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초에도 동장군 기세가 꺾일 줄 모르고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는데 춘분이 지나니 언제 그랬냐듯 SNS 피드엔 온통 꽃 소식이다.
봄은 그렇게 소리 소문 없이 옆자리에 쓰~윽 왔다 다정한 온기 불며 화사한 색과 향으로 송두리째 마음 흔들고 찰나에 사라져 버린다. 봄의 미몽에 헤어나지 못해 1년을 꼬박 기다리게 만드는 얄궂은 계절! 진짜 봄이 온 것이다.
"안 되겠다.
이번 봄은 단단히 준비하고 내가 먼저 마중 가야지~."
남도에 꽃소식이 들릴 즈음 떠올려지는 곳 하동.
지리산 자락의 남쪽, 산수유 꽃으로 노랗게 물든 구례를 지나 섬진강 하류를 따라 가면 전남과 경남의 경계인 화개장터가 나오고 그 강을 사이에 두고 광양과 하동이 있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이어지는 화개 10리 벚꽃 길은 국내 대표 꽃길 중 하나.
도심다원
야생차의 고장 하동
지리산 기슭 따라 둘레둘레 야생차가 자라는 동네
우리나라 최대 차 생산지 중 한 곳인 하동은 야생에서 자란 차를 덖어 만든 수제 차의 산지다. 가파른 산비탈을 따라 자라는 차로 씨앗이 굴러 자리 잡은 곳에서 자라 야생의 모습이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이 타 지역의 재배차와 다르다. 차 농업이 본격화되면서 재배하기 좋도록 골을 내고 모양을 잡아 지금의 형태가 됐지만 여전히 제멋대로 자란 차나무가 많다.
수확한 야생차는 오랜 세월 걸쳐 다원 대대로 내려온 덖음 기술을 통해 고급 차로 만들어진다. 여리고 연한 첫 잎만 모아 만든 우전부터 세작, 중작, 대작 등으로 불리는 한국의 명품 수제차가 생산된다.
천년 차나무가 발견된 다원
하동 일대에는 많은 다원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중 아름답기로 유명한 여덟 곳을 일컬어 ‘다원 8경’이라 부른다. 도심 다원을 비롯해 쌍계사 인근 차 시배지, 쌍계야생다원, 매암다원 등이 고즈넉한 아름다운 다원의 풍광을 감상하는 곳으로 인기다. 그중 도심다원은 8대(7대 오시영 차명인, 8대 오재홍 후계자)에 걸쳐 차를 생산하며 천년 차나무가 발견됐던 곳이기도 해 하동 야생차 역사의 상징성을 지닌 곳이다.
하동 사람은 잭살 차를 마시며 자란다.
하동 잭살 차는 ‘작설(雀舌)’에서 유래한 하동 방언으로 이 지역에서 대대로 내려온 홍차형 발효차를 말한다. 옛날 하동 할매들은 배앓이할 때나 감기몸살 비상상비약을 대신해 보리차 끓이듯 잭살 차 한 움큼을 팔팔 끓는 물에 넣어 감홍빛으로 우려진 차를 수시로 마시게 했다고 한다.
공력을 들인 만큼 맛이 깊어지는 차
4월부터 시작되는 첫물 찻잎 수확은 길어야 5월까지 약 한 달 정도 이루어진다. 손으로 한 잎 한 잎 새순(1창 1기)만 수확해야 하는데 노련한 할매들이 수확해도 고작 4-500g 정도 수확한다. 이를 유념하고 덖고 말리기를 반복하면 그중에 20%만 차로 남는다. 하동의 우전차는 맑은 연둣빛이 나는데 맑은 색을 내며 맛은 그윽하고 깊게 내는 것이 기술이다. 잘 덖은 차는 쓴맛이 없고 속을 헤치지 않아 공복에 마셔도 부담이 없다. 커피, 와인, 차를 좋아하는 미식가들은 안다. 생산지와 가공방법, 그것을 다루는 사람에 따라 맛이 얼마나 다른지를. 그러니 몇백 년 대를 이어 내려오는 다원의 가치는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하다.
사라질지 모르는 식문화 유산의 현장, 내가 기록하는 이유
높아진 인건비에 차를 수확하는 인력도 귀한 요즘, 수제차 한 통 만들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8대 오재홍 대표는 이문이 남는 장사로만 생각하면 차농을 포기했겠지만 하동 차의 명맥을 잇는 자부심으로 차를 생산하고 있다고 했다. 첫 인터뷰이로 만났던 10년 전보다 더 깊이 있고 단단한 내공으로 다원을 지켜내는 모습이 내게도 울림을 준다. 지켜주는 분이 있어 귀한 수제차를 마실 수 있음에 감사할 뿐. 그러니 하동을 가면 꼭 다원을 들려 차도 마시며 이야기도 듣고 좋은 차도 구입해보자. 당신을 안목 높은 미식가로 만들어 줄 것이다.
도심 다원에서는 수백 년 동안 대를 이어 가꾼 차밭을 보며 즐기는 야외 다도 체험이 인기다.
차 한잔의 여유와 다원의 고즈넉한 풍경 감상은 언택트 여행지로도 안성맞춤.
산골매실농원
광양과 하동은 강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자리하고 있지만 매화밭 풍경은 사뭇 다르다. 광양 매화밭은 탁트인 섬진강 전경의 인기 무대라면 하동 먹점마을의 매화밭은 온통 산으로 둘러 쌓인 고즈넉하며 토속적인 전경이다.
해발 400m, 산골매실농원이 자리한 지리산 구제봉 중턱의 먹점마을을 가기 위해 구불구불 산 길을 한참 오르다 보면 매화의 향연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굽이굽이 휘어진 길과 층층이 다랑이밭, 토종 매화나무의 소박함이 운치 있다 골짜기로 더 올라가면 흐드러진 매화꽃 사이로 무릉도원처럼 산골 매실 농원이 나타난다. 마치 매화꽃이 만든 구름을 밟고 무릉도원으로 가는 기분이랄까?
"제가 생긴 것과 다르게 꽃을 너무 좋아해요. 그중 사군자의 으뜸인 매화꽃을요. 제 고향이기도 한 먹점마을은 매화나무가 많기로 유명한 곳이지만, 처음부터 매화를 업으로 가꾸지는 않았어요. 30여 년 전, 이곳을 공원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에 매실 농원을 만들기 시작했지요. 이곳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도 하고 네 아이를 키우며 우리 가족의 무릉도원으로 만들며 살고 있죠."
산골매실농원의 여태주 사장은 재주가 많아 목공과 황토 집 짓기에 전문가로 직접 지은 정자와 다실이 눈길을 끈다. 마당에는 수백여 개의 항아리가 산골 매실의 맛을 품고 있다.
이곳에 오면 꼭 하는 3가지
하룻밤 머물기, 특별식 먹기, 매실 장보기.
몇 년 전 단골손님들 성화에 사장님이 직접 지은 황토방 숙소는 꿀잠 보장의 명당이란 것. 초절정 예민의 불면증인 나도 사진작가도 모두 깜빡 기절할 정도로 꿀잠을 잤으니 지리산의 좋은 기운이 모이는 곳이 틀림없다.
단골들만 주문해서 먹는 특별한 메뉴는 매실과 찰떡궁합인 약초 백숙. 지리산 자락을 맘껏 날았을 토종닭에 엄나무를 비롯한 갖은 약초를 넣어 푹~ 고아낸 백숙. 그대로 먹어도 맛있지만 이곳 산골매실농원만의 '백숙 먹는 법'이 따로 있다. 매실로 만든 고추장과 재래 장을 섞어 만든 장에 찍어 먹는 것. 지리산 자락에서 직접 캔 머위나물 쌈에 살코기 한점 얹고 매실 장아찌도 더하고 직접 딴 흑화고(표고버섯)를 매실장에 찍어 살짝 올리니~ “그래! 이 맛에 봄놀이 하러 산골매실농원을 오는 거지. 단골만이 아는 맛이란~” 하동 산골의 떼루아가 어우러진 환상의 맛과 식감이다. 여기에 매실주가 빠질 수 없지. 십 년 발효된 매실액은 조금만 소주와 희석해도 깊고 진한 향의 고급 매실주로 만들어버리는 마법의 힘을 가졌다. 이 맛에 반하니 수년째 단골들은 매실액과 장아찌는 산골매실농원만 정주행이다.
* 하동 여행이라면 이 곳도 추천해요
삼성궁
청학동 도인촌이 있는 골짜기 너머 해발 850m에 위치한 지리산 청학선원 삼성궁으로 이 지역 출신의 한풀 선사(강민주)가 1983년부터 33만㎡ 면적에 고조선 시대의 소도를 복원하여 돌로 성을 쌓아 만든 곳. 민족의 성조인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 배달민족성전으로 민족의 정통 도맥인 선도를 지키고 신선도를 수행하는 도량이다. 2,000년 대 중반 일반인에게 개방을 시작했는데 지리산의 돌로 쌓은 기묘한 건축물과 돌탑의 방대한 규모, 주변 산세와 조화로운 배치가 세계의 유명 건축물과 견줘도 될 만큼 독특한 개성이 있다. 지리산을 방문하면 꼭 들려보길 추천하는 곳.
혜성 식당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가는 길목에 있는 하동 향토음식 전문점. 예나 지금이나 이 집의 명물 참게 가리장의 맛은 변함이 없다. 산촌의 보릿고개 시절 대식구의 끼니를 챙기기 위해 섬진강의 참게를 잡아 갖가지 곡물 가루와 나물을 넣고 푹 퍼지게 끓여 냈던 것이 현재에 이르러 향토 별미식이자 추억의 음식이 된 것. 오래전부터 터를 잡고 지켜온 원조식당으로 손맛 좋고 성품 깔끔한 부부가 지켜온 하동의 맛이다. 하동의 봄 맛인 하동 벚굴과 재첩 무침, 참게 가리장은 꼭 먹어보자. 올해는 은어보다 빨리 찾아온 봄 소식에 은어 솥밥을 못 먹고 온 것이 아쉽다.
광양 청매실농원
“매화꽃 천국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오면 외롭지 않겠지.”
한국의 매실의 대표 브랜드가 된 청매실농원. 시아버지가 가난한 고향에 과실수로 매실나무와 밤나무를 심어 터를 다지고 며느리인 홍쌍리(대한민국 식품명인) 여사가 뒤를 이어 가꾼 매실농원.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매화의 개화 소식에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모이는 명소 중 하나
* 하동의 산도 보고 남도의 바다도 보고 싶다면?
하동에서 1시간 반 거리인
여수 100리 섬섬길 드라이브 추천
다도해의 섬을 드라이브할 수 있는 아름다운 바닷길.
여수 돌산도에서 고흥반도를 잇는 100리의 섬과 섬을 잇는 바닷길이 20년 2월 개통되어 오는 28년 11개의 다리로 완성된다. 2021년 4월 현재 여수와 고흥을 잇는 5대의 연륙교가 개통되어 조발도, 둔병도, 낭도, 적금도를 관통해 고흥으로 갈 수 있다. 배를 타고 다니던 다도해 섬을 드라이브하며 감상할 수 있게 된 것.
방풍이 자라는 둔병도
22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로 특산품 방풍나물이 자라는 섬이다.
풍을 막아주는 기특한 나물인 방풍. 특히 이 지역 섬방풍은 매서운 바닷바람 맞으며 자라 맛과 향이 옹골차다. 한 가마니 가득 담겨 출하되는 단가가 오만 원이라고 하니 이 맛을 나누고 싶은 가족과 친구들이 생각난다. 고양이 앞에 생선처럼 식재료 산지에 가면 식생활 소통 연구가인 내 지갑이 가벼워지는 건 당연지사.
낭만의 섬 낭도
낭도에서는 잠시 차를 세워두고 걷자.
둘레길을 따라 싸목싸목 걷는 재미가 있다.
마을의 미술 길을 걸으며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도 있지만 섬 전체가 주상절리, 공룡발자국, 해식동굴을 만날 수 있는 선사시대 유적지로 한반도의 오랜 역사와 환경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는 곳이다.
특히 사도가 보이는 해안 절벽은 소문내고 싶지 않은 애정 스폿!
썰물 때만 보이는 층층이 쌓인 퇴적암 절벽은 오랜 세월 태초의 자연이 만든 경이로운 작품이다.
순천만 습지
길게 뻗은 고흥반도와 여수반도로 에워싸인 큰 만으로 갯벌 생태계가 잘 보전된 곳이다. 갯벌의 규모는 축구장 세배에 가까운 22.6㎢ 나 되고 그 사이사이 거대한 갈대 군락이 펼쳐져 있다. 갯벌 생물과 이를 먹이로 삼는 희귀종 조류와 철새가 많이 서식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유일한 흑두루미 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순천만은 일몰 직전 방문하는 것을 추천하는데 감홍빛으로 서서히 물드는 노을 아래 바람이 만든 갈대의 군무와 그 위를 비상하는 흑두루미가 펼치는 감동의 무대를 만끽할 수 있다.
여행정보
도심다원
유기농 차_ 우전, 세작, 중작, 잭살 발효차 판매
차 바구니 대여
3인용 다기가 준비되며 1시간 동안 다도를 즐길 수 있다.
체험비 2만 원 / 예약 필수 010-8214-7799
경남 하동군 화개면 신촌 도심길 55
055-833-2252
산골매실농원
유기농 매실장아찌, 매실액, 매실 판매
경남 하동군 하동읍 매화골 먹점길 156-60
구입 및 예약 문의 055-883-9355
유기농 매실 구입과 펜션 숙박 예약 필수
삼성궁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삼성궁길 2
055-884-1279
홍쌍리 청매실농원
광양시 다압면 지막 1길 55
061-772-4066
혜성 식당
경남 하동군 화개면 화개로 48
055-883-2140
여수섬섬길
여수시 관광과 정보
https://www.yeosu.go.kr/tour/leisure/bridge/ss_bridge
순천만습지
일몰 시간에 따라 마지막 입장 시간이 달라지니
꼭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하고 갈 것
전남 순천시 순천만길 513-25
061-749-6052
추천 여행루트
1박 2일
첫날: 지리산 삼성궁 > 도심다원 피크닉 티타임 > 산골매실농원 (1박) (저녁 & 아침 식사)
둘째 날: 청매실농원 > 혜성 식당 (참게 가리장, 재첩전, 벚굴) > 여수 섬 섬길 > 둔병도> 낭도> 순천만
여수공항에서 여수 섬 외 인근 전남과 경남의 이동까지 1시간 30분 이내 거리니 항공과 렌터카를 이용해 꽉 찬 1일 남도 여행도 즐겨볼 만하다.
글 I 안은금주
한국 농촌 자원과 식문화를 발굴하고 가치를 높이는 로컬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CJ푸드빌 계절밥상, 도심 속 로컬 레스토랑 '하베스트 남산', 평창 로컬푸드마켓 ‘바우파머스몰’, 농촌형 코워킹 스페이스 ‘안동 스페이스 마’, '임실엔치즈 하우스'를 기획했다. @eungeumju.an
사진 I 이정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