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8일
요즘에는 목공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것이 발레일 때도, 요가일 때도, 그림일 때도 잠깐씩 있었지만 어쨌거나 지금의 주력취미는 단연코 목공이다. 거창하게 들리지만 아직 초보 단계라 대단한 걸 만들지는 못하고 작은 스툴이나 모니터 받침대 혹은 도마 같은 작은 생활 소품 정도를 만드는 정도다. 매주 토요일 오전에 공방을 가서 커피도 마시고 간식도 먹고 일을 하다가 점심을 같이 먹을 때도 있고, 그렇게 반나절을 보내고 돌아온다.
오씨 아저씨를 소개하고 싶다. 공방의 분위기 메이커, 친화력 대마왕, 내가 공방에서 제일 처음 친해진 회원. 어느 날 아저씨가 공방을 마치고 무료 급식소에 봉사를 가신다고 하길래 그에 못지 않은 친화력을 가진 내가 따라가서 설거지 봉사를 같이 하고 온 적도 있다. 그 때 급격히 친해졌다. 오씨 아저씨는 언제나 뭘 엄청 많이 만드신다. 도마도 한 번에 10개씩, 티슈 커버는 간단히 만들 수 있으니까 15개! 우드 스피커도 그 정도. 아무튼 기본이 10개씩이다. 내가 무슨 공장이냐고 맨날 놀리는데 그렇게 하루 종일 만든 걸 주변에 선물로 다 나눠 주신다. 사실 작은 소품이어도 저렇게 만들면 나무 재료값도 만만치 않고 공도 많이 들어가는데도 그렇게 하신다. 부하 직원이 결혼하니까 도마를 선물하고 새해니까 이웃에 티슈 커버를 선물한다. 우드 스피커를 자랑했더니 친구가 탐내던 게 마음에 걸려서 그것도 만들어 줘야 한다. 그렇게 늘 누구 줄 걸 만들고 있는 오씨 아저씨. 저번 주엔 나도 옆에서 알짱 거리다가 티슈 커버를 선물로 받았다. 그걸 보시고 공방장님은 계란 받침대를 오씨 아저씨께 선물로 주셨다. 선물이 돌고 돌았다.
중학교 선생님도 한 분 계시다. 본인이 직접 목공을 배워 학교에 가서 특별 활동반 같은 걸로 아이들에게 그것을 가르친다. 아이들이 직접 자신의 작품을 만들고 학교에서 할 수 없는 위험한 작업 같은 것은 선생님이 공방에서 대신 해서 다시 갖다 준다고 한다.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의 목재를 (엄청 무겁다) 부러 공방까지 가져와서 작업을 하고 다시 갖다준다.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고 안하면 그만일 일을, 그게 아니면 공부 밖에 할 게 없는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는 것이니까, 단지 그걸 위해 그 고생을 하는거다. 대한민국 공교육 시스템은 이제 답이 없다 생각했는데 그 속에서 숨을 불어 넣는 개인들이 있다. 아마 그래서 아직 교육이 다 망하지는 않았나보다.
그렇지만 가장 귀여운 회원은 역시 15세 소년이다. 어리지만 엄연히 나보다 훨씬 선배다. 동그란 안경을 끼고 깡 마른 몸을 가진 착하게 생긴 아이인데 경력이 벌써 1년이 넘어 어려운 작품들도 척척 만들어 낸다. 얼마 전엔 자기 몸집보다도 더 큰 벤치 의자를 만들어 엄마에게 선물을 한 멋진 녀석이다. 한참 친구들이랑 놀고 게임하는 걸 좋아할 나이 같은데 신기하게 꾸준히 공방을 나와 나무를 다듬고 자르고 사포질을 하고 조립을 한다. 힘들 법도 한데 내색 한 번 없이 어른들 틈에서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하는 소년. 이 아이를 보고 있으면 혹여 나중에 저 아이가 인생에 힘든 일을 겪게 되더라도 지금 이 시간이 힘이 되어 거뜬히 다시 일어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단단한 나무를 만지며 오랜 시간 작업에 집중하고 인내하여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일. 그걸 저 어린 나이에 이미 해내는 아이라면 아마 나무보다 더 단단하고 깊은 뿌리를 가진 청년으로 자라겠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저번 주에는 고래를 잡고 엉거주춤한 걸음으로 (집에서 누워 쉴 법도 한데) 공방을 왔기 때문이다. 너무 아프댔다. 내가 빵 터져서 웃었더니 여자는 절대 모르는 고통이라고 중얼 거리며 작업을 시작했다. 너무 귀엽다 진짜.
토요일 오전에 공방을 가면 이런 사람들이 있다. 나는 나무를 만지고 사포질을 해서 결을 매끄럽게 만들고 자연의 색을 잘 살릴 수 있는 칠을 하는 것도 좋지만, 이런 사람들과 함께 작업을 할 수 있어서 그게 사실 더 좋다. 그 틈에 있으면 어느새 나도 조금 따뜻하고 바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