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페스티벌

2019년 1월9일

by 김은혜

며칠 날씨가 좀 풀린다 했더니 다시 쨍하니 추워졌다. 너무 추워서 꽁꽁 싸매고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총총 재촉할때면 유독 따뜻한 햇살과 그 속에서 솔솔 부는 바람 그리고 그 여름날의 페스티벌이 그립다.


나는 추위를 많이 타긴 하지만 그렇다고 여름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끈적이는 것도 불쾌하고 살이 타는 것도 별로다. 그렇지만 이 정도쯤 추운날이 계속 되어 겨울이 지긋지긋할 때가 되면 더울 때 우리가 하는 야외 활동 중 내가 거의 유일하게 좋아하는 것, 뮤직 페스티벌이 사무치게 그리워 진다.


아, 뮤직 페스티벌이라, 생각만 해도 좋다. 이렇게 생각만 해도 행복하니 오늘은 이 뮤직 페스티벌을 상상하며 즐기는 법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도록 하겠다. 먼저, 나에게 맞는 뮤직 페스티벌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엔 정말 다양한 페스티벌이 있고 각 페스티벌마다 음악의 색깔이 뚜렷하니, 우선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페스티벌을 골라야 한다. 나와 내 페스티벌 단짝인 쪼나는 인디음악과 메이저한 대중음악을 지루하지 않게 적절히 섞어 놓은 성격의 페스티벌을 좋아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뷰티플 민트 라이프나 썸데이 페스티벌이 있다. 티켓을 미리 끊으면 꽤 큰 폭의 할인을 해주는 얼리버드 티켓도 있으니 적극 활용하도록 하자.


두 번째로 준비해야 할 것은 의상이다. 이런 곳에 가면서 늘 입던 평상복을 입고가면 글쎄, 재미가 조금 반감된다. 어쨌든 페스티벌이고 소풍이다. 조금 과감하게 입어도 뭐라고 하는 사람 없고 자고로 이런데선 조금 컬러풀한 옷을 입어주는 게 상큼하고 이쁘다. (그렇지만 정작 나는 늘 골라 놓으면 블랙인 게 함정. 그런데 블랙은 정말 비추다. 뜨거운 햇볕 아래라도 좀 있을라치면 몸에 불이 붙을 기세다.) 최소 2~3주 전부터는 인터넷 쇼핑몰 등을 돌아 다니면서 '이쁘긴 한데 평소엔 입을 일이 없을 것 같아서 망설였던' 옷을 질러보자. 벌써부터 설레고 행복해 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코 음식이다. 파티에 음식과 술이 빠질 수가 있나. 물론 페스티벌 구역 내 많은 푸드코트가 들어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특히 이틀 연속으로 참석할 경우 음식이 질리기도 하고, 이런 곳의 음식이 으레 그렇듯 가격 대비 맛이 그저 그렇다. 거의 하루 종일 있다시피 하기 때문에 한 끼 정도만 푸드트럭의 음식으로 떼우고 나머지는 음식을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그럼 무엇을 싸가는 것이 좋으냐! 과일이나 샐러드 같은 것을 싸오는 사람들도 많이 봤지만 나와 내 페스티벌 단짝 쪼나는 (자꾸 이렇게 부르니까 페스티벌 갈 때만 단짝인거 같은데 사실 그냥 원래 단짝이다.) 그런 걸로는 어림 없다. 피자는 맛도 있고 포장이 편해서 자주 싸가는 메뉴이다. 상할 염려만 없다면 스시도 굉장히 괜찮다. 그런데 우리는 어디까지 싸가 봤냐면 집에서 마라샹궈를 만들어서 흰 쌀밥과 함께 가져간 적도 있다. 아마 거기 모인 수 천명의 참가자들 중에 마라샹궈를 싸온 사람은 우리 밖에 없었을 것이다.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며 마라샹궈라니. 안 어울릴 것 같지만 댓츠 노노 무슨 말씀, 먹은 것들 중 가장 맛있었다. 강추하는 뜻 밖의 메뉴다. 이제 남은 건 싸간 음식을 돗자리에 앉아 천천히 맥주와 함께 즐기며 음악을 감상하면 된다.


맑고 쨍한 초 여름날, 푸르른 잔디밭 위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혹은 더 자주, 누워) 좋아하는 가수들의 노래를 라이브로 들으며 먹고 마시는 일. 졸리면 좀 자다가 산들산들 바람에 언뜻 깨어나고 신이 나면 일어나 춤을 췄다가 더 신이나면 무대 가까이로 뛰어가는 일. 소리도 지르고 노래도 따라 부르고 가끔은 노래에 푹 젖어 듣기만 하는 일. 어느 한 번은 페스티벌 가기 전날 밤, 무슨 일이었는지 마음이 매우 많이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펑펑 울었던 것도 같다. 다음 날 겨우 몸을 일으켜 페스티벌에 갔는데 거기서 좋아하는 가수(로이킴)의 감동적인 라이브를 듣고 있자니, 아 내가 오늘 이걸 누리려고, 이만큼이나 행복하려고 어제 이유없이 그렇게 힘들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때도 있었다. 나는 여름에 그런 일들을 한다. 딱히 좋아하는 계절은 아니지만 그래도 즐겨서 좋을 일을 한다. 즐겨서 좋았던 그 기억 덕분에 여름을 조금 좋아하게 되고 가끔은 기다리게 되기도 한다. 그 기다림으로 이 추운 겨울날에도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취미가 무어냐 물으신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