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족한 마음을 둥글게 감싸는 우유 한 잔
"따뜻한 라떼 한 잔 부탁드려요."
수요일 오후. 마감 시간을 30분 남겨두고, 조금은 느슨해진 공기 속으로 부드러운 주문이 들어옵니다.
우리 카페의 메뉴판에서 유일하게 물이 아닌 '우유'가 들어가는 메뉴 라떼입니다.
아메리카노가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차가운 채찍질이나 묵직한 다짐이라면, 라떼를 찾는 사람들의 표정은 사뭇 다릅니다. 미간에 잔뜩 힘을 주고 모니터를 쏘아보던 눈빛들이 주문대 앞에 서면 잠시 풀려있곤 합니다. 무언가와 싸우기보다는 잠시 기대어 쉬고 싶은 마음이 읽힙니다.
저는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냅니다. 도서관 무료 카페이지만, 다행히 우리에겐 작은 스팀 기계가 하나 있습니다. 비록 대회에 나갈 만큼 화려한 백조는 아니지만, 몽글몽글한 하트나 3단 하트, 나뭇잎 모양의 로제타 정도는 정성껏 그려드릴 수 있습니다.
"치이익-"
스팀 노즐을 열자 날카로운 증기 소리가 조용한 공간을 가릅니다. 차가웠던 스테인리스 피처가 금세 뜨끈해지고 찰랑거리던 우유는 어느새 몽글몽글한 벨벳 거품으로 변합니다. 거친 소리를 내며 끓어오르지만 그 결과물은 세상 무엇보다 부드럽다는 점이 참 아이러니하면서도 다정합니다.
검고 쓴 에스프레소 줄기가 순백의 스팀 우유 위로 떨어집니다. 처음엔 서로 섞이지 않을 듯 경계를 그리지만, 이내 서서히 스며들며 부드러운 갈색으로 변해갑니다. 날카롭던 커피의 쓴맛이 우유의 고소함에 안겨 순해지는 과정입니다.
저는 이 색이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마치 잔뜩 날 서고 뾰족해진 누군가의 마음을, 누군가 아무 말 없이 꼭 안아주어 둥글게 만드는 과정 같거든요.
라떼를 받아 든 손님을 봅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잠시 육아서를 읽으러 온 어머니, 혹은 전공 서적 대신 얇은 시집을 펼쳐 든 학생입니다.
그들은 컵을 입에 대고 천천히, 아주 조금씩 마십니다. 입가에 묻은 우유 거품을 닦아내며 짓는 표정은 아메리카노를 마실 때의 비장함과는 다릅니다. 입안 가득 퍼지는 고소하고 부드러운 풍미가, 긴장으로 굳어있던 몸의 긴장을 스르르 풀어주는 듯합니다.
세상이 너무 쓰게 느껴지는 날이 있습니다. 내 뜻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고, 사람들의 말 한마디가 가시처럼 와서 박히는 날. 맹물 같은 위로조차 밍밍하게 느껴질 때.
그런 날엔 물 대신 우유가 섞인 커피가 필요합니다. 쓰린 속을 부드럽게 코팅해 주고, 뾰족해진 신경을 둥글게 감싸주는 한 잔의 포근함.
잔 위에 띄워 드린 작은 하트나 나뭇잎이 말로는 다 전하지 못한 저의 수줍은 응원일지도 모릅니다.
조금 더 둥글어질 당신의 오후를 위해, 우유를 붓습니다.
"부드러운 라떼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