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처음 와서 우리 집을 보았을 때
나는 사실 이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영화를 보던 때여서 잠든 아이 곁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보았기에 건너뛰고 스킵한 부분도 있었지만 영화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보고 싶어 했던 영화였다.
미로 같은 타운하우스 단지에서 길을 잃은 어떤 부부가 한 집에서 지내다 갑자기 박스에 담긴 아이를 배달받아 키우게 되는 줄거리다.
줄거리는 상당히 간단하고 영상이나 배경들은 도식적이다.
사람의 인생을 극단적으로 묘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였다.
비바리움에서 나오는 부부는 부인은 집안에서 아이를 돌보는 일에 전적으로 매달리게 되고 남편은 바깥일(?) 아니 마당에서 땅을 파느라 집안에 거의 안 들어온다.
이들은 이 미로 같은 집에서 벗어나보려고 별짓을 다 해보지만 결국 이 집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게 대충 본 영화의 기억이 이미 가물거릴 만큼 시간이 흐르고
갑자기 남편이 주재원이 돼서 가족들이 다 함께 미국에서 지내게 되어 살집을 구하게 되었다.
남편이 두어 달 먼저 와서 집과 차를 마련했고 나와 아이들은 그 이후에 미국에 오게 되었다.
도착해서 우리가 살 집에 왔는데 아파트 단지를 처음 봤을 때 비바리움 영화가 불현듯 생각이 났다.
영화 속에서는 같은 집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다.
반복적인 집의 배열이 매우 기괴한 느낌을 주면서도 회화적인 느낌이 들었다.
배경은 초현실주의 화가인 마그리뜨 그림을 연상하게 만들었다. 구름이라든지 집의 외관의 느낌이 마그리뜨 그림의 그림질감 같은 느낌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다 계속 보고 있으니 전반적으로 에메랄드 녹색의 색감, 강한 빛과 그림자의 사용이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의 분위기도 약간은 믹스되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영화를 계속 보고 있으면 마그리뜨의 초현실적인 느낌이 아닌 가공되고 인공 된 심지어 기계적인 느낌마저 든다.
사람들이 집이라는 공간에 갖는 개념은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가족들이 사는 아담하고 안락한 주거개념보다 자산가치로 돈이나 부의 개념으로 바뀌고 있고
35년 모기지 장기 대출을 받아 마치 노동가용한 모든 시간을 끌어 모아야 집을 겨우 장만할 수 있는(아니… 할 수 없는) 요즘의 상황을 간결한 장치로 극단적으로 보여준 영화가 비바리움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육아에 오롯이 내몰린 여성의 현실과 바깥일에 매몰돼 버린 남성으로 이루어진 가족의 구조를 볼 때 너무 기괴하고 저게 뭐야라는 감정이 올라오면서도 실제 우리는 저런 구조로 살아가고 있다는 현타를 세게 맞게 되는 영화였다.
다행히도 우리 아파트 단지는 이렇게 무시무시한 곳은 아닌 평화로운 곳이고 아이들도 모두 마음에 들어 한다.
지금은 남편만 직장에 다니고 나는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지내고 있는데 한국처럼 타이트한 생활이 아니라 몸은 편한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다.
미국에 오기 전에 한국에서 나는 시간단위도 아니고 분단위로 스케줄을 움직여야 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어설프게 걸친 직장일과 하고 싶어서 버둥대며 이어가던 그림책 작업 그리고 근처에 살고 계신 친정 부모님도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이를 둘이나 키우려면 친정이 가까운 건 축복이다. 그래서 저 여러 가지 일에 발을 걸쳐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또 도움을 받게 되면 부모님의 일이나 상황에 또 함께 해야 되는 부분이 많아진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한국에 사는 워킹맘은 아마 다들 괴부화 상태이거나 번 아웃으로 숯이 되어 타다가 재가 되어 더 탈 수 없는 경우들을 많이 보았다. 또 남편은 한국에서는 거의 주말부부처럼 지내다시피 야근을 하고 심지어 주말 출근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나도나지만 너도 참 쉽지 않겠다 이러면서 지냈던 것 같다.
예전보다 몸은 편하지만 지금 아이를 위해서 거의 집이라는 공간에서만 있는 내 모습이 비바리움에서 아내가 집안에서 아이와 씨름하던 생각이 나기도 한다.
물론 내 삶이 비바리움처럼 섬뜩한 건 아니지만 (혹은 그렇지 않다고 정신승리를 하거나)
결혼해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의 특징을 간략하게 뽑아내서 극단적으로 묘사하는 영화로 인해
일반적인 인간의 삶의 단편을 좀 더 객관 해서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일반적인 삶이 이렇게 기괴한 모습인가 되돌아보게 되는 재미있지만은 않은(?)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