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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은금주 Sep 04. 2017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기 위해

강원도 평창 _ 유기농 사과 박호식 농부

#3 친환경 농가를 응원합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이런 유명한 말이 있죠?

여기서 말하는 사과나무가 바로 이 사과나무라요.”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 자락.

언뜻 보면 잡초밭인지 과수원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심심산골. 눈빛은 날카롭고, 말투는 투박해 쉽게 다가가기 힘들지만 사과에 관해서라면 누구와도 하루 종일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사람. 바로 대한민국 사과박사 박호식 농부다.     


“사과나무는 대목에다 묘목을 접붙여서 키우거든요. 대목에 어떤 묘목을 접붙이느냐에 따라 홍옥, 부사처럼 품종이 달라지는 거죠. 대목은 일반대목과 왜성대목(矮星臺木)이 있는데 여기 있는 나무가 바로

그 사과나무, 일반대목이랍니다.”     





지금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사과나무는 대부분 왜성대목이다. 수확을 앞당기기 위해 품종 개량을 장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왜성대목은 심은 지 4~5년이면 사과를 딸 수 있다. 반면 일반대목은 8~9년 이상 돼야 사과가 달리기 시작하고, 성과기에 들어가려면 15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

대신 일반대목은 수명이 길고 병충해에 강하다는 장점이 있다. 왜성대목의 수명이 약 20년인 데 비해 일반대목은 200년이 넘는다.     


“하늘이 주시는 대로 먹자.

이렇게 마음 편하게 먹으면 일반대목 심고 그러는 거지 뭐.”     


시류를 따르지 않고 일반대목을 심은 이유에 대한 궁금증이 비로소 풀렸다.  지구가 멸망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스피노자와 하루하루 충실하며, 좀 오래 걸리더라도 자연의 순리를 따르겠다는 박호식 농부는 그렇게 시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었다.  박호식 농부의 이력은 조금 특별하다.

서울대 농대를 나와 양돈을 하다가 충남 예산에서 86년부터 2002년까지 사과농사를 지었다. 그 시절, 서울대를 나와 20대부터 농사를 지었다니, 무슨 특별한 사연이라도 숨어 있을 듯싶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예의 담백하기만 하다.      


“그냥 내 맘이지 뭐.”     



친환경 재배는 2003년 평창에 오면서부터 시작했다. 농약 중독에 걸려 약 냄새가 맡기 싫었고,

어린 나무에 차마 독한 약을 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자식 키우듯 애지중지 키운 나무들이 이제 어엿한 17살이 되었다.  약 6천 평에 500여 주의 사과나무가 하늘을 향해 자라는 대관령사과농장. 여느 사과나무와 달리 이곳의 사과나무들은 밑둥이 여자 허리만큼 크다. 오대산의 신묘한 정기와 맑은 물을 머금고 자라고 또 자라

200년 후에도 이곳에서 탐스럽게 사과가 열린다고 생각하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박호식 농부가 재배하는 사과는 주로 홍로와 감홍이다.

홍로는 늦여름에 잠깐 나오는 사과로 과즙이 풍부하고 새콤달콤한 맛이 특징이다.

감홍은 10월 초순부터 수확을 시작해 10월말까지 이어진다. 홍로에 비해 단맛이 풍부하고 저장성이 좋아 두고두고 먹어도 맛있다. 팔고 남은 사과로는 사과즙을 직접 만들어 판매한다.



좋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경상북도 의성까지 가서 유기식품가공 인증, 햇섭 인증을 받은 공장에서 만들어 온다. 사과는 10~20도의 비교적 서늘한 기후에서 자라야 맛있다. 사람과 식물이 가장 살기 좋다는 청정 700고지에서 봉지에 갇히지 않고 뜨거운 태양을 받으며 자라는 자연 그대로의 사과.  바람과 비를 친구 삼아, 무성한 약초와 나물들, 그리고 잡초들과 함께 자라기에 알이 작고, 살이 트고, 울퉁불퉁 조금은 못생겼지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영양분이 풍부한 사과다.



영양분의 90% 이상이 껍질 부근에 있기 때문에 껍질째 바로 먹을 수 있는 유기농 사과는 그 자체로 몸에 좋은 약이 된다. 외골수 고집으로 고랭지에서 사과 재배를 성공시킨 박호식 농부의 사과가 특별한 이유다.     



박호식 농부의 사과밭은 무농약에서 올해 유기2년차에 접어들었다. 농약은 물론 제초제도 전혀 안 쓰고 1년에 4-5번씩은 손수 풀을 깎는다. 풀이 썪으면 거름이 되고, 공기도 순환시켜주기 때문에 버리지 않고 퇴비로 쓰니 일석이조다. 깻묵이나 쌀겨를 발효시켜 퇴비를 만들고, 양조장에서 오래된 막걸리를 사다 뿌리기도 한다. 틈틈이 경동시장에 들러 황백, 정향, 어성초, 상륙, 고삼, 백두홍 같은 한약제를 직접 사다 넣고 달여서 1년에 10번은 물을 준다.      



“가장 힘들 때는 사과가 안 열리고, 애써 열렸는데 벌레 먹고 썪고, 먹을 게 없을 때지 뭐.

그러면 더 노력하고 그러는 거지. 약제도 더 많이 써보고, 이것저것 해보고 그러는 거지.

사람보다 더 귀하게 키우는 것 같다고? 그것밖에는 방법이 없어요.”     

이렇게 30년 넘게 사과 농사만 지어왔지만

박호식 농부는 아직도 “손가락을 빨고 있다”고 말한다.

일반 농에 비해 품은 몇 배나 더 들지만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계속 유기농을 하는 이유.      


“조금 있으면 부산항에 배 들어오는데, 지금 대구까지 왔는데 서울로 다시 올라갈 수 없잖아요. 저 사람은 얼굴에 친환경이라고 써 있는데 그만두면 사람의 체면도 그렇고, 값어치가 떨어지잖아.”     


마지막으로 소비자들에게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건강 생각해서 건강하게 키웠으니 잘 잡수시고 건강하면 되지 뭐. 못생겼다고 그러지 마시고 내막을 알고 잡수시면 좋겠어요. 몸에 좋은 거니까. 비용은 300%, 400% 들어가는데 값은 똑같이 치려고 하니까,

고생은 안 알아주니까 그렇지. 그것만 알아주면 감사한 거지. 그거밖에는 바라는 게 없어요.”     




박호식 농부를 만나고 강원도의 험한 산을 내려오는 길, 이해인 수녀의 ‘사과향기’라는 시가 떠올랐다.     


“한 알의 사과에선

빨간 장미의 향기도 난다.      

그 열매 속에 숨어 있는

햇빛 바람 비 사랑”      


박호식 농부의 대관령 사과는 그가 햇빛, 바람, 비와 함께 일궈낸 사랑이었다.


그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말을 찾을 수 없다.  



#친환경농산물 #유기농 #사과 #박호식







www.big-far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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