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극작가인 드라이만은 국가체제에 반대하는 사상이라는 의심으로 슈타지의 검열을 받는다. 슈타지인 비즐러는 드라이만의 집에 도청장치를 설치하고 드라이만의 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감시한다. 그러던 중 드라이만의 집에 있던 브레히트의 시집을 읽고, 소나타를 듣고 난 후 비즐러는 타인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가치관에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변화된 비즐러는 드라이만을 돕고 결국 편지 검열원으로 좌천 당한다. 비즐러는 일하는 도중 베를린장벽의 붕괴 소식을 듣게 된다. 동독이 서독에 흡수 통일되고 우편배달원으로 살아가는 비즐러는 드라이만의 신작에서 자신에게 전달하는 말을 보게 된다.
영화는 1984년 독일의 과거사를 배경으로 하며, 동독의 수도 동베를린의 어두운 면을 비추고 있다. 당시 국가 보안부 슈타지는 조금이라도 서독에 우호적인 움직임이 있다면 가차 없이 잡아들이고 심문하고 주모자를 색출했다. 이는 문화영역까지 감시되며 대중매체는 물론이고 인쇄 매체, 공연예술에도 적용됐다. 동독 사회는 일상적인 대화를 슈타지를 통해 감시하고 검열하며 전체주의 사상을 견고히 만들었다. 영화 속 감시자 비즐러는 슈타지에서 사람들을 감청하고 전체주의 체제를 교육하는 역할이었다. 이에 대해 소설가 드라이만은 초반엔 국가의 체제를 의심하지 않았지만, 선배 소설가의 죽음을 계기로 점차 자유주의적인 관점으로 변화하였고, 동독의 사회를 고발하는 글을 작성하게 된다.
이 영화에선 전반적으로 캐릭터의 입체성이 두드러진다. 비즐러는 대학교에서 취조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장면과 드라이만을 처음 보고 감시를 계획한다. 도청장치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옆집 아주머니를 협박까지 서슴없이 하는 등 냉혈한의 모습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타인의 일상을 감시하며 오히려 자신이 공허함을 느끼고 브레히트의 시집과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태도를 바꾸게 된다.
크리스타는 본래 드라이만의 연인이었지만 자신의 배우 생활을 위해서 밤에 장관에게 향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비즐러와의 대화를 계기로 본래 자신이 지키던 가치인 드라이만의 곁으로 돌아온다. 후반부에는 불법 약물을 취급하는 과정에서 체포돼 배우 활동을 이어 나가는 조건으로 결국 타자기의 위치를 발설하게 된다.
또한 비즐러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드라이만의 집에 있던 브레히트 시집을 몰래 들고 나와 읽는다. 브레톨트 브레히트는 동독의 극작가이자 시인이다. 동독 출신의 스타 극작가였지만, 그들의 체제를 공공연히 풍자하고 당국의 문화•예술계에 대한 탄압을 비판했다. 슈타지 소속으로 국민들을 감시하고 탄압해오던 비즐러가 브레히트의 시집을 읽는 장면은, 그동안의 비즐러와 모순됨을 보여주며 그의 가치관 변화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는 드라이만의 소나타 연주를 듣고 눈물을 흘리게 된다. 여기서 눈물은 단순히 전서의 변화가 아닌 자신에게 남아있던 사상을 씻기는 역할을 한다.
타인의 삶은 억압적인 사회에서 비즐러라는 인물이 타자의 진정한 사랑과 행복을 바라보며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의 제목인 ‘타인의 삶’은 타인의 삶을 통해 내가 아닌 ‘타인’을 보는 것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한다. 인물들은 기존에 굳게 가지고 있던 신념에서 일어난 작은 균열 조각이 자신의 내부에서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특히 내적 갈등에 처한 비즐러가 서서히 변화되는 모습은, 마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과정 같았다. 경직되고 강제적인 체제와 환경 안에서도 비즐러는 스스로 주인의식을 찾아갔다. 이러한 모습들은 관람자에게 강한 울림을 준다.
엔딩에 이르러 드라이만과 비즐러의 교감이 절정에 이르게 된다. 드라이만이 쓴 표지에는 “이 책을 HGW XX/7에게 바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 문구는 비즐러가 드라이만을 감청하며 사용했던 프로젝트의 활동명이다. 드라이만은 자신이 철저하게 감청 되어왔었고, 그럼에도 자신이 안전할 수 있었던 이유가 비즐러의 선의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그에게 바치는 책을 낸 것이다. 책을 들고 계산대 앞에선 선 비즐러는 선물로 포장할 것이냐는 점원의 물음에 “아니오, 이 책은 나를 위한 겁니다”라고 답한다. 비즐러는 드라이만의 삶을 듣고 자신의 삶을 찾았고, 드라이만 역시 글을 쓰면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한다.
타인의 삶은 동독의 슈타지라는 배경을 다루며 다양한 사람들의 내면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영화라는 측면에서 의의가 더욱 빛난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삶에 발을 디딤으로 인해, 한 개인이 얼마나 큰 변화를 겪을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옳다고 여기며 충성을 바치던 것이 부질없는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은 큰 충격이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냉소적으로 살아왔던 비즐러가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들을 헌신적으로 지키려 했던 이유는, 타인의 삶을 들으며 피어난 성찰과 반성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들은 비즐러와 한 마디 직접적인 대화를 하지 않았지만, 사막처럼 건조했던 그의 마음에 고독과 눈물이라는 인간적인 감정을 살아내게 했다. 살아가다 보면 점점 타인의 삶에 무감각해지기 쉽다. 독일의 아픈 역사를 배울 수 있었고, 남을 통해 나를 돌아보게 하는 영화였다.
<참고 자료>
양은의 (2015). 영화《타인의 삶》에 나타난 지배권력과 저항담론의 작동방식
지희경 (2011). 영화를 이용한 전체주의 바로 알기 : 영화 『디 벨레』,『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타인의 삶』을 중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