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환기구를 내어준 그녀의 한마디
도서관 카페에서 함께 앞치마를 두르는 언니는 소위 말하는 쿨한사람이었다. 남의 일에 시시콜콜 참견하는 법이 없었다. 사적인 질문을 던져 대화를 확장하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그저 묵묵히 제 자리에 서서 샷을 내리고 다른 사람의 말을 그냥 들어주고 정해진 시간이 되면 짧은 인사를 남기고 홀연히 떠나는 사람.
나는 그녀의 그런 적당한 거리감이 편안하면서도 가끔은 조금 건조하다고 생각했다.
최근 내 삶의 공기는 유독 눅눅했다. 폐렴으로 고생하다 퇴원한 남편은 아직 온전치 않은 몸을 이끌고 매일 직장으로 향한다.
그 뒷모습을 배웅하고 카페로 가는 길은 늘 마음이 무거웠다.
안쓰러움과 피로가 뒤섞인 뒷바라지라는 일상은 생각보다 훨씬 더 내 영혼을 갉아먹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만큼은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 내 구구절절한 사연은 그저 소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날 평소처럼 무심하게 샷을 내리던 언니가 툭 한마디를 던졌다.
"우리 시간 괜찮을때 바람 쐬러 가요. 수선화가 예쁘게 피는 곳이예요"
내 마음이 현관문 밖을 나서기엔 아직 너무 무겁다는 것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괜찮을때라는 여백을 선물해 준 것이다.
그 짧은 문장 하나에 꽉 막혀 있던 가슴 한구석으로 시원한 바람이 훅 끼쳐 들어왔다. 남의 일엔 관심 없는 줄로만 알았던 그녀의 무심함은 사실 내가 스스로 일어설 수 있을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주는 다정함이었다.
섣부른 동정이나 조언 대신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그곳에 기약 있는 약속 하나를 미리 놓아준 셈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커피를 대접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지만 사실은 서로의 시린 구석을 각자의 방식으로 데워주기 위해 서 있었다.
봉사의 참뜻은 요란하게 손을 내미는 것 이전에 곁에 있는 이의 고단함을 조용히 읽어내고 그가 숨 쉴 틈을 만들어주는 일이라는 것을 언니를 통해 배운다.
당장 떠나지 못하는 아쉬움 대신 내 좁고 눅눅했던 마음에 환기구를 내준 언니에 대한 고마움이 차오른다.
이제는 안다.
겉으로는 차갑게 식은 에스프레소 같았지만 속은 가장 뜨거운 온기를 품고 있었다는 것을.
마음속으로만 삼킨 고맙다라는 말이 마음으로 전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