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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by 나쵸킬러

남편과 사별한 후 자식과도 떨어져 살아가는 노년의 독일 여성과, 아랍에서 온 젊은 외국인 노동자. 이 외로운 두 영혼이 만나 사랑하는 이야기이다. 외로움이 필연적으로 사랑을 갈구하게 한다면 이는 인간에게 최고의 축복이자, 고통이다. 소외된 이들은 서로의 마음을 보듬어주지만 이웃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주변에서는 모두 그들의 시각으로 ‘짐승만도 못한’ 외국인과 결혼까지한 두 사람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드러낸다.


주위 인물들의 시선은 아주 직설적이여서,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을 주면서도 동시에 강한 현실감을 준다. 사람들은 가만히 선 채로 의식적으로 그들을 노려본다. 싸늘한 조롱은 그 둘을 끊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무리에 동화된 상대방이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 볼 때, 결국에 커져가던 불안은 그들의 영혼을 잠식한다.


영화에서 에미와 알리는 시종일관 증오의 대상이 되어 약자의 입장으로 보이지만, 그들 역시 역설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편견의 대상인 주인공들은 때로는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조롱하는 인물이 되어, 강약 관계가 뒤집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카메라는 좁고 답답한 프레임 속에 인물들을 가두고 억압한다. 관객들로 하여금 고통받는 그들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우리 또한 영화 속 인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인정하게 한다. 이는 관객의 감정이입을 거부하는 소외 효과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사랑의 민낯은 외로움일까. 영화는 편견과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런 것들에 대한 이상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파스빈더 영화를 보면 사랑은 무엇인가 싶으면서도 참 부질없다고 느껴진다. 애정결핍 성향을 보이는 에미은 알리의 외도를 한 순간의 방황이라고 생각하며 마음대로 하라며 다시 품 안으로 받아들인다. 애초에 이들의 사랑은 서글픈 자들의 동맹이 아니었을까.영화는 1970년대 독일 사회의 위선적인 모습을 현실적으로, 냉정한 시선으로 비판하고 있다. 자국민들이 우월하다는 생각에 빠져 외국인에게 극심한 차별을 보여주던 이웃들은 부부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낸다. 그러한 차별은 “독일인은 주인이고, 아랍인은 개”라고 표현된다.


파스빈더는 나치즘, 인종 차별과 과거사 등 당시 독일 사회가 가지고 있던 고질적인 문제들에 대한 비평 의식을 표면적으로 드러냈다.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 새로운 형태로 탄생되려는 인종차별과 나치즘의 회귀를 경계하고자 하였다. 영화는 속물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도 섞어냈다. 자본과 힘 앞에서 이웃 사람들은 알리와 에미를 필요시하게 되고 일시적으로 갈등이 해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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