃을 했다. 돌아오는 길엔 문득 참, 너무나 특별하게 한게 없는 1박 2일이어서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서울에 있는 애인과 나의 집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들이었는데 그걸 부러 비용과 시간을 들여 인천 송도라는 난생 처음 가보는 도시에서 한 것 뿐이었다.


그렇지만 모든 여행이 다 그렇지 않던가. 외국으로 여행을 가서 우리가 하는 일도 생각해보면 일상에서 우리가 하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삼시 세끼를 먹고 조금 쉬고 잠을 자고 동네를 산책하고 구경하는 일들. 그런데도 우리가 여행을 특별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 경우는, 여행을 준비하는 시간이 조금 설레었고 막상 여행을 출발하는 날이되니 이걸 꼭 가야만 하나 내가 왜 간다 그랬나 그냥 집에서 더 쉬기나 할걸 하는 후회를 약간 했고, 그래도 여행 중에는 좀 새롭고 낯설고 신나는 기분이 들기도 했으며 돌아오는 길은 곧 집에가서 아주 편안하게 푹 쉴 수 있다는 생각에 많이 행복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집을 훨씬 좋아하고 여행을 크게 즐기지 않는 나는, 지금까지 여행 당일의 기분에 더 많은 가중치를 두어오지 않았나 싶다. 한편으로는 여행이라는 것이 준비과정부터 돌아와서의 쉼 까지를 포함한다고 생각해보면, 그 행복을 느끼기 위해 부러 떠나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나하는 생각도 든다.

아직 잘 모르겠다. 조만간 따뜻한 나라로 조금만 더 길게 여행을 한 번 더 다녀오면 더 정확히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비행기 표를 알아봐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