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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eIssue Oct 19. 2022

그래서 토마토는 뭐가 됐을까?

아빠가 되고 든 생각 - 우리 아들의 직업은?

  '울퉁불퉁 멋진 몸매에 빨간 옷을 입고 새콤달콤 향내 풍기는 멋쟁이 토마토.'


  이렇게 가사만 읽어도 멜로디가 절로 나오는 노래. 동요 '멋쟁이 토마토'의 앞부분이다. 이 노래를 우리나라에서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다른 데서는 어쩔지 몰라도 우리 집에서 만큼은 이 노래가 명곡이다. 때롱이가 지금보다는 좀 어릴 때긴 하지만 이 '멋쟁이 토마토'만 불렀다 하면은 우리 때롱이 자동으로 팔을 흔들고 몸을 들썩들썩거리면서 흥을 주체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나는야 주스 될 거야. 나는야 케첩 될 거야. 나는야 춤을 출 거야. 뽐내는 토마토. 토마토!'


  이어서 나오는 멋쟁이 토마토의 뒷부분 가사이다. 

  그런데 매번 같은 노래를 불러서 지루해서였을까? 언제부터가는 뒷부분 가사를 내 맘대로 바꿔서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야 의사 될 거야. 나는야 판사 될 거야. 나는야 건물주 될 거야. 뽐내는 때롱이. 때롱이!'

  이렇게 말이다.


  남들이 들으면 어이가 없으려나? 아니, 어쩌면 유치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말도 못 하는 아들에게 의사 돼라, 판사 돼라, 건물주 돼라 하는 아빠라니. 앞뒤 자르고 이 말만 들으면 이런 못난 아빠도 없는 것 같다. 워워, 그렇다고 아들 생각은 1도 안 하고 내가 바라는 것들만 강요하는 나쁜 아빠라고 오해는 하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 어디까지나 그저 단순한 내 희망사항을 이입했을 뿐, 난 우리 때롱이에게 어떠한 강요도 없었다. 그냥 내 혼잣말 같은 거랄까.

  에이, 그리고 자기 자식이 의사, 판사, 건물주가 된다는 데 싫다고 하는 부모님이 몇이나 되겠는가. 될 수만 있다면 다들 원하는 바 아닐까? 나도 그냥 우리 아들 잘 되길 바라는 평범한 아빠일 뿐이다. 조금 욕심이 있는...? 다른 엄마, 아빠들도 이 정도는 애교로 이해해 주지 않으려나?  


  나만 이렇게 어린이집도 아직 다니지 않는 아들이 나중에 커서 뭐가 될지 궁금해하고,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그러나? 

  아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왜 옛날부터 이제 막 첫 생일을 맞이하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돌잡이를 시키면서 자녀들의 앞날을 점쳐보지 않았는가. 아마 세상 모든 부모님들은 어지간히들 자식의 미래가 궁금했나 보다. 그것도 아주 오랜 전부터 말이다. 생일 축하하려고 만든 돌잔치에서까지 연필을 잡으면 공부 잘한다, 붓을 잡으면 화가를 한다, 실을 잡으면 장수한 다하면서.

  뭐, 나도 별반 다를 바는 없지만. 나 역시 우리 때롱이가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될지 궁금했고, 거기에 될 수만 있다면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좋은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 욕망(?) 덕분에 '멋쟁이 토마토'는 가사가 멋대로 바뀌면서까지 우리 집에서 불려졌다.




  바뀐 노래 가사 속에 등장하는 직업은 매번 바뀌었다. 의사, 판사는 물론이고 치과의사, CEO, 행시 5급 합격자에 주식왕까지. 내 기준에서 부럽기도 하고, 또 멋지다 생각되는 직업들을 생각나는 족족 노래 속에 넣어가면서 아들의 앞날엔 꽃길만 있길 바랐다. 

  그러다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내가 그렇게 목 놓아 부르는 때롱이가 가졌으면 하는 직업들이, 그러니까 의사나 판사가 때롱이가 경제활동을 시작할 때쯤인 30년 뒤에도 여전히 좋은 직업일까?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확확 바뀌어있는 세상인데 그때가 되면 많은 게 달라지고 인기 있는 직업도 많이 달라져 있진 않을까?


  궁금해서 직업선호도 같은 게 있는지 한 번 검색을 해봤다. 검색을 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교육부에서 매년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희망직업을 조사해온 모양이다.

  학교 군마다, 또 해마다 선호하는 직업에 약간씩 차이가 있긴 한데 어쨌든 2021년에 전반적인 학생들의 희망직업을 1위부터 10위까지를 순서대로 나열하면 교사, 간호사, 군인, 소프트웨어 개발자, 경찰, 공무원, 의사, 생명과학자 및 연구원, CEO, 의료보건 관련직이란다.

  순위권 안에는 내가 생각했던 직업도 있고, 생각지 못했던 직업도 있었다. 그래도 교사, 공무원, 의사 같은 직업은 여전히 인기가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련 기사에서도 여전히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직업군이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있다고 전했다. 내가 학교에 다니고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에도 이런 비슷한 분위기는 있었던 것 같은데 여전했다.

  이렇게 보면 선호 직업이 예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는 듯 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만도 않았다. 10위권 밖에 있는 생각지도 못했던 몇몇 직업들이 눈에 띄었다. 웹툰 작가나 프로게이머, 개인방송 VJ 같은 직업들 말이다. 내가 어렸을 땐 이런 직업들이 있는지도 몰랐고, 이렇게 인기 있어질 거라고도 생각지 못했다. 최근 들어 핫하다는 직업들인 걸로 아는데 학생들 사이에서도 그런가 보다. 

  이런 변화는 나만 알아차린 게 아니었다. 교육부 역시 4차 산업혁명의 변혁 속에서 코딩 프로그래머, VR전문가, AI 빅데이터 전문가와 같은 직업을 원하는 학생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고 전했다. 내가 진로를 고민할 당시에는 있지도 않았던 직업들이 생겨나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끌고 있는 걸 보면 아닌 것 같아도 직업의 세계도 많이 변하고 있구나 싶다.

  한 1, 2년 전쯤인가? 대기업이나 큰 IT기업에서 개발자들을 서로 모셔가겠다고 어마어마한 조건들을 제시하고 그러지 않았나. 많은 사람들에게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직업군이 하루아침에 급부상하더니 요즘은 어린아이들도 코딩 교육을 받는다고 하고, 웹 개발자 양성 과정을 홍보하는 팸플릿도 길에서 심심찮게 보인다. 이런 모습들도 그런 변화의 한 장면일 테다. 그러고보니 어쩌면 내가 노래 속에 넣어 불러야 할 직업들이 달라져야 할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아주 예전에. 그러니까 10년도 더 전에 매일 같이 얼굴을 보던 친한 형 하나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리도 같이 인터넷 방송이나 해보자 말을 했었다. 그때 당시 나와 또 다른 친한 형은 그 말을 듣고 코웃음 쳤었다. 왜 또 이상한 짓을 하려고 하냐고.

  그때가 개인 방송이 한창 뜨고 있을 때였다. 게임을 콘텐츠로 한 방송들도 많은 인기를 얻기 시작할 때인데 그런 걸 보면서 그 형도 인터넷 방송 얘기를 꺼냈던 거다. 당시에 게임 즐기고 살기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던 우리였기에 게임 방송도 까지것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이었나 보다. 물론 나머지 둘의 비웃음으로 헛소리로 끝난 말이었지만 말이다. 

  사실 게임 많이 하는 건 지금도 다를 바 없다. 서른이 훌쩍 넘기고도 여전히 음성 대화를 켜놓고 킥킥거리면서 게임을 하는 겜돌이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당시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개인 방송을 왜 그때 용기 있게 시작하지 못했나 하고 후회를 한다는 점이다. 모였다 하면 그때 방송을 했더라면 하고 신세한탄 아닌 신세한탄을 한다. 

  솔직히 유튜브에서 게임 방송을 하면서 대기업 소리를 듣는 돈 잘 버는 유명 BJ들이 이제 부러워서 하는 말이다. 뭐 당시에 우리가 방송을 했다고 한들 뭐가 달라졌을까 싶기도 하지만 나름 괜찮은 콘텐츠 하나 정도는 뽑아내지 않았겠냐며 셋이 모여 허세를 부려본 적도 여러 번이다. 무엇보다 왜 그땐 개인 방송이 이렇게 흥할지 몰랐을까 하고 후회를 한다.

  10년 전, 난 개인 방송을 '이상한 짓'으로 여겼다. 그리고 이제와서는 인기 유튜버들을 누구보다 부러워하는 바보가 되었고. 이렇게 한 치 앞을 모르는 내가 무슨 30년 뒤에 좋은 직업을 알겠는가.


  이런 걸 보면 굳이 지금 내가 때롱이가 뭐가 됐으면 좋겠다, 어떤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의미가 있을까 싶다.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면서 새로운 직업들이 생겨나고, 어느 날 갑자기 있는지도 몰랐던 직업들이 엄청난 인기를 얻고. 몇십 년 뒤에 좋은 직업을 맞추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심지어 감히 유튜브와 개인방송을 업신여겼던(?) 내가 말이다. 하물며 내가 지금 이 일을 하고 살 거라고 생각 한 번 안 해봤던 내가 무슨 아들 직업을 생각해준다고...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 외국인들이 사용하는 언어, 그러니까 베트남어나 우즈베크어, 카자흐어를 배우는 것이 앞으로는 큰 도움이 될 거란 말을 들었다.

  실제로 공단 근처에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이나 마트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고 장사도 잘되는 모습도 몇 번 봤었다. 당연히 손님들은 다양한 나라의 외국인들이었다. 그러고 보면 베트남어나 우즈베크어, 카자흐어를 배워서 외국인과 관련된 일을 한다는 것이 꾀나 매력이 있을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갈수록 식량 안보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 그런데 중요성만큼 우리나라에서 양질의 식량을 확보하기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농업, 어업, 축산업과 같은 1차 산업에 관심이 다른 직업군에 비해 떨어지는 것도 한 원인이라고 한다. 이렇게 보면 앞으로는 1차 산업이 그 중요성만큼 많은 주목을 받는 날이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렇게 시선을 조금만 옆으로 돌려보면 앞으로 충분한 매력을 가질만한 일과 직업이 많다. 그런데도 여전히 난 내 아들이 의사, 판사가 됐으면 좋겠다고 좁게만 생각하고 있다.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일수도 있고, 어쩌면 어리석음 일지도 모르겠다. 

  위에서 한 이야기는 대부분 내 생각들이다. 그래서 실제로 얼마나 가능성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때롱이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해줘야겠다. 

  교사가 좋다더라, 공무원이 좋다더라, 너는 커서 그거 해라. 이런 말 하는 아빠 말고. 

  앞으로는 소나 돼지를 키우지 않고도 공장에서 고기를 만들 수 있다더라, 사막에 모래를 가지고 집을 짓는 건축방법이 주목받는다더라, 앞으론 사람들이 어떤 것보다 환경에 관심을 가질 거라더라.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아빠가 되야겠다. 우리 아들이 조금 더 넓게 직업을 바라볼 수 있게 말이다.




  그래서 토마토는 뭐가 됐을까? 주스가 됐을까, 케첩이 됐을까? 모르긴 몰라도 주스, 케첩 말고 다른 게 되지 않았을까? 토마토가 될 수 있는 게 주스, 케첩 말고 얼마나 많은데. 샐러드, 카나페, 파스타 소스, 피자 등등. 토마토가 될 수 있는 게 수십, 수백 개는 될 텐데 그 셀 수 없이 많은 것 중에 주스랑 케첩 말고 다른 게 됐을 확률이 훨씬 높을 것이다.

  우리 때롱이도 내가 부른 노래 속 의사, 판사, 건물주 말고 다른 직업을 가질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세상에 직업이 수백 가지, 아니 수천 가지는 될 텐데 내가 말한 몇 개를 골라서 직업으로 삼을 일이 얼마다 되겠다. 노래를 바꿔 부르는 건, 몇몇 직업만 콕콕 찝어대는 건 우리 때롱이 잘됐으면 하는 그저 아빠의 바람일 뿐이다.


  무슨 일이 됐든 때롱이가 만족하고, 멋지고 보람된 일을 하고 있으면 좋겠다. 

  아, 맞다! 돈 잘 벌고. 다른 건 몰라도 때롱이한테 돌잔치 때 너 돈 집었다고는 꼭 말해줘야겠다. 또 이건 중요하니까.

  그리고... 이 못난 아빠는 의사나 판사, 건물주 중에 하나 해도 괜찮을 것 같긴 하다.


  하... 왜 이렇게 쿨하지 못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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