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의 만학도, 인생의 밑줄을 긋다

격리된 남편의 문밖에서 그녀가 배운 것들

by 응응

그녀는 도서관 2층 카페의 붙박이다. 매일 아침 9시, 어김없이 나타나는 그녀의 테이블 위에는 늘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과 두꺼운 전공 서적, 그리고 돋보기안경이 놓여 있다. 아이들이 모두 제 둥지를 찾아 떠나고, 남편이 직장으로 향한 뒤 남겨진 텅 빈 집. 그 낯선 적막을 견디기 위해 그녀가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편입이었다.

"그 나이에 무슨 공부냐"며 핀잔을 주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녀는 요즘 생애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한 생동감을 느낀다. 평생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로 살며 혼자 노는 법을 잊었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이제는 과제 마감일에 쫓겨 심장이 쫄깃해지는 긴장감을 즐긴다. 처음 보는 우리말과 씨름하다 마침내 이해가 되는 순간 찾아오는 짜릿함은, 마치 동면하던 뇌세포들이 "아직 우린 죽지 않았어!"라고 아우성치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녀는 그 살아있는 기분이 좋아 매일 도서관으로 출근했다.

그런데 그녀의 당찬 '열공 모드'에 급제동을 건 것은 다름 아닌 코로나19였다. 퇴근 후 기침을 하기 시작하더니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검사키트 검사 결과 두줄.

"5일간 격리하시는 게 좋아요."

그날부터 그녀의 집은 비상 체제에 돌입했다. 안방은 접근 금지 구역인 '격리 병동'이 되었고, 거실은 물자를 조달하는 '보급소'가 되었다. 그녀의 일과 또한 180도 뒤바뀌었다. 도서관 카페의 커피 향 대신, 부엌에서 삼시 세끼 밥 냄새가 진동했다.

"여보, 물 좀 더 줘." "목이 너무 아파서 그런데 따뜻한 차 한 잔만..."

닫힌 문 너머로 들려오는 남편의 힘없는 목소리는 그녀의 인터넷 강의 소리를 툭툭 끊어놓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며칠간 그녀는 조금 짜증이 났다. 기말 과제 제출이 코앞인데 흐름이 끊겨도 너무 끊겼기 때문이다. '이제야 찾은 내 인생'이라며 야심 차게 시작한 공부인데, 다시금 '밥 짓는 아내', '간호하는 엄마'라는 익숙한 돌봄의 굴레로 회귀한 것 같았다. 쟁반에 밥을 담아 문 앞에 내려놓을 때마다, 그녀의 시선은 식탁 위에 펼쳐진 채 먼지만 쌓여가는 책을 힐끔거렸다.

그러다 4일째 되던 날이었다. 문틈으로 하루치만 남아있어야 하는 코로나 약이 약상자에 반이나 남아 있는 것이 보였다. 세 알씩 먹어야 하는 약을 한 알씩 먹었던 것이다. 순간, 그녀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공부하고 있는가?'

그녀가 공부를 시작한 이유는 '나를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진정한 자아를 찾는다는 것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방치한 격이 됐다. 책 속의 거창한 지식을 머리에 구겨 넣느라, 정작 눈앞에 있는 사람의 고통을 성가신 방해물로 여기고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이제라도 제대로 먹으라며 방문을 닫고 나오며 지금 자신이 해야 할 가장 위대한 공부는 전공 서적 속에 있지 않음을. 인생이라는 거대한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필수 과목은 '사랑'과 '돌봄'이며, 이것은 그 어떤 대학의 학위보다 높은 학점을 받아 마땅한 과목임을 말이다.

남편의 격리가 해제되고, 그녀는 다시 도서관 카페의 지정석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전공책은 두껍고 강의 내용은 어렵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더 이상 조급해하지 않는다. 공부의 목적이 지식을 쌓아 남보다 우월해지기 위함이 아니라, 세상을 더 넓은 눈으로 이해하고 내 주변을 더 따뜻하게 보듬을 수 있는 품을 기르기 위함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녀는 책을 펼친다. 그리고 책갈피를 끼우듯 틈틈이 남편에게 문자를 보낸다. "오늘 컨디션은 어때? 저녁에 맛있는 거 해줄게."

그녀는 늦깎이 대학생이다. 그리고 여전히, 책 밖의 세상에서 사랑을 배우는 중이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