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쳐 지나가는 군중들의 철학적인, 개인적인, 수많은 생각들이 집단적 독백들을 이루며 영화 곳곳을 부유한다. 그 소리를 조용히 경청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베를린의 천사들이다. 이들은 인간사를 지켜보고 가끔 슬픔에 빠진 인간들을 위로한다. 적극적인 개입을 하지 않지만 그 위로는 틀림없이 사려 깊다. 천사는 영원히 사는 존재이지만, '현재'를 사는 인간이 느끼는 감각을 느끼지는 못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어느 날 천사 다미엘은 서커스단의 곡예사 마리온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인간인 마리온을 동일한 인간으로 사랑하기 위해, 다미엘은 카시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천사의 삶을 포기하고 인간이 된다.
위의 주요 스토리 이외에도 다른 스토리가 ‘액자식 구성’으로 결합된다. 영화 속 영화는, 2차 대전 직후 사설탐정이 베를린에서 의뢰인 동생의 자식을 찾는다는 내용이다. <베를린 천사의 시>는 특정한 플롯을 이끌어 나가지 않고, 포스트모던한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나간다. 극 속에서 인간과 천사 사이의 사랑도, 경계를 드러내지 않으며 흐릿하게 그려진다. 의도적으로 뚜렷한 경계선 없이 진행되는 느긋한 전개는 관계성을 모호하게 스며들게 한다.
흑백으로 전개되던 영화는 특정한 포인트에서 컬러로 과감하게 전환된다. 세상을 흑백으로 인식하던 천사 다미엘은 마리온에게 사랑에 빠진 순간 세상이 색을 얻는다. 이때 늘 일정한 거리가 유지되던 인간과 천사의 거리는 순간적으로 좁혀지는 효과가 나타난다. 천사에게 주어진 사랑의 의미는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나타나, 관객에게도 천사의 기적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참여를 이끈다. 감독은 고통스럽고 힘든 인간 세상이지만 또 다른 나를 찾는 그 기나긴 여정과 또 다른 나와 같은 방향을 보면서 걷는 사랑이야말로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말하고 있다.
<베를린 천사의 시>는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가진 거대한 고통을 보여주며, 도시 전체를 하나의 기억을 가진 유기체로 묘사한다. 영화는 천사와 인간의 사랑 그 이상을 내포한다. 두 천사들은 베를린 장벽을 걸으며 과거를 회상한다. 그들은 베를린이 생겨날 때부터 거기 서서 역사를 지켜보며 때로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기도 했다. 전쟁도 목격했고, 그리고 가끔 지상으로 내려가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와 절망과 죽음의 고리를 듣기도 했다. 노인은 세계 2차 대전 이후 황폐해진 베를린의 포츠담 광장에서 상실하고 평화를 이야기하며 흐느낀다. 동서 냉전으로 생긴 베를린 장벽의 음울함과 그 원인 격인 홀로코스트에 대한 반성과 성찰, 그 시대 및 시대를 초월한 인간 존재의 고통을 서술하지 않고 보여준다.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유일한 인간다움의 징표이며 희망이다. 영화 평론가 정성일을 이를 두고 “행복한 천사보다 불행한 인간에게 더 많은 사랑을 기울일 때 비로소 세상에 대해 ‘진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며 빔벤더슨의 사랑과 휴머니즘을 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