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명? 개척? -
미래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바람이 아닐까?
아주 먼 미래가 아니더라도 단 몇 초의 미래를 알 수만 있어도 우리의 삶은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미래는 정해져 있는 것일까? 아니면 개척하는 것일까?
요즘 우리나라를 보면 미래는 정해져 있다는 운명철학이 날로 심해져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어떤 원리에 의해 정해지는 것일까?
학교에서 배웠던 논리의 기본이 생각난다.
논리적인 의사 결정 방법인 연역적(Deductive) 방법과 귀납적(Inductive) 방법에 대해서 선생님께서 열심히 설명하셨던 모습이...
생각해 보면 위대한 철학자이신 '소크라테스'를 본의 아니게 죽음으로 몰았던 것 같다.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사주팔자라는 것이 있다. 동양철학의 기반이 되는 오행(목화토금수, 木火土金水)을 기반으로 사람이 태어날 때 자동적으로 부여되는 사주(四柱), 즉 연월일시의 네 가지 기둥이 그 사람의 미래와 운명을 정한다는 운명철학이 바로 사주팔자이다.
각각의 사주는 하늘의 기운을 의미하는 10개의 천간(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과 땅의 기운을 의미하는 12개의 지지(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의 조합으로 되어있다.
이론적으로 보면 사주의 조합의 60 X 60 X 60 X 60 = 12,960,000개가 된다.
얼핏 생각해 보면 조합이 개수가 많으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내 사주팔자를 확인해 보았다. 무신/계묘/정축/기사였다.
이를 오행으로 분석해 보면, 화(불)는 강하고, 토와 금은 적당하고, 수와 목이 강하다고 한다. 오행의 기본 성질에 따라 확인해 보면 내 기질을 확인해 볼 수 있다.
- 화가 강하니 열정적이며 추진력이 강하다.
- 수가 강하니 지혜와 내면적 성찰을 좋아한다.
- 목이 강하니 장조적이다.
사주팔자는 타고난 신체 기관까지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빅 데이터와 AI 시대인 요즘은 사주팔자를 알면 쉽게 풀어낼 수 있어서 이전보다 좀 더 쉽게 일상으로 다가온 것 같은 느낌이다.
사주팔자는 결국 연역적인 방법이다. 천간과 지지라는 원리, 오행이라는 원리를 일반화시켜서 삶의 미래는 태어날 때 운명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결론으로 연결된다.
여기서 드는 의문점... 과연 그럴까? 연역적 방법의 출발선인 사주팔자의 일반원리가 과연 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귀납법적으로 확인해 보면 어떻게 될까?
첫 번째 확인 질문 : 언제부터 사람들이 태어난 사주를 정확하게 알 수 있었을까?
조금은 불편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사주팔자를 정확하게 알려면 태어나는 그 순간 누군가가 정확하게 기록해야만 한다. 지금이야 대부분 병원에서 출산을 하니 신생아의 정확한 사주를 알 수 있지만 과연 옛날에도 그랬을까?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생각해 보면 그리 많지 않은 사람들만이 본인의 사주를 알았을 것이라는 추정을 할 수 있다. 철저한 신분사회였던 시기에 왕을 중심으로 귀족들을 제외하면 일반 국민들, 특히 천민이라고 불리었던 노비들은 과연 사주를 알 수 있었을까?
그 시기는 사주가 아니라 태어났을 때 신분이 미래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였을 것이다. 결국 사주는 소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두 번째 확인 질문 : 동일한 사주는 동일한 운명인가?
사주의 조합이 약 1300만 가지이지만, 현재 지구상의 추정 인구를 82억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동일한 조합의 사주를 가진 사람이 여러 명 존재할 수밖에 없다. 과연 이 사람들을 동일한 삶과 운명을 맞이했을까?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세 번째 질문 : 사주팔자를 실증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된 적이 있을까?
사주팔자 해석의 기본이 되는 음양오행설의 시작은 중국 춘추시대라고 한다. 중국에서 공식적인 인구조사를 실시한 것이 한나라 말기인 AD 2년이고, 그때 인구수가 약 5,900만 명이다. 그렇다면, 이때 보다 약 700년 전인 춘추전국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을 대상으로 평생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추적 연구가 가능했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사주팔자는 연역적인 방법으로는 인정을 할 수 있겠지만, 귀납법적인 검증과 실증은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4차 산업혁명 시대인 요즘 실증 연구를 한다면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은 높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학교 1학년 마당세실에서 공연했던 '사주팔자 고칩시다'라는 연극을 본 적이 있다. 그때에도 요즘처럼 심해져 가는 사주팔자에 대한 풍자극이었다. 연극 중에 관객에게 질문을 했었다. "사주가 무엇인가요?"
잠잠한 관객을 향해 주인공이 대답을 했다. "사주는 뱀술입니다." 이 대화 속에 연극이 던지는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을 했다.
연극의 마무리는 제목과 다르게 사주팔자라는 운명을 믿지 말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자는 것이었다.
결국, 흔들리면서 가야하는 삶은 사주팔자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극복하면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