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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브라운의 결혼

by 나쵸킬러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



저번 학기 ‘베로니카 포스의 갈망’은 내 인생 작품의 전당에 의심할 여지없이 올라앉았다.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도 어쩐지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된다고 생각했는데 두 작품 모두 파스빈더 감독의 작품이었다. 파스빈더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내게 놀라움을 준다. 양 작품은 모두 욕망하는 여성을 통해서 복잡한 인간의 감정선을 진득하게 조명한다. 특히나 전후 독일 사회의 이면이 개개인의 삶을 황폐화시키는 모습을 기술력있게 표현해냈다.


가장 대단하다고 느낀 씬을 두 개 꼽자면, 첫번째는 마리아가 인간성을 잃은 후 직장에서 전화 받는 직원에게 호통을 칠 때였다. 그 씬은 뒷 부분의 사장과 만나 점심식사를 하게 되는 과정을 위한 연결씬이었다. 그러나 그 연결씬이 단순한 징검다리에서 역할을 그칠 뿐만 아니라 변화된 마리아의 성격, 그를 두려워하는 직원의 태도를 극명하게 드러내며 극 속에서 생략된 그간 있었을 거라고 추정되는 시간들을 자연스레 드러나게 했다. 구구절절한 대사가 아니라 나이든 직원이 전화 실수를 하고 스스로 놀라서 엉엉 우는 장면, 그것을 신랄하게 비웃는 마리아의 모습은 얼마나 호된 사람으로 변화된 건지 어림짐작할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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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인상적인 장면은 역시 마지막 시퀀스였다. 영화는 절정을 마지막에 배치해 극에 달하는 서스펜스를 보여준다. 기뻐서 흥분한 마리아가 속옷바람으로 집안을 휩쓸 때 헤르만은 과묵하게 등을 보이고 침대에 앉아있을 뿐이었다. 일전에 장미꽃 대신 가방을 화병에 꽂든지, 가스불에 담배를 붙인다든지 하는 복선이 깔렸었다. 치밀하게 연출된 인물들의 행동은 개연성과 핍진성이 탄탄해 집에 가스불 화재 사고로 결말이 맺는 것 또한 허무맹랑하지 않았다. 오히려 결코 쉽게 해피엔딩을 내어주지 않는 긴장감에 극도로 극에 몰입하게 된다. 파스빈더는 문학과, 음악, 희극같은 다른 매체와 달리 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힘을 능수능란하게 지휘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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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점은 마지막에 강한 인상을 남긴 사진들이다. 강한 흑백 대비로 인해 어떤 인물들인지 정확히 인식하지 못해서 무슨 의미와 작동인지 의문이 든다. 또 인상적이었던 지점은 엔딩에서 보여준 독특한 크레딧이다. 작품의 스토리가 완전히 끝나기 전에 올라와, 가스 폭발 이후는 마치 에필로그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파스빈더는 자본주의가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영화에서 독일의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중요한 모티프로 담배가 사용되었다. 어머니에게 전달한 두 갑의 담배에서 시작한 공허함은 마리아의 인간성 상실의 단초였으며 동시에 결말로 작용했다. 영화는 사랑에 애달픈 멜로드마라틱한 전개를 펼치면서도 세상을 냉혹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의 영화 주인공들은 늘 사랑에 목숨을 걸지만 실제로 그들이 나누는 사랑은 허상이다. 이에 고뇌하는 캐릭터에게 연민이 느껴질 정도이다.


감독이 37살에 요절했다는데 그 짧은 삶 속에서 이런 가치 있는 작품들을 쏟아냈다니 기이할 정도이다. 이분의 다른 작품들도 다양하게 접하고 싶다. 먼저 3부작으로 명성이 자자한 로라마저 관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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