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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유 Jan 30. 2023

인생은 하와이 마라톤처럼

다섯 번째 달리기

하와이 호놀룰루의 깜깜한 밤, 멀리서 배 번호를 부착한 한 할아버지가 어둠 속을 가르며 달려온다. 그가 멈추어 서서 숨을 고르자 곧이어 17시간 50분 52초, 그의 마라톤 완주를 가리키는 빨간 네온사인이 연신 반짝인다. 올해 88세의 사다오 이토 씨는 장장 18시간에 걸친 마라톤을 완주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 비밀은 마라톤 완주에 제한 시간을 두지 않는 이 마라톤만의 특별한 배려에 있다. 덕분에 참가자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속도로 걷거나 달릴 수도 있고 결승선에선 똑같이 환영받을 수 있다. 


내가 마라톤에 처음 도전한 것도 속도를 대하는 가벼운 태도에서 시작되었다. 첫 마라톤에서 걷다 뛰다 놀다 들어왔는데도 아이와 내 목에 반짝이는 메달이 걸렸다. 게다가 쌀과 기념품까지 안겨준 주최 측의 후덕한 인심에 이 정도면 남는 장사 아닌가 싶어 그 후로도 크고 작은 단거리 마라톤에 참가했고 그동안 난 기쁨과 겸손, 참을성을 부상으로 받았다. 이런 내게 호놀룰루 마라톤은 그야말로 배려까지 겸비한, 우리네 인생살이를 꼭 닮은, 꿈의 피니시 라인인 것이다.


하와이 국제 마라톤의 생명은 알로하 정신에 있다. 안녕이라는 인사 너머엔 ‘함께 나누는 기쁨’, ‘호흡과 생명’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빠르게’ 만을 추구하는 세상에 맞서 ‘더 깊게’, ‘더 넓게’를 외치는 것, 나름의 호흡법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 말로 알로하 정신을 품은 진정한 인생 마라토너의 자세일 터이다.


“다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뛴 거지.” 기자의 질문에 이토 할아버지가 대답한다. 


내 나이 마흔, 시나브로 인생의 오후에 접어든 무렵, 나 또한 내 가슴을 뛰게 한 인생의 조각들을 맞추어 본다. 나와, 그리고 어딘가에서 함께 달리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젠 마이크를 통해 공백 속에 실어 보내는 일도 시작했다. 


때론 힘차게, 때로는 느릿느릿, 앞으로도 나의 인생 달리기는 이렇듯 알로하를 외치며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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