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잠은 정죄받았다
밤 8시 30분. 우리 부부의 하루가 막을 내리는 시간이다. 남들에겐 한참 무언가를 시작할 시간일지 모르지만 우리에겐 세상의 소음을 뒤로하고 가장 깊은 평온 속으로 침잠하는 약속된 시간이다. 도서관 카페에서 차분히 커피를 내리며 보낸 하루의 끝은 늘 그렇게 고요한 마무리를 지향한다.
그렇게 네 시간쯤 흘렀을까. 어둠을 찢고 날카로운 벨 소리가 울렸다. 시계는 12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시간에 걸려온 전화는 그 존재만으로 불길한 예감을 동반한다.
"관리사무소입니다. 아랫집에서 층간소음으로 신고가 들어와서요."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는 8시 반부터 자고 있었다고 이 집에서 소음을 낼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알겠다는 듯 끊겼지만 한 번 깨져버린 정적은 다시 붙여지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누운 침대 위에서 나는 더 이상 잠들지 못했다. 내가 가장 평화롭게 잠들어 있던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고통의 시간이었다니.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누군가의 고통이 엉뚱하게 내 문 앞을 두드린 것이다.
아파트라는 거대한 콘크리트 상자 안에서 소음은 종종 길을 잃는다. 위층의 발소리가 대각선 아래층으로 흐르기도 하고 벽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가 누군가의 머리 위에서 쿵쾅거리는 진동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보통 가장 가까운 천장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보이지 않는 범인을 대신해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우리 부부가 '소음 주범'이라는 낙인을 잠시 동안 뒤집어쓴 셈이다.
억울함보다 더 씁쓸한 것은 '불신'의 속도다. 아랫집은 관리소에 전화를 걸기 전 한 번이라도 의심해 보았을까. 정말 이 소리가 바로 위층에서 나는 것이 맞는지. 혹시 그들이 이미 깊은 밤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론 그들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층간소음은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고문이니까. 하지만 확인되지 않은 날 선 화살이 자정의 고요를 뚫고 날아와 누군가의 휴식을 망쳐놓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다음 날, 나는 관리사무소를 찾아가 우리 집의 '시간표'를 다시 한번 각인시켜 주기로 마음먹었다. 우리가 누리는 이른 저녁의 고요가 누군가의 오해로 인해 침범당하지 않도록 그리고 아랫집의 고통이 진짜 범인을 찾아 해결될 수 있도록 말이다.
공동주택에 산다는 것은 서로의 소리를 견디는 일이기도 하지만 서로의 침묵을 믿어주는 일이기도 하다. 다시는 자정의 벨 소리에 가슴 내려앉는 일이 없기를. 오늘 밤은 부디 우리 부부의 8시 30분이 온전히 보호받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