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카티는 많은 것을 잃었지만 수없이 다시 태어나는 불사조처럼 꿋꿋하게 살아가기를 택한 사람이다. 사람들의 헤어를 만져주며 기쁨을 만드는게 최고의 행복인 카티. 늘 긍정적이고 열정적으로 삶에도 세상사는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카티는 우울함에 빠질 틈도 없다. 뚱뚱하든 돈이 없든 간에 살아야 하니까.
매 아침마다 끈 하나를 붙잡고 버겁게 일어나야 하는 카티. 하지만 그녀는 늘 몸 구석구석에 크림을 바르고, 색색깔 과일 모양 귀걸이와 목걸이를 한 채 분주하게 움직이며, 친절하지 않은 직원에게는 친절을 가르친다. 카티는 헤어드레서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백화점 내에 있는 한 헤어숍으로 이력서를 들고 찾아간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카티의 경력이 아닌 그의 뚱뚱한 엉덩이를 훝어본다. “헤어드레서는 아름다움을 다루는 곳인데, 당신은 전혀 아름답지 않다”는 잔인한 말 던지면서 말이다. 지긋지긋하리만큼 풀리는 일이 없는 상황에서 카티는 쉽사리 지지 않는다. 그는 돌파구를 찾기 위해 직접 헤어샵을 차리기로 선택한다.
<헤어드레서>는 주변부에 자리한 독일 소시민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한 주어진 삶에 전전긍긍하면서도 현재에 충실한, 특별하다기 보다는 아주 평범한 사람의 일대기이다. 카티는 경력 단절 된 싱글맘으로서 온갖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투덜대기 보다는 웃어보이며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러닝타임 내내 역경은 그의 삶을 끝도 없이 휘젓는다. 한 고비를 넘겼다 싶으면 금새 또 다른 벽이 찾아와 눈 앞을 가로막는다. 삽입된 밝고 경쾌한 음악과 달리 인생은 냉정하리만큼 희망을 쉽사리 손에 쥐어주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이리라. 영화는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력을 다해야 하는 현대인의 단상을 비춘다.
어찌그리 매번 난관이 찾아오는지 절로 응원의 마음이 불러일으켜진다. 다행히도 카티는 매번 벽을 넘고, 그 벽을 스스로의 힘으로 계단으로 뒤바꾼다. 카티는 여태껏 본 영화중에 가장 강하고 단단한 인물이다. 늘 버티는 카티에게 동료가 말한다. “세상에는 끙끙이과 투덜이가 있어. 끙끙이는 모든 걸 견디고 불평은 절대 하지 않아. 그러다 무너지지. 투덜이는 내내 힘들다고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일을 해내. 너는 끙끙이야.” 분명 카티는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분명히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원래 인생은 바람이 불 때 갈대처럼 휘어지며 사는게 편하다고들 한다. 두꺼운 나무는 태풍을 맞으면 휘지 못해 여지없이 꺽이고 말기 때문이다. 버거운 삶을 꿋꿋하게 견디며 살아갔던 주인공은 미용사라는 꿈이 꺽이지 않기 위해 잠시 흔들리기로 선택한다. 이민자들의 불법입국을 돕는 대가로 부족했던 미용실 개업 계약금을 얻어낸 것이다. 눈 앞의 돈을 위해 감행했던 범죄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위안을 주었다. 그곳에서 만난 이민자들과 정을 나누고 그동안엔 그들이 소외되었기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에 눈의 띄여진 것이다. 또한 낭만적인 눈빛을 가진 베트남 사람과 가슴 떨리는 사랑을 하게도 된다.
물론, 미용실은 개업하자마자 접어야 했다. 티엔은 유부남에 런던으로 가버려서 옆에 없다. 그럼에도 카티는 여전히 엉덩이 춤을 춘다. 전혀 아름답지 않다며 모욕을 준 미용사에게서 받아낸 사과와, 올쭉이와 뚱뚱이의 수줍은 키스 그리고 카티의 솜씨로 빗어낸 손님의 기뻐하는 얼굴이 남았으니.
여전히 줄을 동해서 침대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슬프고 힘든 일이 있기도 하고 기쁜 일이 있기도 하고 반복되는 삶을 통해서 살아가는 것이 삶이 아닐까. 카티에게 중요한 것은 미용실 개업이 아니라, 정말로 하고 싶었던 것은 다른 사람들의 머리를 손질해주면서 그들을 변화시키는 그 행위 자체였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는 모든 자에게 관에 들어갈 때까지 일생을 따라다니는 고민이다. 영화는 나름의 해답과 함께 위안을 준다. 불안하지 않았기에 영혼은 잠식당하지 않았구나. 영화처럼 낭만적이지 않은 현실의 알싸한 삶 속에서, 카티는 위로를 전해준다.
마지막에 병원을 퇴원한 후 딸이 차려준 식사를 먹으며 문득 식탁에 올라간 꽃병은 어디서 구했냐고 딸에게 물어본다. 그때 딸이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자 카티는 놀란다. 늘 행복은 그 자리에 있었고, 눈 앞의 행복을 잊지 말라는다정한 메시지가 녹아든다.
또한 영화가 덤덤하게 통일 된 이후의 실상을 보여주었던 점도 좋았다. 독일어가 능숙했던 베트남 이민자는 독일에서 지냈지만 통일 이후 일자리가 부족하다며 쫒겨났던 사람이다. 고된 일을 해결하기 위해 이민자를 채용했으면서도 필요성이 떨어지면 몰아내는 위선적인 태도에 대해 일침을 놓는다. 많은 독일 영화에서 이민자와의 융합을 위한 지속된 노력의 독일을 역사가 담아냈다. 한국은 여전히 외국 이민자들을 향해 폐쇄된 시선을 가지고 있다. 영화 같은 미디어에선 외국인 노동자나 이민자들을 폭력배나 범죄자 집단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범람하고 있다. 그러나 소외된 자에 대한 온정의 손길로 그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고자 하는 다양한 노력은 지극히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나 상업 영화는 더욱이 그렇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법에대해 <헤어드레서>를 포함한 독일 영화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웨스트 샷 사이즈로 핸드핼드로 따라가는 카메라는 인물의 역동성이 담아낸다. 도심이라는 일상적인 공간에 채도 높은 원색을 사용해서, 열정있는 그의 생활을 담아냈다. 헤어스타일은 앵무새처럼 늘 무지개 색으로 빛난다. 투박한 도심의 모습은 색채를 통해 그에게 담긴 열정을 담아낸다.