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표만 찍는 남자
도서관 카페의 창가 오후의 햇살이 긴 꼬리를 늘어뜨릴 즈음이었다. 그녀가 피식 웃으며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방금 남편과 통화를 마친 모양인데 그 표정이 어쩐지 해탈한 도사 같기도 하고 어이없는 코미디를 본 관객 같기도 했다.
"우리 남편 통화하는 것 좀 보세요. 이건 통화가 아니라 거의 선전포고라니까요?"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는 이랬다. 남편에게서 전화가 오면 벨소리가 채 두 번을 넘기지 않는다. 반가운 마음에 "여보세요?"라고 받기가 무섭게 남편의 쾌속 질주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나 지금 출발해. 저녁은 국수 먹고 싶네. 이따 봐!"
그러고는 대답을 들을 새도 없이 '뚜- 뚜-' 소리만 남긴 채 전화를 끊어버린단다. "오늘 국수 재료 없는데"라는 말은커녕, "알았어요"라는 대답조차 들어갈 틈이 없다. 그녀의 휴대폰 화면에는 통화 시간 '7초'라는 허망한 숫자만 남는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상대의 말문이 열리기도 전에 자기 할 말만 쏟아내고 문을 닫아버리는 그 단호함이라니.
그녀는 허공에 맴돌다 바닥으로 툭 떨어진 자신의 말들을 주섬주섬 줍는 기분이라고 했다.
"가끔은 제가 사람이랑 통화하는 게 아니라, 녹음기랑 대화하는 것 같다니까요? 마침표는 수천 개인데 물음표는 단 하나도 없는 통화죠."
나는 그녀에게 위로 대신 정성껏 내린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을 내밀며 말했다.
"남편분 성격이 꼭 이 에스프레소 같으시네요. 군더더기 다 빼고 핵심만 꽉 짜서 짧게 끝내는 맛 말이에요."
그녀는 커피의 진한 향을 맡으며 덧붙였다. 처음엔 그게 서운해서 다시 전화를 걸어 싸우기도 했단다. 하지만 수십 년을 살다 보니 이제는 그 7초짜리 통화 속에 담긴 남편만의 함축된 언어를 읽어낸다고 했다. '나 지금 출발해'라는 말 뒤에는 '당신 보고 싶으니 얼른 갈게'가, '이따 봐'라는 말 뒤에는 '오늘도 수고했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예의 없는 일방통행일지 모르나 오랜 세월을 함께 통과한 부부에게는 그 불친절한 생략조차 하나의 리듬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을 쏟아내는 사람과 그 말을 묵묵히 받아내는 사람. 물음표를 던지지 않아도 상대의 마음을 읽어내는 그 침묵의 번역가들이 있기에 세상의 수많은 무뚝뚝한 마침표들이 외롭지 않게 집으로 돌아가는 것 아닐까.
오늘도
"커피 나왔습니다."
라는 마침표를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