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되고 든 생각들 - 공공장소 흡연과 간접흡연
작년 추석 날에 있었던 일이다. 좀 지난 일이지만 그래도 기억이 생생하다.
차에서 가져올 게 있어서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뚜벅뚜벅하고 누군가 계단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살짝 뒤를 돌아보니 한 아저씨가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여러 번 봤던 장면이었다. 순간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고는 마음을 먹었다. 이번에는 그냥 못 지나가겠다, 할 말은 해야겠다 하고.
내 뒤를 지나쳐 계단을 오르던 아저씨는 우리 집과 위층 사이에 있는 환기창 앞에 서있었다.
"담배 밖에 나가셔서 좀 피워주십시오."
아저씨는 내 말에 좀 당황한 눈치였다.
"아... 담배 냄새가 집에서도 나나요?"
"당연하죠. 집 바로 옆에서 피우시는데..."
아저씨는 좀 머쓱해하더니 짧은 사과와 함께 앞으로는 여기서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고 하고는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혹시나 하며 걱정했던 말다툼 같은 것은 다행히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홀가분한 기분도 아니었다. 좀 나아졌다 뿐이지 여전히 기분은 좋지 않았다.
내 할 말은 다 했다지만, 그 아저씨가 서 있던 환기창 옆에 떡하니 붙어있던 '금연'이라고 적힌 종이를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었다. A4용지 한 장도 아니고, 두 장에 적혀있던 '금연'과 '이웃에게 피해를 주니 여기서 담배를 피우지 마시오.'라는 문구가 그 아저씨 눈에는 안 보였을까? 아니면 그저 담배만 피울 수 있다면 그런 글 따위는 그냥 무시해도 되는 거였을까?
그 아저씨가 우리 집과 위층 사이에 있는 환기창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눈에 띄기 시작한 건 공교롭게도 때롱이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고부터였다. 바로 아래층에 사시는 분 같진 않았다. 올라올 때 들리는 발소리로 봐서는 두, 세 층이 밑에 사시는 분 같았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층과 층 사이에 밖이 훤히 보이는 큰 창문이 있다. 그리고 그 층 사이에 있던 큰 창문 중 몇몇 층 사이에 있는 것들만 열고 닫을 수 있는 작은 환기창이 있었다. 아마 5층 정도 간격을 두고 환기창이 있는 듯했다. 왜 그런 건진 모르겠는데 어쨌든 그랬다.
내가 사는 층과 바로 위 층 사이에는 작은 환기창이 있었다. 담배를 피우던 아저씨가 몇 층을 올라와 담배를 피우는 건 그 곳에 환기창이 있어서 인듯 했다.
거기서 담배를 피우는 아저씨를 처음 볼 때부터 몹시 불쾌했다. 아파트 내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도 안 될 일이지만 당장 저 창문 옆으로는 우리 집 다용도실과 부엌 창문이 있지 않는가. 그리고 그 창문 안 쪽으로는 당시 돌도 안 지난 우리 아들과, 내 아내, 그리고 고양이들이 있었고.
어쩌다 한 번이겠거니 싶었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한두 번은 그냥 넘어가려고 했지만 흡연 장면을 몇 번도 목격하고 도저히 안 되겠지 싶었다. 내가 본 것 말고도 얼마나 많이 거기서 담배를 폈겠냔 말인가.
굳이 얼굴 붉히긴 싫어서 관리사무소를 찾아갔다. 상황을 말씀드리니 관리사무소 직원분께서는 신경 많이 쓰셨겠다며 금연 문구를 붙이고, 실내 금연 관련 안내 방송도 하겠다고 했다.
이틀 정도가 지나고 문제의 환기창 옆에는 '금연'이라고 적힌 종이 한 장과 '이웃에게 피해를 주니 여기서 담배를 피우지 마시오.'라고 적힌 종이 두 장이 붙어있었다. 뭐 이 정도까지 했으니 이 해프닝도 끝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어디까지 그건 내 생각일 뿐이었다.
며칠 후 금연이란 글은 아랑곳 않고 그 옆에서 당당하게 또 담배를 피우고 있는 아저씨를 보게 되었다. 처음 그 모습을 봤을 때 정말 어이가 없었다. 짜증도, 분노도 아니고 그냥 기가 막혔다. 아저씨는 담배만 입에 물 수 있다면 앞에서 글자 몇 자 정도는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때가 바쁜 출근길이라 우선은 넘어갔지만 나중에 생각할수록 어찌나 화가 나던지. 한 번만 더 거기서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싸울 각오까지 하고 밖으로 좀 나가서 담배를 피우라고 말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화를 삼키면서 마음먹은 걸 실행한 날이 바로 작년 추석 당일이었다. 기분 좋은 명절날인데 아침부터 찜찜함을 안고 하루를 시작했다.
난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뭐 대단한 철학이나 신념이 있는 건 아니다. 그냥 어쩌다 보니 안 피우고 살았다. 그렇다고 담배연기에 그렇게 예민하게 굴면서 살지도 않았다. 친한 친구들은 거의 다 흡연자다 보니 녀석들이 담배 한 대씩 피울 때면 큰 거부감 없이 옆에 같이 있곤 했다. 그래서일까 그 전까진 누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딱히 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거슬리지도 않았다.
그렇게 담배연기에 무던하게 살던 나인데, 이젠 아니다. 때롱이가 태어나고 나서부터다. 담배연기가 어린 아들에게 닿게 하긴 싫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누군가의 흡연 장면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부모님들이 같은 마음일 거다. 어른들한테도 안 좋은 담배연기인데 어린아이들에게는 오죽하겠는가. 좋은 것만 해줘도 모자랄 판에 말이다.
그렇게 세상 모든 담배 연기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때롱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동네 한 바퀴 산책하는 일은 빼놓을 수 없는 하루 일과가 되어버렸다. 특별한 일정이 있거나, 날씨가 좋지 않을 때 빼곤 항상 밖엘 나간다. 그런데 이 산책이라는 게 야외활동이다 보니, 게다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나가는 일이다 보니 은근히 신경 써야 할 것도 많았다.
유모차 바퀴에 턱턱 걸리는 툭툭 튀어나온 보도블록에, 앵앵거리며 들러붙는 날벌레에, 여름엔 날씨도 너무 덥고, 햇볕도 너무 강해 기분 좋게 나선 산책이 이래저래 애먹을 때가 많다.
그런데 산책을 정말 힘든 게 하는 건 따로 있었다. 힘들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 화나게 하고 짜증 나게 하는 건 바로 담배 연기였다.
길을 걷다 보면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많은 건지. 사람들 오가는 길에서 담배 피우고 있는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멀어져 보려고 길 왼쪽으로 붙었다, 다시 오른쪽으로 붙었다, 어떤 때는 아예 그냥 가던 길을 돌아갈 때도 있었다. 좁은 길에서 담배 피우면서 침을 뱉고 있는 사람, 모퉁이도 아니고 아예 한가운데서 떡하니 담배를 피우는 사람, 옆사람은 아랑곳 않고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면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행동에 짜증도 나고, 화도 날 때도 많았다.
어린아이 데리고 있다는 이유로 대단한 대접을 받겠다는 마음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거리에서 유모차가 지나갈 때면 흡연자가 좀 피해 줘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런데 그건 그냥 지극히 내 개인적인 생각일 뿐 인가보다. 언제나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꼿꼿한 자세로 입으로 담배연기와 가래침을 내뱉고 있었고, 눈치 보며 피해 다니는 건 나였다. 아마 멀찍이서 자세만 본다면 내가 죄지은 사람 마냥 종종종 도망가고 있는 모양새일 거다. 하 진짜, 다른 때는 몰라도 아들이랑 산책할 때만은 담배연기 없는 세상에서 좀 살 수 없나?
어떤 날은 집 앞에 마트가기도 불편할 때가 있다.
아파트 정문과 맞은편 상가를 잇는 횡단보도가 하나 있다. 그 횡단보도에서는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이 횡단보도 바로 앞이 아니라 한참 뒤 편에서 서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나 역시 마트에서 뭐 좀 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횡단보도와 멀리 떨어져 신호를 기다린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사람들이 그렇게 멀찍이서 신호를 기다리는 것도 담배 연기 때문이다. 횡단보도 바로 앞에는 한 고깃집의 출입문이 있다. 그 고깃집에서 밥을 먹다가, 술 한잔 하다가 담배를 피우러 나온 아저씨들은 출입문을 나서자마자 그 자리에서 바로 담배를 피운다. 식당의 출입문이기도 하면서 횡단보도 바로 앞에서 말이다.
담배를 피우러 나온 사람들은 인적이 드문 모퉁이를 찾지도 않았고, 횡단보도를 지나가는 사람들 눈치도 보지도 않았다. 식당 문 옆엔 버젓이 재떨이로 쓸 모래가 잔뜩 담긴 항아리를 가져다 놨다. 술 한 잔 걸치고 얼굴 벌게진 사람들은 길 한가운데서 담배 연기와 침을 연신 내뿜고 있었고, 괜히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겁에 질려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도망 다니듯 자리를 피한다 . 아이와 함께 있는 부모님들은 더욱 그 상황이 곤욕스러운 모습이었다.
횡단보도 바로 앞 고깃집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조금만 더 가면 치킨집, 작은 카페, 횟집, 편의점이 줄지어 있었다. 그 가게들 앞에는 인도 맞닿은 야외 테이블들이 있었다. 그 테이블들은 아예 흡연실이다. 매번 그 앞을 지날 때면, 뿌연 담배연기를 피해 테이블과는 최대한 멀리, 인도 끄트머리 붙어 걸었다. 남들도 그랬다. 그 넓은 길에서 다들 차도 쪽에 딱 붙어 걷는 걸 볼 때마다 이건 뭔가 잘못됐지 싶었다.
사람 많은 곳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왜 항상 당당할까? 그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왜 항상 눈치를 봐야 되고? 이 정도면 뭔가가 크게 뒤바뀐 거 아닌가?
한 번은 여러 사람이 대화 중에 길거리에서 흡연이 싫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던 담배를 피우는 한 명이 그 문제에 관해서 흡연자들도 할 말이 많고, 억울하다고 하는 것 아닌가.
흡연자들이 담배 값으로 내는 세금이 얼마인데, 번듯한 흡연장소 하나 안 만들어주는 게 문제라고 했다. 자기들은 담배값을 통해 충분한 대가를 치르고 있지만 그에 대한 혜택을 못 받았을 뿐이고, 담배 피울 공간이 없으니 당연히 밖에서 담배를 피울 수밖에 없다 말했다.
음... 각자의 생각 차이는 있겠지만, 전혀 공감이되지 않은 말이었다. 솔직한 말로 그냥 헛소리 같았다.완전히 잘못된 생각.
마땅한 흡연 장소가 있고 없고는 둘째 치고, 사람들이 오가는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행위는 분명 남들에게 미안해하고 눈치를 봐야 하는 행동 아닐까? 길에서 다른 사람이 담배 연기를 마시게 하는 행위는 억울해할 일이 아니고, 미안해해야 할 일 아닐까? 담배값에 포함된 세금이 어떻고, 그 돈으로 흡연장소를 만들어달라 말아라 하는 얘기는 민원센터에다나 해야 할 일이고 자기들 때문에 불쾌함을 안고 그 옆을 지나는 사람한테는 죄송해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물론, 모든 흡연자의 입장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다만 당시 그 얘길 들었을 땐 너무도 다른 생각 차이에 할 말이 없었던 게 기억난다. 누가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지를 생각해보면 그래도 흡연자들이 비흡연자들을 위해 좀 더 조심해줘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특히나 길거리에서는 말이다.
굳이 따지자면 흡연 자체가 크게 잘못된 행동은 아닌 것 같다. 법적으로도 성인이면 아무 문제없이 담배를 살 수 있지 않는가. 그런데 성인이 담배 피우는 것 자체가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그 흡연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간접흡연을 포함한 이런저런 피해를 보게 된다면 그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실내에서, 공공장소에서 그렇게 금연하라고 소리 내는 것도 그런 뜻 아닐까? 자신이 원해서 피우는 담배라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고.
우리나라 흡연율은 20%라고 한다. 5명 중 1명이 담배를 피우는 셈이다. 그런데 가끔 보면 그 한 명이 너무 많은 것을 가져간다. 아파트 단지 내 조용한 벤치도, 길을 가다 보이는 조그마한 쉼터도 항상 그 한 명이 다 차지하고 있는 걸 많이 본다. 남은 4명은 그곳에 다가가질 못한다.
그 한 명은 난 가져간 게 없다 할지 모르겠다. 그냥 가만히 서서, 얌전히 앉아서 담배만 피우고 있었다고. 내가 차지했던 자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고. 실상은 그게 아닌데... 꾀나 넓은 공간을 담배 연기와 냄새로 담을 쌓고, 꽁초로 선을 그으며 남들이 못 오게 했는데. 그리고 그 넓은 공간을 지나치는 남들을 불편하게 했는데. 주머니에 담배를 넣고 있는 그 한 명이 나머지 4명을 좀 더 배려할 순 없을까?
며칠 전에 엘리베이터에서 그 아저씨를 마주쳤다. 내가 밖에서 담배 피우라고 말했던 아저씨 말이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아저씬 나보다 앞서 걸었다. 공동현관을 나서자 앞에 걷던 아저씨는 바로 담배를 물고 걷기 시작했다. 그 아저씨는 내가 지나갈 길에 담배 연기를 고스란히 남기면서 유유히 뒷모습을 보여주며 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공동현관 앞에서 담배냄새가 좀 사라질 때까지 한동안 기다렸다 다시 걸었다. 일부러 저러는지, 모르고 저러는지. 나만 또 화를 삼키고 있었다.
하... 전생에 무슨 원수를 졌길래. 이것도 악연이면 악연일 테지. 아마 내가 빠른 시일 내 이사 가기를 결심한다면 그 아저씨의 역할도 무시할 순 없을 것이다.
미세먼지에, 바이러스에, 자외선에, 안 그래도 귀한 우리 아들이 피해 다녀야 할 게 많은 세상. 그중에 담배연기 하나쯤은 좀 빠져도 되지 않나? 제발 그런 날이 오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